나는 어느 시간을 살고 있나
어느 방에나 하나쯤은 아날로그 시계가 있을 것이다. 모니터 위나 책상 옆에 최신 디지털 기기들이 즐비해도, 유독 벽에 걸린 그 시계만큼은 눈이 자주 간다.
그 시계가 어느 날 고장 났다. 정확히 10시 21분에서 멈춰버렸다. 배터리를 갈기에도, 떼어버리기도 번거로워 그냥 그대로 두었다.
그렇게 4개월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처음엔 시계를 볼 때마다 “아, 지금 10시 21분이구나.”하고 착각하곤 했다.
그러다 한 달쯤이 지나자 나는 그 고장난 시계에 익숙해져버렸다. 더는 제 시간을 가리키지 않아도 그리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았는데 아주 가끔, 진짜로 시계의 바늘과 실제 시간이 딱 맞을 때도 있었다.
그 순간은 멈춘 시계의 세상이 잠시나마 움직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고장난 시계도 하루에 두 번은 맞는다.”
그 말이 진짜구나 싶어서 웃음이 나왔다.
반면, 책상 위 디지털 시계는 고장이 나진 않았지만 늘 5분이 늦다. 덕분에 책상앞에 앉아서 일을 할 때마다 매번 5분 늦는 삶을 산다.
항상 정확한 시간 근처에서 제 시간을 향해 쫓아가지만, 끝내 도달하진 못한다. 어쩌면 그게 더 슬픈 일인지도 모르겠다.
하루 두 번 맞는 고장난 시계와, 영원히 맞을 수 없는 5분 늦은 시계.
현대 사회는 점점 더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아침에 나온 기술은 저녁에 진부한 것이 되어버리고, 관심은 하루 만에 식는다. 무언가에 다가가려는 순간, 그것은 이미 멀리 가버린다.
방금까지 ‘뜨는 것’이었던 무언가는 어느새 구식이 되고, ‘지금 사야 한다’는 그걸 사는 순간 고점이 된다.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나에겐 익숙한 풍경이다. 예측은 늘 어긋나고, 타이밍은 항상 두박자 느리다. 한 발 다가서면, 두 발 멀어지는 세상이다.
제 시간에 닿지 못했던 나의 과거를 폄하하고 싶진 않다. 언제나 5분 늦는다는 것은 거의 도달할 뻔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지만 한 박자 느린 자가 얻게되는 주변부의 자리는 아쉬움도, 후회도 깊게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장난 시계도 하루에 두번은 맞는다. 멈춰있는 것처럼 보이는 존재에게도 어김없이 기회의 순간은 온다.
어쩌면 그 시계는 멈춘 게 아니라 자신만의 시간을 만든 것일지도 모른다. 10시 21분이라는.
내가 그 시간이 되었을때 신기해하면서 고개를 들어 시계를 바라보게 만든 것처럼.
나는 준비된 자에게는 인생에 2번의 기회는 온다고 믿는다.
어쩌면 삶이라는 것은 정답을 향해 무작정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시간을 만들고, 그걸 기다릴 줄 아는 일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