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남 얘기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집 바로 앞에 있는 바이올린 학원을 2년 넘게 다니고 있다. 그런데 어느날, 선생님이 뜬금없이 내게 물었다.
“버스를 잘 타고 다니나요?” (예?)
난데없는 질문에 나는 멀리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그러자 선생님은 머쓱해하면서 학원을 옮기게 되었다고 말했다. 요는 등록생이 줄어서 아이들이 비교적 많은 옆동네로 간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근방의 Y초등학교가 한반에 신입생이 겨우 10명뿐이라며, 폐교 위기에 처했다고도 덧붙였다.
‘ 이런, Y초등학교는 내가 졸업한 학교이다.‘
나는 항상 저출산 문제를 걱정하며 뉴스를 주시해 왔다. 하지만 그 영향이 이렇게나 빠르게, 직접적으로 내 삶을 침범할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가 사는 동네는 가족단위 거주자가 많은 서울의 주거지역이었기 때문이다. 초등학교,중학교가 몇 군데 있고 3~4인 가구가 많아 으슥한 곳도 거의 없다. 물론 핫플은 없지만, 역근처에는 프랜차이즈와 작은 가게들이 모여있어서 생활하기엔 부족함 없는 곳이다. 나는 8살때 이곳으로 이사와서 20년간 쭉 살았다. 그리고 이변이 없다면 계속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다. 저 멀리 거대한 파도가 몰려 오는 줄도 모르고..
불길한 예언이 현실이 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Y초등학교의 폐교 위기 소식은 물이 어디까지 차올랐는지 보여준 신호였다. 지금은 무릎까지이지만 5년후에는 가슴까지, 10년후에는 내 목까지 찰 것이다. 그러다 결국, 바닷물에 얼굴만 겨우 내놓고 숨 쉬는 사람들이 이제 심각성을 깨닫고 외칠 것이다.
“탈출하자!”
어디로?
“보트에 오르자!”
어떻게?
‘어떻게든 해결되겠지’ 같은 중얼거림은 뭔가를 일으키는 마법주문이 아니다.
우리에겐 더 직접적인 행동이 필요하다. 우리 모두가 손에 쥔 것을 내놓아야 한다.
나이가 많든 적든, 가난하든 부자이든 모두가 예외없이.
모든 저출산에 대한 정책들이 무위로 돌아가는 이유는 사람들이, 가진것을 결코 내려놓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누군가가 양보한다면 그것은 내가 아니라 타인이 되어야한다고 생각한다
단 하나의 강력한 정책보단 다양한 정책들을 중첩해서 사회 전체가 균형있게 손해봐야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기꺼이 손해를 감당할 마음을 가져야한다는 점이다. 지금보다 더 안 좋아질 미래를 모두가 손을 잡고 견디는 것이다. 이것은 남을 생각하는 숭고한 이타심이 아니다. ‘나의 10년후 미래’를 위해서하는 이기심이다.
지금 손에 쥔 것을 놓지 않으면 더 큰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어부가 눈앞의 이득에 눈이 멀어 새끼 물고기까지 모조리 잡아 판다면 당장은 돈을 몇푼 더 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다음해, 그 다다음해에 어부는 더 이상 잡을 물고기가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지금 조금 더 잘 살겠다는 이기심이 미래에 잘 살겠다는 이기심을 이기지 않을 수 있도록 부디 그렇게 되었으면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