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는 쉽게 낡는다

빠르게 바뀌는 시대에 낡지 않는다는 것

by 이래

내 손목에는 분홍색 꽃이 있고, 팔 중간 언저리에는 나비가 있다. 대학생 시절에 새긴 타투다. 망설이기만 하던 나에게 가장 친한 친구의 타투는 큰 영향이었다. 나는 그녀와 같은 자리에 다른 타투를 새겼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냥 타투를 하고 싶어서 한 케이스이다. 무언가를 기록하거나 상기시키려는 의도가 결코 아니었다. 그저 내 눈에 제일 예뻐보이는 도안으로 골랐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색상인 분홍색이라 그렇게 했을 뿐이다.


나의 귀여운 나비 비비

가끔 타투를 한 사람들이 나에게 혹시 타투할 생각이 있거든 레터링만은 하지 말라는 말을 기억하고 하지 않았을 따름이다. 새길때는 거창한 의미를 담아서 하지만, 생각보다 의미는 아주 쉽게 퇴색된다고..

아이러니하다. 타투는 새기는 순간 죽을 때까지 함께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지속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렇기에 대부분 ”의미“를 고른다. 하지만 놀랍게도 의미보다 이미지의 수명이 더 길다! 그렇게 의미가 떠나간 이미지는 그렇게 영혼이 빠져나간 채로 우리 몸에 박제되어버린다.

세상 모든 이미지는 시간이 지나면 낡는다. 다만 그 속도가 다를 뿐이다.

유난히 낡는 속도가 빠른 이미지들의 공통점은 *기표와 **기의의 관계가 불안정하다는 데 있다.

*기표(signifier): 언어에서 소리, 문자, 이미지 같은 물리적인 형태
**기의(signified): 기표가 가리키는 개념, 의미

이른바 ‘자의적인’ 것들. 사람이 의도적으로 디자인 한 것들이다. 디자인된 물건과 화면은 물론이고, 문자의 폰트, 문자의 간격, 심지어 그것들의 배치까지 인간이 개입한 모든 시각적 이미지(눈에 보이는 것)들을 말한다.

예를 들어 하트아이콘이 있을 것 같다. 너무 익숙해서 잊고 있었겠지만 하트는 자연이 낳은 이미지가 아니다. 사람들은 사랑이라는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사랑할 때 두근대는 심장을 떠올렸고, 이는 점차 추상화되어 하트아이콘으로 정착했다. (물론 하트의 기원에 대해서는 정확하지 않다)

‘사랑’이라는 기의와 ‘하트’라는 기표가 결합되어 하나의 기호로 탄생한 순간이다. 하지만 이런 기호는우리가 문화적으로 의미부여를 한 산물이기때문에 언제든 쉽게 분리될 수 있다. 심지어 사랑이라는 단어조차 의미로부터 불안정하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얼마나 부셔지기 쉬운 기표의 세상에 살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그래서 사랑을 표현하고 싶어서 하트를 사용하면 의미는 생각보다 빠르게 휘발되어버리고 ‘하트라 불리는 덩어리‘만 남는다. 의미가 떠나가고 몸만 남은 뭉그렇고 뾰족한 덩어리는 그렇게 낡는다.

사실 우리는 기표의 늪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우리의 주변 모든 것은 인간의 손길을 거쳤고, 그 모든것은 디자인되었다. 그래서 계속 기의는 떠나가고, 기표는 홀로 남아 나이든다.

하지만 자연은 인간이 존재하기 이전부터 존재했다. 자연은 의미를 부여받기 전부터 그 자체로 존재했다. 그래서 자연은 이례적으로 기의가 없는 이미지이다. 바람이 만든 모래물결, 구름이 떠내려가는 패턴은 의미없이도 그 자체로 존재한다. 그래서 자연은 낡지 않는다. (물론 구름에 ‘자유’따위의 의미를 덧씌우는 순간 낡기 시작하지만)

결국 낡지 않는 이미지들은 그 자체로 존재하는 것이다. 우리가 무언가를 표현하기 위해서 인위적으로 조작하거나 배열하고 변형하지 않는 것. 그것이 그 자체로 놓여있는 것. 그냥 흘러가는 것들.

의미는 쉽게 낡는다. 하지만 존재는 쉽게 낡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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