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겁한 약자
- 카프카 소설 《변신》을 읽고

by 무아상

저자 및 책 정보 소개

제목 : 변신

원제목 : die Verwandlung

지은이 : 프란츠 카프카 Franz Kaflca

옮긴이 : 이덕형 옮김

출판사 : 문예출판사

출간 시기 : 2015년 (제3판)


프란츠 카프카(1883~1924)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령이었던 지금의 체코에서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문학에 뜻이 있었으나 아버지의 영향으로 법학을 전공하고 국영보험국에서 십사 년간 근무하며 밤에는 글을 썼다.

아버지는 자수성가한 유대인 상인으로, 병약하고 감수성이 예민한 카프카에게 폭언하며 상처를 주었다. 카프카의 소설에도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폐결핵을 앓다가 40세의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카프카의 대표 저작인 《변신》은 독일어로 쓰였다. 출간된 지 오래된 책이지만 여전히 많이 읽히는 책이다.


주인공이 변한 벌레는 원어로는 Ungeziefer로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곤충. 가족에게 해가 되는 벌레를 말한다. 특정 벌레의 이름이 아니다. 카프카는 초판 발행 시 표지에 벌레 그림을 넣지 말라고 요구했다고 한다. 독자의 상상력을 제한하기 때문이다. 특정한 벌레가 아니라 부정적이고 비정상적인 이미지를 강조하고 싶었던 듯하다.


책이 써진 시대적 배경

약 110년 전인 1915년 출간된 중편소설이다. 유럽에 급격한 산업화가 이루어져 인간소외가 사회문제로 대두되던 시기다.


줄거리 요약

그레고르 잠자는 어느 날 아침, 불안한 꿈에서 깨어 벌레가 되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는 아버지가 진 빚과 가족의 생계를 떠맡고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그는 가족에 대한 책임과 여동생에게 바이올린 교육을 시킬 계획까지 하고 있었다. 직장이 싫고 힘겨웠지만, 벌레가 된 와중에도 직장으로 가는 열차를 놓칠까 봐 걱정한다. 그가 출근하지 않자, 회사 매니저가 집으로 찾아온다. 벌레가 된 그를 보고 매니저는 도망치고, 가족은 충격에 빠진다.

아버지가 사장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그레고르는 일했지만, 아버지가 숨겨둔 돈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돈이면 빚을 일찍 갚아 책무에서 벗어날 날이 훨씬 앞당겨졌을 것이다.

그의 부모님과 여동생은 그가 가족을 부양할 수 없게 되자 난감해하며 돈 벌 궁리를 한다. 가족은 이사하고 싶지만, 그레고르 때문에 이사도 못한다. 돈벌이를 위해 하숙인들을 들였지만, 벌레가 된 그레고르가 나타나자, 하숙인들은 하숙비를 낼 수 없다고 한다. 벌레가 되어 혐오스럽고 곤란한 존재가 되어 가족 부양도 못 할뿐더러 경제에 악영향을 미친다. 가족들은 그를 차츰 부담스러워한다

그를 돌보던 여동생마저 그의 존재를 거부한다. 아버지가 던진 사과가 등에 맞아 상처가 곪고, 그로 인해 고통을 겪다가 그레고르는 음식을 거부하고 숨진다. 가정부가 그의 시체를 치우고, 가족들은 홀가분하게 소풍을 떠난다. 왠지 밝은 희망의 빛이 도는 듯하다.


분석 및 인용

가정과 직장에서 요구하는 역할에서 무능하고 혐오스러운 존재로 변하며 겪게 되는 과정을 잘 표현하고 있다. 주인공은 두 가지 삶을 경험한다. 책임을 떠안고 싫어하는 일로 고달픈 삶과 벌레로 변한 삶이다. 두 가지 삶 모두 불행하다.

좋은 책은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고, 읽을 때마다 새로운 것을 느낄 수 있다. 이 책 또한 여러 각도에서 해석이 이루어지고 있다. 이 글에서는 주인공이 불행한 이유를 인간의 나약함에서 찾아보고자 한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무능하지만, 가부장적이고 폭력적이다. 자기를 보호할 돈은 남겨두고 자기가 진 빚을 아들이 갚도록 일을 시키고 돈이 없는 척한다. 아들이 가야 할 길을 가도록 돕는 것이 아니라 떠나지 못하게 힘(직위, 폭력)으로 묶어놓고 책임을 떠넘기고 아들에게 의존해서 산다. 아버지는 일을하게 되자 집에 와서도 제복을 벗지 않는다. 권위에 의존하는 것이다. 의존하는 권위는 남을 이용한다. 능력 있고 자신을 믿는 가장이라면 자식을 이용하려 들지 않는다. 아들이 벌레처럼 됐을 때 사과를 던지거나 발로 차며 처리하지도 않을 것이다. 나약하므로 오히려 폭력에 기댄다. 책임을 질 만큼 능력도 없고 겉으로는 강해 보이지만 내면은 약한 사람이다.

어머니는 힘든 상황을 주체적으로 이겨내려 하지 않는다. 쓰러지거나 기절하는 등 약한 신경으로 회피한다. 이런 유형은 몸이 아픈 것을 핑계로 남을 조정하려 들기도 한다. 그러면 아버지가 폭력으로 처리하거나 어린 딸이 뒤처리를 해주리라는 걸 안다. 아들이 벌레가 된 상황에서도 모성애에서 오는 감함은 보이지 않는다.

여동생은 오빠를 돌보고 착하지만, 아직 어리고 무능하다. 그래서 오빠에게 의존할 이유가 된다. 아지만 오빠가 혐오의 대상이 되자 오빠의 존재를 부인하고, "벌레가 오빠라면 자기가 가족에게서 사라져야 할 존재임을 알 것"이라며 가슴 아픈 말을 한다. 여동생에게도 힘든 무게였을 테니, 여동생의 입장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자신이 감당하지 못하는 한계에 대해 아쉬워하거나 미안해하는 모습이라도 보여야 할 텐데 냉담하다. 정말 착했던 것인지, 착해야 의존할 수 있기 때문에 착했던 것인지 의심이 간다.

약한 가족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의존한다. 약한 자는 책임이나 사랑도 길고 힘 있게 밀고 나갈 수 없다. 남을 이용하고 자기 챙기기에 급급하다. 가족들은 비겁한 약자다.


벌레가 되기 전의 그레고르는 가족에 대한 책임을 갖고 돕는다. 남을 도우니 강한 것 같지만, 약하기 때문에 떠맡는다. 그는 존재가치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정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한다. 회사와 가정에서 타인이 요구하는 기대에 순응하면서 존재가치를 인정받고자 한다. 언제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곧 현실로 나타나 벌레로 변해 고독하게 죽어간다.

가족이나 단체에서 희생이나 베푸는 행위는 자신과 타인에게 유익한 일이다. 하지만 남을 돕는 똑같은 행위라도 존재가치를 인정받고자 하는 것과 남을 돕고자 하는 순수한 행위에는 차이가 있다. 남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역할'을 맡는다면 집단을 위해 적합하게 해야 한다. 하지만 '역할'은 집단에서 필요에 의해 일시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역할이 존재는 아니다. 맡은 역할로 자존감을 유지하려 하거나, 타인에게 존재가치를 갈망하고 타인이 원하는 존재가 되려고 하는 역할은 자아가 약하기 때문이다. 역할로 '존재'가치를 인정받고자 한다면, 역할이 끝났을 때 존재가치를 잃어버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다.

벌레가 된 그레고르는 사회 부적응자인 '하키코모리'로 볼 수도 있다. 그는 책임에서 벗어나 벌레가 되어 휴식과 자유를 얻지만 경제적 능력이 없는 자유는 자기 방을 벗어나면 혐오의 대상이다. 사회와 가정에서 필요 없는 존재, 불편한 존재다. 열심히 역할을 수행해 오던 그가 홀대받는 존재가 된 이유는 자신의 존재 가치를 외부에서 증명하려 했고, 그런 그를 이용해 자기 충족의 도구로만 사용하려는 외부인(가족, 직장인)을 만났기 때문이다. 이는 지치게 되고 언젠가는 버림받게 된다. 그레고르가 외로운 건 직장이나 가족이 없어서가 아니다. 그들이 필요로 했던 건 역할이었지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백 년이 넘는 오래전의 이야기지만, 현대 상황에서도 공감이 가는 이야기다. 자본주의와 물질의 가치가 인간 존재 평가에 영향을 미치는 건 여전하다. 가장이 돈을 벌지 못하면 가족에게 벌레 취급을 받을 수도 있다. 일하는 분야에서 나이가 들면 퇴물 취급을 받기도 한다. 외모도 혐오스럽게 변한다. 치매가 걸리거나 몸이 약해져 스스로 돌볼 수 없는 처지도 마찬가지다. 단체에서 희생하면 고마워하는 경우도 있지만, 정의로운 자를 앞세워 이용하고 이득만 챙겨가려는 약자도 있다.

한편, 등장인물들의 입장이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아니다. 주인공은 맏아들로 나이 든 부모님과 어린 여동생을 돌봐야 한다. 여동생도 혐오스러운 모습의 무능해진 오빠를 돌보며 경제적 활동도 하는 것이 쉽지 않다. 부모님도 나이 들고 무능함에서 벗어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모두 약한 면이 있고 약해질 때가 있다. 서로 의존할 수 있는 가족이 있다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지나친 의존은 자아를 약하게 만든다. 의존만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도울 힘이 있는 자아의 힘을 믿는다면 더 견고한 가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벌레가 된 그레고르가 죽은 후,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이다.

(p84) 그러고 나서 그네들은 같이 집을 나섰다. 몇 달 동안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전차를 타고 교외로 나갔다. 찻간에는 그들뿐이었다. 따스한 햇볕이 흘러들었다. 그들은 편안히 앉아 등을 기대고 장래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자세히 생각해 보면 그들의 앞날은 전혀 희망이 없는 것도 아니었다. 이제까지 서로 물어볼 기회가 없었지만, 그래도 세 사람의 직업은 훌륭한 것이었으며 앞으로도 유망하리라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당장에 필요한 집안 환경을 개선하는 문제는 이사를 함으로써 쉽게 해결될 것 같았다. 그들은 그레고르가 택한 현재의 주택보다 작고 집세가 싸지만 그래도 위치가 좋고 무엇보다도 실용적인 주택을 택하려고 했다.

그들이 이와 같이 이야기하고 있는 동안 잠자 씨와 그의 부인은 점점 활기를 띠어가는 딸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최근의 온갖 고생으로 그 애의 얼굴이 다소 창백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딸이 아름답고도 탐스러운 처녀로 활짝 피어났음을 느낄 수 있었다. 잠자 부부는 아무 말도 없이 시선으로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앞으로 딸을 위해 좋은 신랑감을 얻어주어야 할 때가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드디어 전차가 목적지에 다다랐을 때, 딸이 제일 먼저 일어나 토실토실한 젊은 육체를 쭉 펴자 그들에겐 그 모습이 마치 새로운 꿈과 아름다운 계획을 보증해 주는 것만 같았다.


에너지 뱀파이어처럼 그레고르를 대신할 딸의 사윗감을 찾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건지, 단지 딸의 젊음과 새로운 생활에 대한 기대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하지만 마지막 글에 가족들은 행복하지만, 상대적으로 그레고르의 존재가 더욱 쓸쓸하게 느껴진다.

의존해야만 살 수 있던 가족들이, 의존 대상이 오히려 끔찍하게 변하자, 의존 대상을 버린다. 의존하지 않아도 됐었다. 의존을 벗어나면 스스로에게도 힘이 있고 환경에서도 희망이 보인다.

주인공이 가족에게 버림받는 이유는 스스로 타인의 도구로 인정받고자 한데 있다. 상대(가족)는 도구로 주인공을 사용했다. 도구가 역할을 못하는 폐물이 되었을 때, 마치 도움 주던 존재마저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버림받는다.

등장인물들처럼 약자가 의존하며 살아남는 법도 다양하다. 아버지는 권위와 폭력으로 엄마는 자기 생명을 담보로, 여동생은 착하고 연약함으로 주인공은 타인의 기대를 맞추며 산다. 약자는 비겁해질 수 있다. 넘어졌을 때 일으켜 세워주고, 어쩌다 다리가 아플 때 서로에게 의지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만, 항상 의존한다면 다리가 건강해지지 않는다.

순수한 사랑을 하는 데에도 힘있는 자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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