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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빈 Feb 17. 2024

1호. 집 떠나기

영국으로 한 걸음

 에리히프롬은 이런 말을 남겼다.


 "인간에겐 특유의 이분법이 있다. 인간은 안전을 뜻하는 이전 상태를 떠나기 무서워하지만 자신의 힘을 더 자유롭고 완전하게 사용할 가능성을 제공하는 새로운 상태에 도달하고자 한다. 인간은 자궁으로 돌아가고 싶은 욕망과 완전히 새로 태어나고 싶은 욕망 사이를 쉬지 않고 오간다. 모든 출생의 행위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놓아버릴 용기, 자궁을 버리고 엄마의 가슴과 품을 떠날 용기, 엄마의 손을 놓을 용기가 필요하다."


 영국행을 앞둔 내 심정이 딱 이랬다. 2022년 가을, 덥지도 춥지도 않던 날, 나는 무거워서 제대로 끌지도 못하는 30킬로짜리 대형 캐리어 하나와 너무 많이 눌러 담아 23킬로가 되어버린 기내용 캐리어 하나, 돌덩이가 든 것 같은 백팩을 메고 인천공항 출국장 앞에 섰다. 앞으로 일 년 동안 못 볼 가족들을 두고 들어갈 용기도 없고 그렇다고 마지막 인사를 하자니 눈물이 터질 것 같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성였다.

 "딸, 건강히 잘 지내고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해."

라는 아빠의 말을 시작으로 마지막 인사가 이어졌다. 엄마가 나를 꼭 안아주었다. 그러자 아침부터 꾹 삼켜오던 눈물이 펑 터져버렸다. 한 번 터져버린 수도꼭지는 당최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동안 쌓였던 두려움과 걱정이 한 데 모여 줄줄 흘러내렸다. 코찔찔이 시절을 졸업한 뒤로 엄마를 안고 펑펑 울어본 게 처음이었다. 어렸을 때 이후 처음 안아본 엄마의 품은 너무 포근해서 이 품을 떠나 살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내가 내 발로 떠나겠다고 하다니. 대체 무슨 생각이었던 거지...'

그렇게 무모한 내 용기를 원망하며, 새빨개진 눈을 하고 출국장으로 들어갔다.


 내가 탔던 직행 비행기로 영국까지는 대략 14시간이 걸렸다. 비행기에 타기 직전까지 홀로 의자에 앉아 눈물을 뚝뚝 흘렸던 나는 기내식이 나오자 언제 그랬냐는 듯 밥만 잘 먹었다. 지금부터 혼자라는 생각에 밥이라도 잘 챙겨 먹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뼛속까지 한국인이었다. 때마침 기내 좌석 스크린에 전부터 보고 싶었던 영화인 조찬 클럽('The Breakfast Club')이 있어서 영화도 봤다. 한 고등학교의 문제아들이 모여 친구가 되는 내용인데, 영화 속 젊은 몰리 링월드가 참 매력적이었다. 영화를 다 보고 심심해질 때쯤 집에서 다운로드하여 온 프렌즈('Friends')도 보았다. 일부러 내가 제일 좋아하는 에피소드를 미리 다운 받아 왔다. 모니카의 핼러윈 파티에 분홍색 토끼 옷을 입고 등장한 챈들러는 언제 봐도 귀여웠다.

기내식 두 번에 간식 한 번, 영화 두 편, 프렌즈 여러 편을 보고 나니 어느덧 런던이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그때부터 두려움과 걱정은 설렘과 기대감으로 모습을 바꾸었다.

 '내가 살게 될 집은 어떨까, 누구와 같이 살게 될까, 어떤 친구를 사귀게 될까.'


 비행기에 난 작은 창 사이로 영국 땅을 보는 순간, 가족과 헤어질 때와는 다른 의미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유지혜 작가는 자신의 책에서 '어떤 순간들은 사진으로 남기지 말고 눈으로 보기만 해야 한다'라고 썼다. 언제쯤 내게도 눈에만 담고 싶은 순간이 올까 기다려왔는데 드디어 그 말이 이해가 갔다.

한순간이라도 창에서 눈을 떼면 날아가버릴까 두려웠다. 먼 훗날 이 순간을 돌아볼 때 환상과 같았던 시간으로 떠오를 수 있도록 사진으로 남기지 않았다.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은 잡히지도, 머무르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저 내 안 어딘가에 흩어져 남아있을 뿐이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1년 6개월이 지난 아직도 그 장면이 또렷하게 기억난다.

옹기종기 박힌 같은 모양의 나무. 그 모습이 꼭 암녹색으로 색칠한 액자 같기도 했다. 흐린 런던 하늘 사이를 한줄기 빛이 뚫고 나와 나무를 비추었다.

나무와 빛. 핸드폰을 켜 카메라 앱 대신 잔나비의 '슬픔이여 안녕'을 틀었다.



 비행기 안에서 보낸 시간이 기대와 감동으로 부풀었다면, 착륙 이후의 시간은 악몽이었다.

나는 레스터(Leicester)라는 도시에 가야 했는데, 시외버스를 타고 런던에서 세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처음 영국에 온 나는 막막함에 학교에서 제공해 주는 픽업 버스를 신청했다. 그런데 내가 타야 하는 픽업 버스가 마지막이었기에 이 버스를 놓치면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런던 공항에 버려지고 말 위기였다.

비행기 착륙부터 픽업 버스 탑승 시간까지는 두 시간 삼십 분 정도가 남아 있었다. 그러나, 안심하지 마시라. 런던은 그렇게 만만한 곳이 아니다.

당시 히드로 공항은 입국 심사가 오래 걸리기로 악명 높았다. 게다가 비자에 입국 도장을 받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탓에 자동입국심사로 가기도 찝찝했다. 어쩔 수 없이 끝이 보이지 않는 줄을 따라 섰고, 그렇게 입국 심사에 두 시간을 썼다.


 남은 시간은 삼십 분 남짓. 삼십 분 안에 짐을 찾고 터미널을 이동해서 픽업 장소에 있는 학교 직원을 찾아 버스를 타야 했다. 그때부터 너무 정신이 없었던 탓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는다. 사람이 너무 급하면 초인적인 힘이 나오는 것인지 짐을 찾은 나는 도합 50킬로 정도의 캐리어 두 개를 끌고 미친 듯이 뛰어다녔다. 북적이는 통로에서 요리조리 사람들을 피해 가며 터미널 표시만 쳐다보고 달렸다. 숨이 찬 지도 몰랐다. 그저 '이 버스를 놓치면 망한다'라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렇게 픽업장소를 찾아갔지만 아뿔싸, 사람이 너무 많아 도대체 우리 학교에서 온 사람이 누군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받은 메일에는 분홍색 옷을 입은 사람을 찾으라고 돼있었다. 그런데 연한 빨강, 진한 분홍, 연분홍까지 여기저기 분홍 옷을 입은 사람 투성이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생각에 메일에 있던 직원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알고 보니 픽업 시간에 버스가 바로 출발해야 해서 다들 이미 버스에 타서 출발하기 직전이라는 것이었다(메일 답장은 일주일씩 기다리게 하는 학교였는데 어째서 픽업 버스만 시간을 엄수했는지 아직도 미지수다). 그래도 다급했던 나의 목소리가 안타까웠는지 다행히 나를 찾으러 오겠다고 했다. 그렇게 무사히 학교 직원을 만나 버스를 타고 레스터로 향했다.

하지만 기숙사로 가기 위한 고난은 이게 끝이 아니었으니...


다음 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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