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수줍음이 많고 낯을 가린다. 마음에 하고 싶은 말이 퍽 많은데, 입 밖으로 나오는 말들은 그에 못 미친다. 홍당무들의 전형적인 특징이라 놀라울 것도 없지만 감정 표현이 특히 어렵다. 어쩌다 표현된 내 마음은 제삼자에게는 '갑툭튀'었겠지만 실은 내 마음속을 오랫동안 맴돌다 나간 것들이다.
아무 때나 안면홍조가 발현되는 것은 아니고 내 안의 홍당무를 깨우는 몇 가지 상황적 요인들이 있다. 예를 들면 불편한 사람들 틈에 있을 때, 그 사람들이 일제히 나를 바라볼 때, 설상가상 그들 앞에서 내가 무엇인가를 해야 할 때. 바로 회식 중 건배사 같은 상황에서 극도의 수줍음이 몰려온다.
나의 인생은 홍당무라는 기준으로 크게 세 토막으로 나뉜다. 초반부는 스스로 홍당무라는 것을 눈치 채지 못했던 시절. 실제로 어렸을 때는 부모님을 비롯한 집안 어른들로부터 사람들 앞에 나서기를 좋아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어머 사람들 앞에 나서기 너무 쑥스러운데?' 싶으면서도 주위에서 부추기면 쑥스러움을 무릅쓰고 앞에 나서 춤도 추고 노래도 부르고 발표도 했다. 몸과 마음이 따로 노는 학창시절을 보내고 나서야, 다른 사람은 단번에 알아차리는 그 사실을 비로소 깨닫게 됐다. '아.. 나는 홍당무였어'
중반부는 스스로 수줍음이 많은 성격임을 인지하고 이를 극복하려 애썼던 시기다. '타고난 성격이란 없어! 성격은 바뀔 수 있다! '라고 믿으며 불편한 순간이 오면 피하지 않고 불나방처럼 뛰어들었다. 하지만 뒤돌아볼 때 이 시기의 나는 '극복'을 한 것이 아니라 '회피'를 했다. 상황이 아니라 내 마음을 외면했다. 당황스럽고, 어디에 눈을 둘지 모르고, 머릿속 단어들은 새하얗게 날아가고, 가끔은 세차게 두 방망이질하는 심장이 옷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긴장하는 그 마음을 난 모른 척했다. '타고난 성격이라는 게 있고, 그 성격은 바뀌기 어렵다'. 이 시기를 보내며 나는 이 두 가지를 깨달았고, 그리고 생각을 했다. '내 성격을 꼭 정반대로 고쳐야 할까?'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고 나니 이왕지사 이번 생이 홍당무라면 내 안의 홍당무와 어떻게 공생할지를 궁리해보자 싶었다. 홍당무를 제대로 마주하고 싶어 졌다. 불편한 상황이 오면 눈을 질끈 감고 뛰어들 것이 아니라 어떤 요인들이 내 안의 홍당무를 일깨우는지, 왜 때문에 나는 힘든지, 그 상황이 그토록 당황스러울 일이었는지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보고 싶어 졌다. 수줍더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하니까, 삶을 조금 더 단단히 살고 싶어서. 아울러 나의 좌충우돌 경험이 이 세상 크고 작은 홍당무들에게 작게나마 위로와 힘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써보는 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