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됐어?
"홍 기자는 선생님 하셨으면 잘하셨을 것 같아"
이런 말을 심심치 않게 듣는데, 들을 때마다 속으로 꿈쩍 놀란다. 나는 정말 선생님이 될 수도 있었다. 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했고 졸업 전 교생실습도 나갔다 왔다. 20대 때는 그랬다. 나와 안 어울리는 것을 가져보고 싶었고, 내 성향과 반대되는 것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내가 패션 테러리스트였던 이유이기도 하다) 플러스, 나는 글 쓰는 걸 퍽 좋아하니까. 적어놓고 보니 참 순진한 이유들인데, 암튼 이 같은 사고의 흐름에 따라 기자가 되기로 마음먹고 시험을 준비했다.
막상 기자가 되고 보니 기자일은 나와 정말 안 맞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기자일이란 결국 취재와 작성의 반복이다. 둘 다 잘하는 기자가 있고, 둘 중 하나를 더 잘하는 기자가 있고, 둘 다 못하는데 대체 어떻게 기자가 됐는지 궁금해지는 미스터리한 케이스도 있다. 나의 경우 취재보다는 작성에 더 재미를 느끼는 부류다. 홍당무처럼 얼굴을 불태우며 어찌저찌 어렵게 마친 취재를 조용히 앉아 글로 풀어낼 때 보람이 크다. (그런데 사실은 이렇게 '슬로푸드'식으로 쓸 수 있는 기사는 많지 않다. 매일 쏟아져 나오는 보도자료나 브리핑, 주요 인사들의 말처럼 이미 '반조리'된 기삿거리를 처리해야 할 때가 더 많다)
취재력과 필력 중에선 무엇이 더 중요할까. 아무래도 취재력인 것 같다. 취재가 빈약하면 아무리 필력이 뛰어나도 심폐 소생하는 데 한계가 있다. 취재력은 마치 근육 같다. 원래 근육이 어느 정도 타고난 사람이 있는가 하면 근육이 잘 안 붙는 사람도 있다. 훈련을 포기하면 근손실이 일어난다는 점도 비슷하다. 암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기자는 취재가 중요한데 취재는 결국 누군가와 끊임없이 크고 작은 싸움을 하는 일이다. 나는 알고 싶은데 상대는 알려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나는 아무리 봐도 '사슴'같은데 상대는 '말'이라고 우길 것이다. 상대와 내가 동일하게 해석할 수밖에 없는 똑 떨어지는 팩트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냉정하게 의미를 부여하고 상대가 항의할 때는 반박할 수 있는 논리력과 버티는 힘은 필수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나는 취재가 어렵다. 나는 그 누구와도 싸우고 싶지 않은 '평화주의자'인데 밥벌이를 하려면 계속 싸워야 한다.
불편한 전화를 걸기 전에 나는 늘 긴장을 한다. 물어볼 거리를 한 바닥 적어놓은 노트북 모니터를 한참 동안 응시하면서 통화버튼 누르기를 1분, 2분 미룬다. 취재원 사무실을 찾아갈 때도 많이 어색하다. 상대의 홈그라운드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갈 때 등골이 서늘해지는 특유의 긴장감이 있다. 특히 처음 인사하러 갈 때는 상대가 어떤 사람일지 모르니까 더 긴장된다. 입사 초기에는 취재원과의 티타임이 거의 아무 말 대잔치 수준이었다. 긴장했다는 걸 들키고 싶지 않았지만 불타오르는 내 얼굴과 갈 길 잃은 눈동자가 모든 걸 말해줬을 것이다. '어떤 마음을 먹고 일해야 이 긴장과 불편함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는 입사 이래 줄곧 나를 따라온 고민이었다. 아직 답을 찾지는 못 했지만 그때그때 내 마음을 잡아 줄 생각들을 하나쯤은 킵해두며 살았다. 요즘 나를 붙잡아주는 생각은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하는 중이다' 이다. 나는 나의 일을 하는 것이니, 상대에게 일부러 상처 주려는 나쁜 마음이 없는 이상 떳떳하게 어깨를 펴자고! 당당하게!
어느 시점까지는 서랍 속 교사자격증이 내 마음속 출구였다. 기자일이 안 맞는 건 기정사실이지만 참다가 참아보다가 정말 못 해 먹겠다는 결론이 서면 임용고시를 준비해볼 수도 있잖아! 이런 막연한 생각을 도피처로 삼았다. 하지만 이제는 그 출구에는 손잡이가 없다는 걸 안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밥벌이를 위해 각자의 싸움을 해야 한다. 다양한 직업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는 기자생활 덕분에 나는 세상의 모든 엿이 맛만 다를 뿐 대부분 크기가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다만 남의 떡은 커 보이고 남의 엿은 작아 보일 뿐이다. 애초 이렇게 엿 이야기로 글을 마무리 지을 생각은 없었는데. 다음 회에는 좀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야기를 풀어보겠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