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현주 May 11. 2021

실감(實感)과 경험, 예술 시장의 화두가 되다

몰입의 미학을 좇는 예술계

The Economist Books & Arts (2021년 4월 17일자)
제목  현대 예술을 소비하는 방식의 새로운 파도가 오고 있다
원제  A change in how people consume contemporary art is under way
번역  조현주


몰입형 전시의 유행은 예술 시장에도 의미하는 바가 크다.

널찍한 홀의 사방 벽면으로 빈센트 반 고흐의 푸른 붓꽃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조심스럽게 움트던 꽃봉오리들은 점차 격렬하게 흐드러지고, 배경에 흐르는 음악은 최고조를 향한다. 샌프란시스코의 한 음악당을 개조한 전시장에서 현재 개최되고 있는 <Immersive Van Gogh>의 관람객들은 서로 간의 거리를 둘 수 있도록 바닥에 그려진 원 안에 서거나 앉아 레이저 프로젝션의 빛나는 역동에 휩싸인다.


한편, 미국 동부에서는 4월 22일부터 4,645 평방미터에 달하는 규모의 새로운 전시장이 단순한 경이로움 이상의 ‘체험’으로 방문객들을 이끈다. ‘수퍼블루 마이애미(Superblue Miami)’에서 사람들은 거대한 벽면을 가로지르며 뻗어가는 꽃들을 직접 만짐으로써 작품의 움직임과 변화에 개입할 수 있다. 일본의 아트 콜렉티브 ‘팀 랩(teamLab)’의 디지털 프로젝션을 이용한 "Proliferating Immense Life—A Whole Year per Year"는 계절의 순환을 시각화한 설치 작품으로, 관람객들의 손짓을 인식하여 그에 따라 꽃들이 피고 지며, 꽃잎들이 마치 발레리나처럼 우아한 자태로 흩어지는 모습을 연출한다. 이곳에서 매번의 관람은 고유하다.


Superblue Miami에서 teamLab이 진행한 전시 <Every Wall is a Door> (2021) (출처: teamLab 유튜브 채널)


이와 같은 ‘몰입형 예술’의 체험은 미국에서 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걸쳐 널리 주목받고 있다. 상하이, 멜버른, 샤르자(아랍에미리트)에서는 수만 명의 사람들이 실제 물이 떨어지는 "레인 룸(Rain Room)"을 하나도 젖지 않은 채 통과했다. 베를린에서는 관람객들이 방향감을 잃을 정도의 짙은 노란 안개가 자욱한 갤러리를 지나고, 런던에서는 거대한 미끄럼틀을 타며, 뉴욕에서는 거울들이 끝을 알 수 없이 이어진 "인피니티 룸(infinity room)"에 들어가 볼 수 있었다. 시도를 거듭하며, 현대의 예술 경험이라는 것은 ‘경험’, 그 자체가 되어 가고 있다.


위에 언급된 설치 작품들은 한 가지 특성을 공유한다. 방문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유희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는 아티스트들의 창조 의지—그리고 관람객들의 향유 의지—가 반영된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트렌드에 대해 블록버스터급 작품이었던 "레인 룸"을 비롯, 사람의 신체와 기술 사이의 극적인 관계를 탐구하는 체험형 전시 기획 전문 콜렉티브 ‘랜덤 인터내셔널(Random International)’의 공동 창립자 플로리안 오트크라스(Florian Ortkrass)는 “박물관에 가서 그림들 안에 있는 듯한 느낌인 거죠,”라고 설명했다. 그에 더해 랜덤 인터내셔널의 또다른 창립자 한네스 코흐(Hannes Koch)는 “잘 완성된 이러한 류의 작품은 사람들을 감정적으로 사로잡아 틀에 박힌 매일의 삶을 탈출하게 하죠. 사람들은 자신을 둘러싼 타인과 공간에 대한 의식과 인지를 증폭시키는 경험들을 좋아합니다,”라고 말했다.


감각을 기반으로 한 경험에의 ‘몰입(immersion)’은 라스코 동굴 벽화, 방문자를 압도하는 고딕 성당의 웅장함 등에서 출발하여 인간의 역사를 관통하는 유구한 내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19세기와 20세기를 거치면서 작품 활동은 훨씬 더 개인적인 행위가 되었으며, 독립적인 개체로 전시되는 회화와 조소에 초점을 맞추게 되었다. 페이스 갤러리(Pace Gallery)의 대표이자 인터렉티브 아트를 위한 새로운 파생 공간인 ‘수퍼 블루(Superblue)’의 공동창립자 마크 글림셔(Marc Glimcher)가 말했듯, 1960년대에 들어서야 아티스트들은 다시금 “예술이 전시장의 분위기와 환경을 이루도록 재창조”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이러한 “실험적인 방향”을 선도한 것은 주로 캘리포니아에서 활동하며 빛과 공간을 소재로 한 제임스 터렐(James Turrell)과 로버트 어윈(Robert Irwin)의 작품들이었다. 그와 동시에 뉴욕에서는 좀 더 퍼포먼스적이고 다원적인 영역을 탐색한 로버트 라우셴버그(Robert Rauschenberg)와 쿠사마 야요이(Yayoi Kusama) 등의 예술 지파가 자리 잡았다. 그리고 마침내 2003년, 덴마크-아이슬란드 태생의 아티스트 올라퍼 엘리아슨(Olafur Eliasson)이 테이트 모던 미술관의 터바인 홀(Turbine Hall) 내부에 거대한 ‘태양’을 매달고 관람객들이 그 아래에서 마치 선탠을 하듯 빛을 쬘 수 있도록 한 작품을 통해 몰입형 예술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도래했음을 알렸다. 그 후 아티스트들은 점차 발전해가는 기술들을 도구삼아 야심찬 설치 작품들을 실험적으로 선보여 오고 있다.   


올라퍼 엘리아슨의 "The weather project" (2003) (출처: Studio Olafur Eliasson)


몰입형 예술의 전시가 큰 인기를 끌 수 있다는 것이 이미 증명됐다. 전 세계의 관람객들은 이제 쿠사마 야요이의 “무한 거울의 방(Infinity Mirror Room)”에 들어갈 수 있는 단 60초를 위해 수 시간을 기다린다. [중략]


시선을 빼앗는 새로운 기술은 몰입형 예술이 이처럼 큰 인기를 끌게 된 비결 중 하나다. 몰입형 전시 기획 전문의 엔터테인먼트 회사 ‘미아오 울프(Meow Wolf)’를 공동 경영하고 있는 알리 루빈스타인(Ali Rubinstein)은 스크린으로 포화된 이 세상에서 “상상력을 자극하는 실제의 공간 안에 있는 것이 어떠한 안도감을 준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수퍼블루의 마크 글림셔도 “사람들은 예술적인 창작과 연결되고 싶어 한다”며 동의했다. 더 깊이 들어간다면, 삶이 도시화되고 고립되어 갈수록 사람들은 “아티스트들이 모든 것에 대한 초월과 사람 사이를 잇는 공유될 수 있는 경외감으로의 통로를 열어줄 것을 필요로 한다”라고 글림셔는 덧붙였다.


베를린 바드 칼리지에서 예술과 사회를 가르치는 교수 도로테아 본 한텔만(Dorothea von Hantelmann)은 예술은 언제나 그 시대의 영혼을 비춘다고 말한다. 그녀가 “물체에서 경험으로의 전환”이라 부르는 것은 많은 것이 풍요로운 이 세계의 여러 얼굴을 반영하는 현상이다. 물질의 과다, 더 소통적인 젊은 세대와 그들의 세련된 미감, 그리고 어쩌면 “새로운, 생태학적인 사고라 부를 수 있을 연결과 관계의 형태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이 반영된 현상인 것이다.




현대 예술을 소비하는 방식의 새로운 파도가 오고 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거대하고 큰 비용이 드는 설치 작품들의 급부상은 지난 시대들을 위해 디자인되었던 기관들에게는 압박으로 다가온다. 아직까지 쉽게 매매할 수 있는 형태의 작품들을 기반으로 하는 예술 시장에서 미술관과 갤러리들은 어떻게 현시대의 트렌드와 발을 맞추고, 한시적인 경험을 창조하는 아티스트들은 어떻게 경제적 보상을 얻어야 할까.


다가올 전시에서 관람객들이 빛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공간을 선보일 랜덤 인터내셔널의 한네스 코흐는 예술계가 대형 프로젝트들을 위해 “후원자들이 필요했던 르네상스 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다”라고 말한다. 앞에서 언급됐던 미아오 울프와 수퍼블루는 세계 어디서든 곧 도입될 수 있을 티켓 판매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시도하고 있다. 경영자 루빈스타인은 미아오 울프가 예술가들의 역할을 가치롭게 여기고 그들에게 경쟁력 있는 임금을 지불하는 것이 주요한 목표인 “사회 운동형 예술 프로젝트”라고 설명한다. 미아오 울프는 팬데믹의 불황을 견뎌내고 최근 라스베이거스에 초현실 식료품 잡화점인 ‘오메가 마트(Omega Mart)’를 오픈했다. 올해 안으로 오메가 마트는 미국 덴버와 아시아에도 지점을 낼 것으로 예정되어있다.


그리고 수퍼블루는 그들이 추구하는 형태의 현대 예술을 위해 새로운 시장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실리콘 밸리의 기업가들로부터 부분적으로나마 자금을 지원받는 이 회사는 대규모 프로젝트의 자금을 선행 투자로 조달한 후, 티켓 판매 수익금을 참여 아티스트들과 분배하여 갖는다. 앞으로 수퍼블루는 미술관과 갤러리들에게 작품을 대여하고 대형 공공 예술 작품들을 중개하는 역할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이처럼 전 세계로 “체험형 아트 센터”의 유행이 번지며 더욱 커질 매력적인 움직임을 기대해볼 만할 것이다.


2021년 2월, 라스베이거스에 오픈한 체험형 공간 '오메가 마트' (출처: Meow Wolf 유튜브 채널)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에서 8월 22일까지 열리는 몰입형 미디어아트 전시 <teamLab: LIFE> 바로가기

https://www.teamlab.art/ko/e/ddp/


작가의 이전글 아프리카의 노동자들, 새로운 미술관으로 운명을 되찾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