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다시 찾은 병산서원은 마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환하게 반겨주었다. 진입로엔 병산서원 사인이 정갈하게 서 있었고, 속도를 조절하며 마음가짐이 벌써 달라짐을 느꼈다.
배롱나무 꽃이 활짝 핀 계절에 주로 찾곤 했었다. 이유는, 겨울은 황량하니까.
하지만 이런 생각이 바뀐 계기가 있었다. 어느 해 겨울, 우연히 앙상한 나뭇가지를 올려다보았는데 가지 끝 부분의 세밀한 구조에서 어떤 힘이 있음을 발견했다.
잎사귀를 떨궈낸 가지는 그 자체로 완벽한 아름다움을 드러냈다. 나무의 뼈대를 그대로 보여주는 당당함은 이제 새로운 잎을 낼 준비를 마친 상태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겨울은 이제 어딘가 부족하고 움츠려드는 계절이 아니기에 배롱나무 꽃이 없는 병산서원을 주저 없이 찾을 수 있었다.
병산서원은 조선 유교 문화의 본연의 가치를 건축으로 증명하는 공간이다. 스스로를 낮추는 '비움'을 택함으로써, 산천의 형세와 건축이 경계 없이 하나로 섞이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조화를 이룬다. 이러한 절제와 수양의 정신은 병산서원이 가진 미학의 본질이다.
이 깊은 정신의 뿌리는 고려 시대 풍악서당에서 시작되었다. 1572년, 서애 류성룡 선생이 학문의 터전으로 지금의 자리를 점지한 이래, 전란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유학의 명맥을 정직하게 지켜왔다. 1613년 선생의 위패를 모시며 지금의 격을 갖추었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 속에서도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가 되었다. 2019년에는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며 한국 서원 건축의 백미로 꼽히고 있다.
병산(屛山)이라는 이름은 낙동강 너머를 마주한 산이 마치 병풍을 두른 듯하다 하여 붙여졌다. 이름에 담긴 뜻처럼, 이곳은 산과 강이 대립하지 않고 하나의 풍경으로 녹아드는 경계의 지점이다.
만대루라는 이름은 두보의 시 구절인 '취병의만대(翠屛宜晩對)', 즉 '푸른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은 늦을 녘 마주하니 마땅하구나'에서 빌려왔다. 이는 단순히 저무는 해를 바라본다는 의미에 그치지 않는다. 늦은 나이, 혹은 학문의 끝자락에서야 비로소 자연과 진리를 온전히 마주하게 된다는 겸허한 기다림을 담고 있다.
서두르지 않고 침묵하며 병산을 마주하는 이 누각은, 비움으로써 채워지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절정을 보여준다.
병산서원의 복례문은 세 칸 규모의 솟을 대문으로 바깥의 소란을 털어내고 고요한 사유의 세계로 이끄는 첫 번째 문턱이 된다. 기교 없는 직선의 선들이 마음을 곧고 단정하게 매만져준다. 나를 다스려 본연의 예(禮)로 돌아가라는 그 이름의 무게가 건축의 선마다 묵직하게 흐른다.
시선은 만대루 기둥 사이를 지나 입교당까지 일직선으로 흐른다. 이 단단한 축선(Axis)의 질서는 발을 들인 이에게 정갈한 침묵을 권한다. 묵직한 문틀은 그 자체로 풍경을 담는 틀이다. 잎을 비워낸 겨울나무처럼, 나 또한 이 정직한 문틀을 통과하며 본연의 나를 회복할 준비를 마친다.
복례문을 지나면 만대루가 만든 낮은 길이 펼쳐진다. 거칠게 휘어진 기둥들이 빚어낸 세상에 둘도 없는, 해학적인 필로티다. 휘어진 기둥 사이로 쪼개진 햇살을 밟으며 고개 낮춰 지나는 동안, 마주할 세계에 대한 기대로 마음이 설렌다.
누하를 지나 계단을 오르면 입교당(立敎堂)이 드러난다.
서원의 심장부인 입교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가르침을 바로 세운다'는 그 이름처럼, 유생들이 모여 학문을 닦던 서원의 중심이다. 흥미로운 점은 중앙의 3칸은 벽을 허문 대청마루로 비워두고, 양쪽 끝 1칸씩은 온돌방을 두어 채웠다는 사실이다.
마당에 서서 대청마루 위를 올려다보면 '병산서원'이 적힌 묵직한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이는 조선 철종 임금이 직접 내려준 사액(賜額) 현판이다. 국가가 서원의 가치를 공인했다는 증표이자, 이 공간이 지닌 사회적 무게를 웅변하는 징표다. 임금의 어필(御筆)이 주는 단단한 힘은 입교당의 5칸 기둥과 어우러져 공간의 기품을 한층 높인다.
입교당을 뒤로하고 오른편에 서재, 정허재(靜虛齋)가 있다. 동재와 마주 보며 유생들의 기숙과 서고의 역할을 겸한 공간이다.
정(靜)은 흔들림 없는 평온이며, 허(虛)는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비어 있음이다. 스스로를 가다듬어 마음을 비울 때 비로소 이치가 스며든다는 믿음이 이 방의 이름에 서려 있다. 선배는 동재에, 후배는 서재에 머무는 엄격한 나눔 속에 서로의 자리를 존중하는 선비의 질서가 배어 있다.
나무와 돌, 흙으로 정직하게 지어진 공간에 신발을 벗고 오르는 일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잘 다듬어진 주춧돌 위에 당당히 서 있는 다섯 칸의 입교당은, 잎을 떨군 채 뼈대만으로 서 있는 겨울나무의 기개와 닮아 있다.
입교당의 돌계단은 비정상적이다. 무려 약 30센티미터 높이의 계단은 단순히 건물의 기단을 높이기 위함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 학문을 닦는 길이 결코 쉽지 않음을 평소 체험하게 하는 건축적 장치가 아니었을까. 한 칸을 오를 때마다 해야 하는 그 수고로움은, 지혜를 얻기 위해 거쳐야 하는 인고의 시간을 닮아 있다.
입교당 뒷면에 난 세 개의 창은 바람의 길이자 또 하나의 풍경을 담는 액자다. 한 여름, 달구어진 마당의 빈자리를 채우려 시원한 산바람이 이 창을 넘어 안으로 든다. 인위적인 장치 없이 자연을 집 안으로 들이는 유연한 건축의 미학이다.
입교당 마루에 서서 손 끝에 닿는 기둥의 촉감을 가만히 느껴본다. 매끈하게 가공된 재료에서 얻을 수 없는, 거칠면서도 따뜻한 세월의 질감이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힌다.
기둥에는 비바람의 궤적이 정직하게 새겨져 있다. 갈라진 틈과 깊게 파인 옹이는 감춰야 할 흉터가 아니라, 수백 년을 버텨온 침묵의 기록이다.
패인 대로 제 자리를 지키는 정직한 기둥의 뒷모습에서 변치 않는 신뢰와 묵직한 위로가 전해진다.
만대루의 본질은 비움이다. 정면 일곱 칸의 대형 누각임에도 벽과 문이 없다. 저물녘 노을이 병산을 물들일 때, 비워둔 일곱 칸은 비로소 완성된 풍경이 된다. 자연을 가두지 않고 비워둠으로써 만물을 담아낸 지혜다.
입교당 마루끝에 앉으면 시선은 거대한 회항을 시작하고, 안을 향하던 시선이 바깥을 향해 광활하게 터지는 반전의 묘미를 맛본다. 만대루의 기와지붕이 수평을 그리며 저 멀리 병산의 절벽을 액자 속으로 끌어당긴다.
신발을 벗고 입교당 마루 위로 올라서면 건축이 빚어낸 또 다른 프레임을 만난다. 마룻바닥과 지붕선, 현판이 정갈하게 수평을 잡고, 굵직한 기둥들이 수직을 세워 한층 단단한 그림을 완성한다.
입교당 뒤편으로 돌아 나서면 뜻밖의 풍경이 눈길을 붙잡는다. 열린 창 너머로 대청과 만대루, 복례문까지 모든 건축이 하나의 직선으로 꿰어지는 찰나다. 의외의 장소에서 마주하는 이 완벽한 정렬은 병산서원이 숨겨놓은 백미다.
병산서원의 가장 깊숙한 곳에 위치한 존덕사는 서애 류성룡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올리는 사당으로, 가르침을 이어가는 병산서원의 가장 깊고 높은 중심이다. 입교당 뒷마당의 높은 돌계단에 올라서면, 서원의 모든 정신이 시작된 단단한 뿌리를 마주하게 된다.
존덕사 계단 우측으로는 낮은 지붕의 작은 문이 보인다. 소중한 목판들을 보관해 둔 장판각으로 향하는 길이다. 세상의 소란을 피해 잠시 머리를 낮추어야 들어설 수 있는 이 문은, 스스로를 살피던 선비들의 엄격하면서도 겸손한 기개를 닮아 있다.
존덕사의 높은 계단을 내려와 다시 만대루 앞에 선다. 아득한 원경을 품었던 시선은 이제 발밑의 따스한 해학으로 내려앉는다. 만대루의 기둥들은 자로 잰 듯 곧은 법이 없다. 휜 나무는 휜 모양 그대로, 굽은 나무는 굽은 결 그대로 지붕의 무게를 나누어 짊어지고 있다.
다듬지 않은 돌 위에 무심히 올라앉은 '덤벙주초'와 그 위의 굽은 기둥을 보고 있으면, 꾸미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다는 지혜를 얻는다. 규격에 맞지 않아 버려질 법한 나무들이 이곳에서는 당당히 서원의 얼굴이 되어 저 멀리 병산을 마주하고 있다.
만대루에 오르기 위해서는 투박한 통나무 계단을 거쳐야 한다. 세련된 솜씨로 깎아낸 매끄러운 계단은 보이지 않는다. 그저 굵은 통나무를 툭툭 베어내어 발을 디딜 자리를 내어주었을 뿐이다.
아쉽게도 지금은 그 계단을 딛고 위로 올라설 수 없다. 하지만 예전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만대루 위에서 마주했던 풍경은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수려함 그 자체였다. 일곱 칸 만대루의 기둥들이 각기 다른 크기의 액자가 되어 낙동강과 병산을 나누어 담아내던 그 순간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깎아지른 병산과 은빛 물결이 흐르는 낙동강 줄기는 서원 밖을 잠시 걸어야 닿는다.
강으로 향할수록 절벽 같은 산세가 가깝다. 멀리서 그늘에 가려 어둡게만 보이던 산은 다가갈수록 바위와 풀이 빚어낸 아기자기한 모습을 드러낸다. 오히려 그 짙은 그늘 덕분에 산의 굴곡은 선명해지고, 그 아래 강물은 더 맑게 반짝인다.
강변의 억새는 오후의 햇살을 머금고 일렁인다. 어두운 산자락과 눈부신 억새가 어우러진 수려한 경관이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수려한 산수는 사람의 마음을 씻어내고 안정시킨다' 고 하였다.
자연 속에서 정돈되고 숙성된 감정은 전인교육의 토양이었을 것이다.
마당을 공유하며 산천과 함께 학문을 닦던 병산의 질서는 오늘날의 학교가 되새겨야 할 유산이다.
겨울 병산서원은 담백함의 정점이었다.
꽃을 떨군 배롱나무는 빛으로 수묵화를 그려내며
채색 없는 서원과 조화를 이루었다.
정적 속에서 글 읽는 소리가 들릴 듯 선명하다.
오로지 비워냄으로 자연을 품고 수백 년을 견뎌온 정직함이 고마웠다.
비움은 일시적인 상실일 뿐,
비로소 온전한 채움이 시작된다.
병산서원에서 생각해 본다.
무엇을 비우고, 무엇을 채우고 싶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