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호의 역설
사람들은 바스키아를 일명 ‘검은 피카소’라고 부른다. 사실 나도 그렇게 그를 부르곤 했었다. 이 단어 안에는 바스키아가 거장 피카소에 견줄만하다는 의미도 포함되지만 실은 근본적인 차별과 무시가 깔려있다. 피카소를 ‘하얀 바스키아’라 부르는 경우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했다. 바스키아의 수식어 앞에서 어쩐지 마음 한편이 무거웠다. 이미 정해져 있는 기준으로 판단하는 일은 세상의 고약한 버릇이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2025년 가을부터 열린 <장 미셀 바스키아, 과거와 미래를 잇는 상징적 기호들> 전시를 기다려왔지만 전시관람을 자꾸 미뤘던 것도 이런 불편함 때문이었던 것 같다.
바스키아의 그림은 불친절하다. 상징적인 표현들이 쉽게 이해되지 않고 시선도 길을 잃기 십상이지만 그림 하나하나에 담긴 묵직한 신호가 걸음을 느리게 한다.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편견의 시선을 걷어내기 위한 그의 외침이 곳곳에 걸려있었다.
당시 뉴욕은 지금의 정돈된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도시는 심각한 재정난에 빠져 있었고, 관리되지 않은 건물들이 방치된 채 거리 곳곳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범죄와 마약의 흔적이 일상이 된 어수선한 풍경이었지만, 역설적으로 그 무법천지의 자유로움 속에서 새로운 예술의 싹이 트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가난한 예술가들이 저렴한 임대료를 찾아 소호의 버려진 공장지대로 모여들었고, 다른 한쪽에서는 자본주의의 번영을 누리는 이들의 화려한 파티가 열렸다. 극심한 빈부격차와 차별이 도시를 누르고 있었지만, 한편 젊은 예술가들에게 뉴욕은 거대한 실험실이었다.
이 혼돈의 무대 위로 한 소년이 등장한다.
장-미셸 바스키아 (Jean-Michel Basquiat 1960 ~ 1988)는 뉴욕 브루클린에서 아이티 출신 아버지와 푸에르토리코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 교통사고로 병원에 입원한 바스키아에게 어머니가 선물한 해부학책에 관심을 갖고, 훗날 작품 곳곳에 반영된 일화는 그의 강렬한 서사만큼이나 독특하다.
검은 피부, 중산층 가정과 학교의 고루한 규칙은 그의 넘치는 열정을 담아내기에 턱없이 좁은 그릇이었다. 거리로 나간 바스키아에게 지저분한 지하철과 거친 벽면은 이민자로서 억눌린 분노와 예술을 향한 갈증을 쏟아내기에 더없이 좋은 캔버스가 되었다. 법과 질서가 느슨해진 자리에 대신 들어선 것은 날 것 그대로의 표현들이었다.
쇠락해 가는 도시의 풍경 위에서 바스키아는 문장을 새기며, 위선적인 세상을 향해 가장 뜨거운 냉소를 보냈다.
그는 캔버스가 아닌 뉴욕의 낡은 벽면을 일기장 삼아 세상을 향한 대화를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 친구 알 디아즈(Al Diaz)와 함께 새긴 ‘SAMO©(Same Old Shit)’라는 태그(Tag)는 그가 세상에 던진 첫 번째 신호였다. 그라피티(Graffiti) 화가들이 자신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 남기는 고유한 표식인 이 태그는, 바스키아에게 있어 단순한 낙서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그는 '늘 똑같은 썩은 일상'이라는 비속어 뒤에 깊은 사유를 담은 아포리즘을 덧붙이며 세상의 위선에 도발적인 조소를 보냈다.
SAMO© AS AN ALTERNATIVE TO ART-LESS-ART : 알맹이 없는 예술에 대한 대안으로서의 SAMO
SAMO© AS AN END TO PLASTIC POLISHED AND FALSE YUPPIE HEDONISM: 가공된 매끄러움과 거짓된 여피족 쾌락주의의 종말
가난했던 바스키아는 화려한 갤러리 안에서 샴페인을 마시며 예술을 논하는 이들을 향해 벽 위에서 조용히 야유를 보냈다. 화가이기 전에 문장가였던 그의 시작을 보고 있으면, 글쓰기가 세상을 흔드는 가장 강력한 무기라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캔버스를 살 돈은 없어도, 뉴욕의 모든 벽은 그에게 열려 있었기 때문이다.
바스키아는 거리의 벽면에 문장을 남길 때마다 습관처럼 ©기호를 덧붙였다.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없는 거리의 낙서 위에 '저작권(Copyright)'을 선언한 이 행위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풍자였다.
이 기호는 두 가지 중의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첫째는 거리의 이름 없는 낙서가 아니라, 이것이 엄연한 '나의 지적 재산'임을 세상에 선포한 것이다. 이름조차 없던 비주류 청년이 주류 사회의 제도인 저작권을 빌려와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한 셈이다.
둘째는 자본주의와 미술계의 소유욕에 대한 비웃음이다.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공의 벽에 저작권을 표시함으로써, 예술을 상품으로만 취급하는 세상을 향해 유쾌한 냉소를 보냈다.
그에게 ©기호는 '이 문장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나의 철학이다'라고 찍는 인장과 같았다. 지워지기 쉬운 분필과 스프레이로 쓴 글 옆에 붙은 작은 원 안의 C는, 그 문장을 영원히 지워지지 않는 예술로 격상시켰다.
바스키아에게 세상의 틀을 지우는 행위는 제자리를 찾아가는 여정이다.
그는 기성사회에 대한 반항과 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예술을 통해 유쾌하게 거부한다.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하나씩 분석하여 고발하듯 상징화된 자신만의 기호로 화면에 기록한다.
무의미한 0019와 같은 숫자는 존엄성과 상관없이 인간이나 사물을 하나의 데이터로 분류하려는 체계적인 억압을 상징하기도 한다. 바스키아는 억압의 상징인 숫자를 거친 붓질과 함께 배치함으로써, 숫자로 정의할 수 없는 인간의 본질과 존엄성을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바스키아는 캔버스 천을 틀에 고정하지 않고 거칠게 매달거나 뒷면을 그대로 사용한다. 이것은 정교하게 계획된 세상을 거부하고 본질을 드러내기 위한 공정이자 기성 미술계의 단단한 권위에 정직한 균열을 내는 저항이다. 오른쪽 아래 적힌 'MLK'는 그가 직접 선택한 역사이자 계보이다. 억압받던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한 '마틴 루터 킹' 목사를 소환함으로써, 그는 개인의 고통을 시대적 서사로 확장했다.
주류 미술계는 바스키아를 ‘거리에서 온 신비로운 흑인 천재’라는 자극적인 프레임 안에 가두려 했다. 그들에게 그는 예술적 동료라기보다 백인 중심의 미술계에 등장한 구경거리에 가까웠다. 이러한 시선은 그에게 또 다른 형태의 소외감과 억압으로 다가왔다.
I wanted to be a star, not a gallery mascot.
나는 갤러리의 마스코트가 되기보다 스타가 되고 싶었다.
- 1985년 2월 10일 자 <뉴욕 타임스 매거진>의 표지 기사 -
‘New Art, New Money: The Marketing of an American Artist’
1985년 2월 10일 자 <뉴욕 타임스 매거진>의 표지를 장식한 사진이다. 바스키아는 당시 '뉴욕 주류 사회에 진입'을 상징하는 아르마니 정장을 차려입고 맨발로 앉아 정면을 응시한다. 등 뒤에 놓인 거친 그림들은 그가 지켜온 예술적 토대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화면 속 정장은 주류 사회가 입혀준 세련된 옷차림이나, 그 아래 드러난 맨발은 자신의 뿌리를 드러내고자 하는 태도가 선명하다. 만약 아르마니 정장과 그에 걸맞은 세련된 구두를 신었다면, 이 사진의 울림이 지금까지 남아있었을까.
바스키아는 흑인 운동선수나 음악가, 그리고 이름 없는 이들을 전사의 형상으로 불러낸다. 그들에게 씌운 왕관은 타인이 허락한 지위가 아니라 스스로 쟁취한 주권의 상징이다. 이는 인종차별과 편견이 가득한 세상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지켜내겠다는 의지이다.
왕관의 의미를 알고 작품을 보면 그 안에 담긴 고통이 전해진다. 하지만 이 고통은 침울함에 머물지 않는다. 스스로를 왕이라 선포하는 이 당당하고 유쾌한 에너지는 우리를 그림 앞에 한 걸음 더 머물게 한다.
바스키아에게 뼈대는 사회가 입혀준 겉옷을 모두 벗어던진 인간의 실체이다. 인종과 계급, 신분 등의 수식어가 사라진 자리에 남는 가장 공평한 본질이기도 하다.
그는 피부라는 막을 걷어내고 안의 단단한 구조를 드러냄으로써 차별의 근거를 없앴다. 해부학적 선은 사람을 겉모습으로 분류하려는 세상에 맞서, 누구나 지니고 있는 정직한 생명의 본질을 증명하는 도구다.
이런 독특한 시선은 바스키아만의 매력이다. 날카롭고도 고유한 시선이 바스키아를 완성한다.
바스키아는 어린 시절 즐겨 본 만화를 언어로 삼아 굵은 선과 원색이라는 친숙한 대중의 언어로 세상을 해석했다. 단순한 선 안에는 세상과 정직하게 대화하려는 의지가 담겼다. 화면 속 만화 캐릭터는 익숙한 틀을 깨고 자신만의 길을 내는 유쾌한 풍자다.
예술은 개인의 숨결이 담긴 창의적인 몸짓이다.
고요한 일상을 흔들어 삶을 환기시킨다.
그래서, 시대를 넘어 예술이 사랑받는 이유는 명확하다.
바스키아 역시 그 길길을 성실히 따랐다.
'검은 피카소'라는 그의 수식어는
이제 내려놓기로 했다.
짧고 강렬했던 그의 생애는 묵직한 질문을 남긴다.
겹겹이 껴입은 나의 겉옷은 무엇인가.
그 허울을 걷어냈을 때 드러날 나의 솔직한 뼈대의 실체가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