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조각하다: 론 뮤익이 던지는 생(生)의 질문들

익숙한 낯섦에서 마주하는 삶의 조각

by 무드온라이프


광화문_월대와_해태.png 새로 길을 낸 월대가 광화문으로 이어진다. 제 자리를 찾은 해태가 묵묵히 그 길을 지키며 햇살 아래 놓인 역사는 이제 오늘의 일상이 된다. 필자제공

광화문에서 미술관 가는길


1923년, 일제는 전차 선로를 놓기 위해 월대를 강제로 철거했다. 일제의 의도는 선명했고 전차 선로는 명분이었다. 그 이면에는 왕실의 위엄을 깎아내리고 조선의 정신적 중심축을 지우려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었다.


월대복원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역사적인 복원공사 장면을 경복궁관람의 숨은 맛집인 광화문의 대한민국역사박물관 8층 '황토마루 정원'에 가서 지켜보기도 했었는데, 드디어 2023년 10월 묻혀있던 왕의 길이 100년 만에 모습을 드러냈다.


이제 제 자리를 되찾은 늠름한 해태가 그 길의 시작점을 묵묵히 지킨다. 월대는 멈췄던 시간을 다시 흐르게 하는 역사의 가교가 된다. 월대를 밟아보고, 해태와 눈을 맞추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과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이 함께 마련했다. 까르띠에 재단은 론 뮤익을 세계적인 작가로 알린 오랜 조력자다. 두 기관의 신뢰가 서울이라는 공간에 침묵을 옮겨 놓았다.


대부분의 미술관이 문을 닫는 월요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방황하는 월요일의 관람객들을 맞이한다. 론뮤익의 전시소식을 접하면서 특히 거대한 작품의 스케일이 어떤 메시지를 전할지 궁금한 마음을 안고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문을 열었다. 밖은 광화문 월대의 복원과 함께 서울의 활기찬 시간이 흐르고 있었지만, 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공기는 일순간 멈춘 듯했다.

국립현대미술관_서울관_입구전경.png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입구전경. 붉은 벽돌과 매스 감 있는 컬러풀한 조형물이 길 위에서 마주한다. 필자제공

론 뮤익(Ron Mueck 1958~ )은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으로 영화와 인형극의 특수효과 전문가로 출발해 순수미술로 전향한 독특한 경력이 있다. 그는 인간의 피부 조직 하나, 주름 한 줄기까지 정교하게 재현하는 하이퍼리얼리즘(Hyperrealism)의 대가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론뮤익 전시 벽면 필자제공

론뮤익은 디테일한 겉모양을 넘어 인간의 내면에 흐르는 감정, 때로는 숭고함마저 생생하게 길어 올려 겉모양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리게 하였다.


작품 앞에 서면 정교함에 대한 감탄은 이내 사라진다. 그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존재의 무게에 대한 사유다. 익숙한 일상을 낯선 침묵의 장면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의 작업은 단지 시각적 묘사를 넘어, 현대인의 존재감, 고립감, 생로병사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거대한 스케일 속에서 마주하는 침묵의 감정
감정이 배제된 듯한 표정과 정지된 자세
인간의 내면과 고독을 섬세하게 드러내는 조형 언어


론 뮤익 조각의 핵심은 '스케일의 왜곡'에 있다. 그는 실제 인체와 똑같은 크기로 작업하지 않는다. 압도적으로 거대하거나, 한 손에 들어올 듯 작게 만든다. 이러한 비정상적인 크기는 관람객에게 이질적인 감각을 일깨운다.

사과 하나가 집채만큼 커진 풍경을 떠올린다. 우리는 그 거대한 사과 안으로 유유히 걸어 들어간다. 평소 입 안에서만 감각되었던 사과에 대한 감각이 이제 확장될 것이다. 단순히 사물의 크기만 바뀌어도 세상은 이토록 생경하게 변한다.

론 뮤익은 인간의 '몸'으로 이 낯선 감각을 끌어낸다. 너무 크거나, 반대로 아주 작다. 이 낯선 크기는 관람객의 발길을 멈추어 무심코 지나쳤던 생의 본질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침대에 누워 있는《거대한 여인, In Bed》 앞에 섰을 때, 전시공간을 가득 채우고도 남을만한 압도감을 느꼈다. 세밀하게 묘사된 피부의 모공과 위태로운 눈빛은 그녀가 느끼는 고독의 크기가 얼마나 거대한지 충분히 전달되었다. 그것은 침묵의 외침이었다. 색채는 제거되고 거대해진 스케일만 남아 고독의 크기마저 같은 크기로 부풀리고 있었다.

론뮤익의 'In Bed' 거대한 스케일만큼 섬세하게 묘사된 인체와 표정. 시선을 모으고 사유로 이끈다. 필자제공
론뮤익_인베드_관람객.jpg 론뮤익의 'In Bed' 거대한 조각 앞에 선 관람객들이 작품 속 여인의 고독과 깊은 시선을 받아낸다. 출처:남기용(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거대한 작품 주변을 천천히 돌아보는 동안 말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만큼 주변은 고요했다. 이 기이한 현상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았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일상에서 놓쳐버린 것들을 작품 앞에서 끌어내고 있는 중이었다. 감정은 다르겠지만 각자의 마음 깊숙한 곳에 담겨있었던 무언가가 분명 자극이 되는 순간이었다.


반면, 실제보다 작게 조각된 인물들은 그 왜소함 때문에 오히려 현대인의 연약함을 더 절실하게 드러낸다. 약 60cm 정도로 작은 인체인 《나뭇가지를 든 여인, Woman with Sticks》에서 여인은 아무런 보호 장비 없이 맨몸으로 자기 몸집보다 큰 나뭇가지 뭉치를 끌어안고 있다.

론뮤익_Woman_with _Sticks.jpg 론뮤익의 'Woman with Sticks' 나뭇가지 너머 어딘가를 향하며, 묵묵히 자신의 짐을 감내하는 인간의 의지를 표현 필자제공

그녀의 굽은 등과 긴장된 근육, 짓눌린 살결은 삶을 무게를 노동의 고단함으로 선명하게 말하고 있다. 부드럽고 취약한 여인의 피부와 딱딱하고 날카로운 나뭇가지의 대비는 생존의 치열함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한다. 여인의 시선은 나뭇가지 너머 어딘가를 향하며, 묵묵히 자신의 짐을 감내하는 인간의 보편적인 초상을 보여준다. 지금은 나무를 이고 지는 일은 드물어졌지만 여전히 삶이 버겁다는 것을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었다.


론 뮤익의 조각 작품은 한 바퀴 돌아 뒷모습까지 보아야 완성된다.《젊은 연인, Young Couple》이라는 작품이 대표적이다. 앞에서 보기에 그들은 그저 평범한 연인처럼 보이지만, 뒤로 돌아가 두 사람이 맞잡은 손의 미묘한 힘의 균형과 거리감을 확인하는 순간 소름 돋는 긴장감이 전해진다.

젊은연인.jpg 론뮤익의 젊은 연인 'Young Couple'정면. 평범한 연인의 모습이지만 반전이 숨어있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Fondation Cartier
론뮤익_젊은연인.jpg 론뮤익의 'Young Couple' 필자제공

잡고 있지만 멀어져 있고, 함께 있지만 고립된 연인의 역설. 작가는 보이지 않는 뒷모습에 말보다 선명한 감정의 지도를 그려놓았다. 그는 젊은 연인이라는 평범한 주제를 통해 보이지 않는 비틀어진 마음을 친절하게 말해주고 있었다.


인기가 많았던 《Chicken Man》역시 마찬가지다.

닭과 마주 앉은 노인의 시선에는 일상적인 소재 속에 깃든 초현실적인 긴장감이 흐른다. 테이블 위, 속옷차림으로 앉은 구부정한 노인이 혼신의 힘을 다해 한 마리 닭과 대치하고 있는 장면. 인간과 자연물과의 깊은 응시에서 상대적으로 인간의 나약함을 드러낸다.

론뮤익_chiken man.jpg 론뮤익 'Chicken Man' 구부정한 등을 보이며 속옷차림의 노인이 닭과 대치하는 기이한 모습. 필자제공

잔뜩 힘을 주며 닭을 노려보고 있는 노인에게 감정이 이입되면서 나도 모르게 긴장감에 휩싸여 테이블 주변을 돌고 있었다.


전시의 정점은 거대한 백색 두개골들이 산처럼 쌓여 있는《Mass》였다. 죽음을 상징하는 해골들이 거대하고 매끄럽게 쌓여 있는 풍경은 삶과 죽음, 존재와 허무 사이를 성찰하게 하는 힘을 가진다.

론 뮤익은 이 거대한 덩어리들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삶은 결국 이 침묵의 덩어리로 귀결되는가?' 이 작품은 인간적인 모든 것을 다 걷어낸 후 남은 '뼈'라는 가장 본질적인 구조물로 돌아간 인간의 군상이다. 역설적으로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이 '살아있음'의 존재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두개골의_더미와_사진찍는_관객.jpg 론 뮤익의 《Mass》는 본질만 남은 인간의 묵직한 침묵이다. 두개골 더미를 렌즈에 담는 관람객들의 뒷모습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선 현재의 안도가 읽힌다. 필자제공

거대한 두개골 더미 앞에서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두개골 더미에서 사진을 찍는 관람객들의 모습이, 객관화된 인간의 마지막 모습에 두려움을 걷어내고 오히려 안도하는 것처럼 보였다.


손의 시간, 작업실의 온기


갤러리 6에서는 프랑스의 사진작가이자 영화감독 고티에 드블롱드 (Gauthier Deblonde)의 좀처럼 보기 힘든 론 뮤익의 스튜디오와 작업 환경을 엿볼 기회를 제공한다. 25년 이상 뮤익의 작업 과정을 기록해 온 드블롱드의 작업은 차가워 보이는 조각들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었다. 실리콘을 입히고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을 심는 작가의 손길은 수행자의 그것과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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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티에 드블롱드의 영상작업에는 론뮤익의 작업과정과 공간이 따스한 눈길로 담겨있다. 필자제공
고티에 드블롱드 (Gauthier Deblonde)의 론뮤익 작업영상 필자제공

《Woman With Shopping》에서 보여준 일상적인 쇼핑백의 질감과 여인의 지친 어깨선은, 작가가 인간의 삶을 얼마나 깊은 애정을 가지고 관찰했는지를 보여주었다. 현대인의 누구여도 상관없을, 일상에서 지친 그녀의 표정은 품에 안겨 엄마를 바라보는 애처로운 아기의 시선과도 마주치지 못한 채 쇼핑백으로 대변하는 삶의 무게를 견디고 있었다. 이 엇나간 시선이 주는 울림이 작품의 전부가 되어 발길을 붙들고 무표정은 보는 이의 감정에 여백을 남겼다.

론뮤익_Woman With Shopping.jpg 론뮤익의 'Woman With Shopping' 고단한 삶의 무게를 아기와 엇갈린 시선과 쇼핑백으로 대변한다. 필자제공

전시만큼 기억에 남는 공간 두 곳은 지나치기 쉬운 곳으로, 섬세한 손길이 머물러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위상을 보여주었다. 로비 한 구석의 휴게공간과 전시장 내 이동공간이다.


계단실의 사선과 층계형 가벽이 공간의 배경이 되었다. 앞에 놓인 검은색 가죽과 날렵한 스틸의 소파는 무채색의 배경과 단단하게 어우러진다. 여기에 플로어 스탠드의 아늑한 빛이 스며들며 모던함에 온기를 더한다. 벽면의 분할과 가구의 질감, 빛과 색채가 완벽하게 어우러진다. 세련됨의 정수를 보여 준 소박한 공간은 바로 미술관의 품격이기도 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계단실 벽면모퉁이의 단정한 휴게공간 일부. 각 요소들이 공간의 조화로움을 완성시킨다. 필자제공

다음은 론뮤익 전시장 내의 좁은 이동공간이다. 올리브그린색, 검은색의 벽면과 바닥의 보라색의 만남은 깊고 단단했다. 스며 나오는 빛은 좁은 공간에 패턴을 주어 한층 풍부함을 더했다. 작품관람에 못지않은 수확이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론뮤익 전시장 이동공간. 색의 조화와 빛의 대비가 공간의 깊이를 만든다. 필자제공


에필로그

전시를 마치고 나와 광화문 월대의 복원된 해치 앞에 서니, 천 년 전의 시간을 되돌리는 도시의 움직임과 방금 전 미술관에서 마주한 론 뮤익의 정적이 겹쳐졌다.


론 뮤익의 조각들은 우리에게 '잠시 멈춰 서서 바라볼 것'을 권했다.

일상의 장면들을 기이한 확대와 정지, 가식적인 표정과 색을 걷어내면서

인간 본연의 연약함과 한계를 드러낸다.


고독과 생의 무게는

외침에서 어느새 고요한 침묵으로 변해

전시장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작품 속에서 문득 나의 조각들을 발견한다.

론 뮤익이 보여준 '만약에'라는 상상을 품어본다.

그런 낯선 상상이 일상에 새로운 숨을 불어넣는 활력이 된다.

작가가 던진 질문에 나만의 답을 채워 넣으며 미술관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