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을 느리게 하는 밤, 덕수궁의 서사

by 무드온라이프


예전부터 고궁의 모든 것이 좋았다. 한복의 소매선을 닮은 지붕의 곡선, 지붕 모서리에 걸려 있는 풍경, 묵직한 기와와 대조를 이루는 단청, 창문에 새겨진 정교한 문살 패턴, 발치에 놓인 듬직한 박석까지. 이 모든 것들은 분명 위엄이 있었으나 권위적이지 않게 다가왔다.


이제는 역사의 한 페이지가 되어 관람의 대상이 되었지만, 눈에 보이는 풍경뿐 아니라 그 안에서 일어났을 크고 작은 이야기들에도 마음이 머물렀다. 5월의 어느 토요일 저녁, 덕수궁 야경 관람을 위해 지하철역을 나서며 서둘러 발걸음을 재촉했다.


막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도심의 불빛과 함께 켜진 은은한 조명이 부드럽게 덕수궁을 감싸 안았다. 익숙한 풍경 위로 새로운 감정이 덧입혀지는 순간이었다. 봄비가 가늘게 내렸지만 바람은 선선했고 마음은 쾌청했다. 어둑한 지붕 아래 단청은 밤빛을 받아 낮보다 화려하게 피어올랐고, 곳곳의 불빛은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중화전은 끝이 살짝 들어 올려진 팔(八)자 모양의 팔작지붕을 얹고 있다. 팔작지붕은 가장 화려하고 복잡한 구조로, 왕이 머무는 정전이나 중심 건물에 쓰였다. 바닥에서 비추는 업라이트 조명은 시선을 지붕아래 끌어모아 공포와 단청을 한껏 수려하게 만들었다.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화합한다는 뜻의 '중화(中和)'를 이름으로 쓴 배경에서 외세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고종의 의지가 엿보였다. 그는 격변하는 시대의 황제이기에 궁궐의 붉은색보다 유난히 황금색을 창살이나 내부에도 많이 사용했다. 그가 지키고자 했던 것은 나라의 평안함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화재로 손실된 중화전을 단층으로 둘 수밖에 없었던 당시의 어려움이 느껴진다.

덕수궁_중화전_야경.jpg 중화전 뒤편에서 보는 풍경. 곡선을 그리며 들려진 지붕선 아래로 보이는 단청이 대비를 이룬다. 필자제공

잠시 내린 보슬비로 바닥의 박석이 군데군데 짙은 색을 내고 있었다. 나무그림자가 내려앉은 중화전을 돌아 뒤로오면, 중화전과 함께 도심빌딩의 불빛이 한눈에 들어온다. 시간과 공간을 함께 건너온 것 같았다.


지붕아래 이 장면이야말로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화이불치'를 완벽하게 이루는 것 같았다. 위로는 기와지붕, 아래로는 박석을 두고 중화전의 디테일이 살아났다. 목재와 다채로운 색채, 곡선 등을 잡아주는 것은 문창살 네 귀퉁이의 다소 투박한 장석이었다.


공포와 단청, 문살의 색과 패턴을 한 번에 정리해 주는 듯한 붉은 기둥은 모서리에 놓인 세 개의 발과 두 개의 귀가 달린 거대한 솥, 정(鼎)의 배경이 되어 화면을 단단하게 만들었다.

덕수궁_야경_중화전_01.jpg 중화전의 화려한 단청 아래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검은 솥, 정(鼎). 왕권을 상징하는 이 무거운 철제 기물은 고궁의 중심을 단단히 잡아준다. 필자제공

덕수궁의 역사를 고스란히 지닌 채 중화전을 묵직하게 지키는 정(鼎)을 보며 한때는 향과 연기로 제 역할을 했을 장면이 떠올랐다. 채색된 목재건물과 대비되는 검고 묵직한 쇠 솥, 정(鼎)에서 대한제국을 지키려던 의지가 전해졌다. 고개를 들면 검은 바탕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중화전 현판의 위엄 또한 예사롭지 않다.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중화전에서 몇 걸음 옮기면 아담한 연못을 품고 있는 신고전주의 양식의 석조건물들을 만난다. 옛 궁궐 안에서 만나는 서양식 건물, 석조전과 미술관은 '기억'자로 배치되어 한눈에 들어왔다. 초여름 저녁 어둠은 빠르게 찾아와서 궁을 밝히는 조명들이 곳곳에서 환해지며, 낮에는 무심히 지나쳤던 풍경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왔다.


따뜻한 조명 아래서도 차갑게 보이는 석조전은 그 역사를 알고 나면 왠지 더 씁쓸해진다.

20세기 초, 열강들의 틈바구니에서 고종은 1910년 완공된 서양식 건물인 석조전에서 대한제국의 존재감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다. 건물에는 전기가 들어왔고 서양식 주거양식을 사용하며 외국 사신들과 외교를 펼치던 상징적인 장소였다.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대한제국의 황궁이었던 석조전은 그해 경술국치와 함께 주인 없는 집으로 남았다. 그 후 일본은 1937년 이곳을 개조하면서 미술관과 '이왕가박물관'으로 사용하면서 대한제국의 권위를 의도적으로 지워나갔다. 한 나라의 황궁이었던 장소를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공공의 장소로 격하시킨 치욕을 감당한 석조전의 아픔이 느껴졌다.

석조전_야경_01.jpg 하늘에 푸른빛이 남은 시간, 조명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하는 석조전의 기둥들은 제국의 자존심처럼 차갑고도 선명하게 서 있었다. 필자제공
석조전_야경_02.jpg 완연한 어둠 속에 도심의 불빛과 함께 있는 석조전은 오히려 따뜻하고 아늑하게 다가온다. 필자제공

석조전 내부에서 열리는 <밤의 석조전> 클래식 공연은 예약이 마감되어 들어가지 못했다. 하지만 열린 공간 너머로 들려오는 선율은 오히려 더 큰 여운이 되었다. 중앙의 삼각형 박공지붕과 좌우대칭의 단단한 모습과 2층까지 이어진 이오니아식 기둥들이 석조전의 전면을 당당하게 채우고 있었다.


석조전을 미술관으로 쓰다 공간이 부족해지자 1937년에 지금의 미술관을 곁에 세웠다. 석조전과 조화를 이루려 같은 화강암을 쓰고 고전적인 코린트식 기둥 양식을 빌려왔지만, 스케일은 더 작다. 장식을 걷어낸 단순하고 현대적인 모습이 오히려 석조전의 위상을 받쳐주는 듯하다.

국립현대미술관_덕수궁_야경.jpg 궁궐 안에서 만나는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는 독특한 야경. 필자제공

미술관 계단을 올라 만난 발코니는 인상적이었다. 도심의 풍경과 조명 비치는 나무가 겹쳐지니, 마치 개인의 공간에 초대받은 듯한 아늑함이 느껴졌다.

마침 야간관람이 있는 토요일이어서 오랜만에 여유로운 야간의 미술전시를 보았다.

국립현대미술관_덕수궁_발코니_야경.jpg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의 아늑한 발코니 공간. 나무가 있는 정원과 도심의 풍경이 겹쳐진다. 필자제공

7월 6일까지 이어지는 '초현실주의와 한국근대미술전'을 둘러보고 익숙하게 이야기해 온 서양미술과 달리, 정작 우리 근대미술과 작가들에 대해선 얼마나 낯설었는지 이번 전시를 통해 새삼 느끼며 마음의 빚을 남겼다.

국립현대미술관_덕수궁_전시.jpg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관에서 열린 '초현실주의와 한국근대미술' 입구벽면 필자제공

이제 발길을 한걸음 물러나 앉은 석어당으로 돌린다. 왕위 계승 서열 1위였던 월산대군이 동생 성종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풍류와 시문을 즐기며 살았던 곳이다. '석어당(昔御堂)'은 '옛날 임금이 머물렀던 집'이라는 뜻이다. 임진왜란 당시 피란에서 돌아온 선조가 궁궐이 불타버린 궁궐 대신 이곳을 임시거처로 삼아 머물다 승하하셨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당시에는 '경운궁'이라 불렸던 지금의 덕수궁 안에서, 선조는 160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석어당에 머물며 국정을 돌보았다.


왕이 왕궁이 아닌 단출한 집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비극을 기억하고자 채색 없는 석어당은 석조전과 또 다른 서사를 품고 서 있었다. 석어당에서 새어 나오는 연한 불빛에서 전쟁의 고단함을 짊어진 왕의 무게가 느껴졌다.

석어당_야경_01.jpg 도심의 빌딩 숲을 배경으로 홀로 고결하게 서 있는 이층 목조 가옥. 색채를 버리고 더 깊은 향기를 머금고 있다. 필자제공

석어당 앞에 서면 바로 가까이 보이는 서울 중심의 건물들이 겹쳐진다. 이런 순간, 몇 백 년간 쌓인 수많은 이야기가 떠오르며 걸음을 느리게 만든다. 오길 참 잘했다는 마음이 드는 찰나다.


한옥은 바닥에 온돌이 있어 보통 단층으로 짓는다. 그래서 덕수궁의 유일한 2층 한옥인 석어당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2층에는 온돌대신 마루를 놓았으며 들창으로 공간의 변주를 주는 점은 한옥이 가진 뛰어난 매력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막혀있던 벽이 천정으로 들어 올려지며 풍경이 그대로 들어오는 순간, 갑갑했을 왕궁에 한 자락 바람이 들어가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안과 밖의 경계를 지우고 풍경을 담아내는 들창은 석어당의 나지막한 고백이다.

창호지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은 종이질감을 통과하면서 더 따뜻해지는 듯하다. 채색 없는 건물과 들창의 조화는 담백함의 진수이자 숙연함마저 자아낸다.

석어당_정면.jpg 석어당 야경. 안과 밖의 경계가 사라진 자리, 들어 올려진 사이 밤공기가 스며든다. 필자제공

단정한 문살이 주는 품격이 있다. 비록 채색도 웅장함도 없는 왕의 임시 거처이지만 군더더기 없이 반복되는 격자무늬의 문살은 넘지 못할 권위를 보여주었다. 내부로 들어가면 창살은 좀 더 다양해진다. 담백한 창호지를 배경으로 한 창살의 패턴들은 담백한 석어당의 섬세함을 완성시킨다. 어릴 적 기억에 남아있는 창호지의 팽팽함이 떠올랐다.

석어당_들창_02.jpg 석어당 내부 전경. 들어 올려져 단단히 고정된 창과 마룻바닥, 수직면의 문이 단조로운 공간에 격을 표현한다. 필자제공

천정에서 직선으로 내려와 들어 올려진 문을 수평으로 단단히 잡아주는 쇠붙이, '대걸이'는 부드러운 목재 건물과 조화를 이루며 듬직해 보였다. 잘 건조된 마룻바닥에서는 지나온 시간과 오갔을 사람들의 온기가 느껴진다. 내부의 벽 역시 대부분 여닫을 수 있는 문으로 되어있어 언제든지 공간의 변화를 줄 수 있었을 것이다.


궁궐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지만 치러야 할 대소사가 있었을 것이고 그때마다 문을 열고 닫았을 장면을 상상해 본다. 잠시 선조가 머물렀던 인연으로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이 공간이야말로 덕수궁의 진정한 주인이 아닌가 싶다.


궁을 나서는 길, 제자리를 찾아 돌아왔으나 아직 담장을 두르지 못한 광명문이 굳게 닫혀 있다. 고종황제의 침전인 함녕전으로 들어가는 정문이었던 광명문은, 자신을 감싸줄 행각조차 복원되지 못한 채 덩그러니 홀로 서서 밤을 지킨다.

덕수궁_광명문_야경.jpg 돌아 나오는 길, 덕수궁 내 광명문 측면, 행각을 두르지 못한 채 홀로 서 있다. 필자제공

팔작지붕 아래 화이불치의 화려함을 뽐냈던 중화전, 은은한 조명이 반겨주던 석조전과 미술관, 활짝 열려 바람을 맞이하던 석어당의 들창, 그리고 묵묵히 닫힌 광명문 사이. 그 짧은 길 위에 덕수궁의 밤이 깊어간다. 도심의 빌딩 숲과 나란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 오래된 궁궐 덕분에, 나의 서사도 조금 더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