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벽돌의 위로,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벽을 넘어 울타리로, 어둠을 뚫고 하늘로

by 무드온라이프


조선시대 어느 이른 아침, 시장터 장면을 떠올린다. 서해에서 갓 잡은 싱싱한 생선과 소금이 마포나루를 통해 이곳 칠패시장으로 들어와 활기가 넘친다. 전국에서 몰려온 상인들은 목소리 높여 흥정하고 출출해진 허기를 따뜻한 국밥으로 달랜다. 한쪽에서는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칠패시장은 삼남 지방과 강화도에서 올라온 물류가 집결해 도성으로 들어가는 길목답게 신명 나는 고함소리와 북적임이 가득했다.


1904년, 호주의 사진가 조지 로즈 George Rose는 서소문 밖 칠패시장 풍경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진 속에는 지게 가득 짐을 실은 사내들과 흰 옷을 입은 장꾼들이 뒤섞여 삶의 활기를 뿜어낸다. 그들 뒤로 한양도성의 서쪽 문, 지금은 사라진 소의문이 단단하게 버티고 서 있다.

1904년 서소문 밖 풍경. 한양 최대의 상권이었던 칠패 시장의 활기 뒤로 지금은 사라진 서소문(소의문)의 생생한 모습이 보인다. 출처: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홈페이지

그러나 뜨거운 삶의 현장이 한편으로는 다르게 이용되었다.

사직단 서쪽에 처형장을 두어야 한다는 [예기]의 가르침을 따라 칠패시장과 인접한 서소문 네거리는 죄인들을 공개처형하는 비극적인 장소였다. 죄를 경계하기 위해 '죄를 지으면 많은 사람 앞에서 망신을 당하고 처벌받는다'는 일벌백계(一罰百戒)의 효과 때문이었다.


1908년 서대문 형무소가 들어서면서 전 근대적인 공개처형은 역사에서 물러나고, 동시에 그것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불안감과 두려움도 사라졌다. 그 이후, 한동안 시장의 기능을 이어가다 현대에 이르러 쓰레기 처리장과 지하 주차장으로 '망각의 세월'을 보내던 곳에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이 들어선 것은 의미가 깊다.

당시 서소문 밖 네거리 지도 출처: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홈페이지

20세기 초, 유교사상과 신분의 차이가 뚜렷했던 전통 사회에서 천주교는 외국에서 들어온 낯선 종교였다. 평등을 주장하는 천주교는 제사를 거부하고 서양세력에 대한 공포마저 일으키는 존재였다. 단순히 종교적인 갈등을 넘어, 새로운 사상과 기존 질서가 정면으로 충돌하며 빚어진 비극적인 과정이었다.


1784년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이후 일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이곳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는 1801년 신유박해, 1839년 기해박해, 그리고 1866년부터 1873년까지의 병인박해기를 거치며 수많은 천주교인이 처형을 당했다.


2018년 9월,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를 포함한 서울 속 천주교 순례길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박해와 순교, 자발적 신앙 수용의 특별한 역사성을 바탕으로 아시아 최초의 교황청 승인 국제 순례지로 거듭나게 되었다.


칠패시장의 소란함과 순교자들의 희생이 머물던 자리에 붉은 벽돌의 박물관이 들어섰다. 사라진 서소문의 기억을 기록하듯, 건물은 땅 아래로 낮게 몸을 낮췄다.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공간이 만나는 지점이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으로 들어가는 완만한 경사로에서 시장의 활기와 형장의 서늘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종교와 관계없이 엄숙함을 자아내는 진입로는 앞으로 펼쳐질 공간의 숭고함을 미리 말해주는 듯했다.

약 100만 장의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세명의 건축가의 공동설계로 이루어졌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은 윤승현(인터커드), 이규상(보이드아키텍트), 우준승(리움건축) 세 사람의 공동 작업으로 이루어졌다. 100만 장에 달하는 붉은 벽돌의 적층은 그 자체로 거대한 서사를 이룬다. 2019년 서울시 건축상 대상과 한국건축문화대상 본상을 받은 이력은 이 건물이 지닌 미학적 성취를 뒷받침한다.


"이곳은 죽음의 장소이자 삶의 장소입니다. 우리는 땅이 기억하는 슬픔을 억지로 지우기보다, 그 깊이만큼 아래로 내려가 평화를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 건축가 윤승현

출처: 헤럴드경제, 2021년 12월 30일 자 인터뷰 및 2019년 서울시 건축상 대상 수상 당시 설계 소회 종합.


완만한 경사의 진입로를 걸어내려가면 하늘에서 쏟아지는 햇살아래 '빛의 광장'이 기다리고 있다. 조형물 '순교자의 칼'은 과거 죄인들의 목에 씌웠던 칼을 형상화했다. 그 고통을 견디 듯, 하늘로 치솟는 형태로 서있고 바닥에 놓인 굵은 밧줄이 당시의 억압과 고통을 상징하고 있었다.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_진입로.jpg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지하 1층 진입로를 따라가면 경사로 끝에 빛의 광장과 조형물 '순교자의 칼'이 맞이한다. 필자제공

천정 없는 빛의 광장에서 둘러싼 벽면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직각의 단단함에 사선과 곡면의 유연함이 얹혀 조화를 이룬다. 한 장 한 장 쌓아 올린 벽은 투박하지만 벽돌들이 만나는 미세한 선들의 정교한 흐름을 보여준다. 수직선의 경계는 일찍이 없애버렸다. 시선과 발걸음은 자연히 다음 공간으로 이어진다.


각도에 따라 드리워지는 빛과 그림자의 경계는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드러낸다.

날카롭게 꺾인 사선은 지하의 폐쇄감을 걷어내고 관람객의 시선을 하늘로 이끈다. 형태의 변주를 통해 과거의 어두운 기억을 현재의 빛으로 바꾸어놓으려는 건축적 의도가 읽힌다.


건축가들이 공간을 얼마나 치밀하게 계획했는지 알 수 있었다. 다른 요소들을 걷어내고 붉은 벽돌의 형태와 방향만으로 공간의 서사를 만들어 내는 일종의 끈기와 의지가 엿보였다.

덕분에 역사성을 담고 있으면서 슬픔에만 침잠하지 않는다. 오히려 과거와 현대를 잇는 진취성과 비전을 제시해서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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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광장전경. 하늘을 향해 치솟 듯이 서있는 조형물'순교자의 칼'이 지나온 시간의 밀도를 높여주었다. 필자제공'
KakaoTalk_20260223_134950719_28.jpg 한때는 가두기 위한 높은 벽이 이젠 울타리가 되어 햇살과 함께 부드럽게 감싸주고 있다. 푸른 하늘에 현대식 아파트가 대비되는 풍경 필자제공

입구를 따라 들어가면 직선을 모티프로 한 군더더기 없는 정갈한 로비에는 안내데스크와 뮤지엄샵, 도서관과 소전시실이 위치하고 있다.

로비.jpg 1층 로비. 군더더기 없는 수직과 수평선들의 공간 필자제공

지하 2층으로 이어지는 완만한 경사로는 빛과 어둠을 극대화한다. 바닥 가까이에 설치된 조명은 발밑을 비추며 깊은 사유의 길로 인도한다. 그 길 끝에 아담한 성 경하당이 있다. 실제로 예배가 드려지는 이곳은 외벽의 붉은 벽돌이 내부까지 이어진다.

천장과 기둥의 흰색 마감은 부드러운 빛을 머금고, 짙은 나무색 장의자는 소박한 공간의 무게를 단단히 잡아준다. 화려한 장식을 걷어낸 자리에 종교와 상관없는 경건함이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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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공간은 최대한 조도를 낮추고 바닥으로 시선을 모은다. 고요한 침묵의 공간으로 이끄는 장치이다. 필자제공
성_경하당_전경.jpg 성 정하당 기념 경당. 붉은 벽돌이 내부로 이어져 흰색의 벽과 나무로 된 묵직한 장의자가 놓여있다. 필자제공

한층 더 아래로 내려가면 박물관의 하이라이트인 콘솔레이션 홀과 하늘광장이 나란히 펼쳐진다.

‘위안’을 뜻하는 콘솔레이션 홀은 낮은 조도 속에서 깊은 침묵을 권한다. 이 땅에서 목숨을 다한 과거의 모든 이를 위로하고, 바쁜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 평화로움을 주는 공간이다.

박해 시기에 순교한 성인 다섯 분의 유해 위로 자연광이 떨어지는 장면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서사가 된다.


천장의 '빛의 우물'에서 쏟아져 내린 한 줄기 빛은 바닥에 닿아 푸른 선으로 길게 흐른다. 이 빛의 선은 어둠에 잠긴 콘솔레이션 홀을 가로질러 야외의 하늘광장으로 우리를 이끈다. 어둠과 밝음, 죽음과 생명은 단절되지 않고 이 푸른 선을 통해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된다.

콘솔레이션_홀_내부01.jpg 천장에서 쏟아지는 자연광이 순교자의 넋을 기리듯 내려온 빛의 줄기는 바닥을 타고 흐르며, 위로의 길로 안내한다. 필자제공
빛_연결_바닥.jpg 홀에서 시작된 푸른빛의 선이 어둠을 가로질러 하늘광장으로 향한다. 죽음과 삶, 지상과 지하를 하나로 묶는 이 길은 단절되지 않은 기억을 상징한다. 필자제공
콘솔레이션_홀-02.jpg 천장에서 내려온 빛이 바닥을 타고 흐르는 모습은, 초월적인 존재나 순교자들의 정신이 오늘날 우리의 발밑(현실)까지 닿아 있음을 구현하였다. 필자제공

발아래 흐르는 푸른빛의 안내를 따라 밖으로 나서면 정사각의 탁트인 하늘광장이 펼쳐진다.

하늘광장은 지하 3층에서 지상의 공원을 넘어 하늘까지 열려 있어, 땅과 하늘이 소통하는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성지의 공간 개념을 가장 잘 드러내는 장소이다.

야외전시는 물론 무용, 공연 등 다양한 퍼포먼스를 낮에는 밝은 햇살 아래에서, 밤에는 쏟아지는 달빛 아래에서 즐길 수 있는 문화 공간이다. 과거 공개 처형장소로, 순교성지로, 서대문 형무소에 이르기까지 사형이 집행되던 이 땅이, 이제는 열린 하늘 아래 공연을 담아내는 문화의 장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오전의 까슬한 햇살은 조형물을 지나 광장 깊숙하게 들어와 벽과 바닥에 무늬를 새긴다. 비록 아픈 역사를 품은 곳이지만 사면과 바닥까지 붉은 벽돌로 둘러싸인 공간이 오히려 아늑하게 느껴지는 아이러니함이 있었다. 거칠고 투박한 침목으로 형상화된 ‘서 있는 사람들’ 사이를 천천히 걸어본다. 뾰족한 머리와 각진 어깨, 꼿꼿한 자세로 군상을 이루는 모습은 강렬한 울림을 준다.

KakaoTalk_20260223_134600416_05.jpg 낮게 내려앉은 어둠의 경계 너머로 빛의 광장이 펼쳐진다. 수평으로 길게 뻗은 시선 끝에 늘어선 군상들. 붉은 벽돌의 온기와 햇살이 교차하는 지점. 필자제공
20.jpg 하늘광장의 그늘 속에 역광을 받은 '서 있는 사람들' 사이에 들어가 걸으면 멈춰 선 시간의 밀도가 느껴진다. 필자제공

날카롭게 들어오는 빛이 면을 나누면, 역광으로 서늘해진 뒷모습과 감싼 벽돌의 온기가 묘한 대비를 이룬다. 파이고 깎인 거친 침목의 질감은 순교자들이 견뎌온 시간의 밀도를 더하고, 묵직하게 채도를 낮춘 침목의 색이 서늘한 슬픔을 자아낸다.

그늘진 곳에 선 군상들은 마치 감옥의 좁은 틈새로 바깥세상을 갈구하던 이들의 시선을 닮아 있다. 붉은 벽돌의 숲을 지나 다시 마주한 지상의 햇살은 그래서 더욱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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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광장의 '서 있는 사람들' 패이고 깎인 침목의 질감과 사선으로 떨어지는 그림자 필자제공

하늘광장의 한쪽에는 벽돌로 된 커다란 가벽이 서 있고 그 뒤로는 한 사람이 겨우 들어갈 수 있는 좁은 틈을 내 주었다. 어둡고 좁은 틈 사이로 비집고 들어가 본다. 그곳에서 마주하는 풍경은 관람객을 당시의 현장으로 데려다 놓는다. 네모난 작은 구멍을 통해 보이는 찬란한 햇살과 사람들의 평화로운 모습은, 당시 이 땅에 갇혔던 이들이 그토록 바랐던 내일의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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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문 형무소에서 바라본 죄수들의 시선을 비유해 놓았다. 두터운 벽틈으로 세상을 보는 갇혔던 이들의 답답한 마음을 대변한다. 필자제공

하늘광장의 강렬한 햇살을 뒤로하고 다시 안으로 걸음을 돌리면, 지상의 소란함이 완전히 차단된 전시 공간이 펼쳐진다. 상설전시실 제2전시실에는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서적, 서한 등 소중한 역사적 사료들이 전시되어 있다. 내부는 곡선의 미학이 돋보인다. 겹겹이 이어지는 아치 형태의 구조물은 공간에 깊이감을 더하고, 그 사이로 스며 나오는 간접 조명은 유물들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KakaoTalk_20260223_134950719_11.jpg 상설전시장 제2전시장 내부. 무채색의 천정과 벽으로 이어지는 아취형태가 외부 벽돌과 대비된다. 필자제공

‘서소문 밖 네거리’가 관통해 온 시간이 지도로 펼쳐진다. 이곳은 숭례문과 돈의문 사이, 성저십리의 번화함이 응축된 상업의 중심지였다. 옛 지도는 삶의 터전이었던 마을 이름들 사이로 처형장의 흔적을 증언한다.

도성도.png 도성도. 동국여도(東國輿圖) 중 하나로 한성부의 관할인 도성과 성저십리를 그린 지도. 출처: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홈페이지

이 좁은 땅 위로 ‘최초’라는 기록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한국 최초의 서양식 성당인 약현성당이 인근에 들어섰고, 최초의 철도인 경인선과 경의선이 이곳을 지났다. 근대의 관문이자 외교의 통로였던 길목은 이제 아시아 최초의 국제 순례지라는 이름을 얻었다.


전시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운 순교자들의 얼굴과 그 앞에 놓인 수많은 백자 사발들이 발길을 잡는다. 제기를 상징하는 사발들은 이름 없이 스러져간 이들을 향한 영원한 제사가 되어 공간을 채우고 있다.

지석(誌石)은 본래 죽은 이의 인적 사항이나 무덤의 위치를 기록하여 묻는 판석을 말한다. 하지만 당시 가난하고 박해받던 천주교인들은 번듯한 돌비석을 세울 형편이 되지 못했다. 그래서 일상의 집기였던 백자 사발 안쪽에 이름, 순교일, 세례명 등을 적어 무덤에 함께 묻어 훗날을 기약했다.

25.jpg 최지만, '순교자의 무덤' 이름 없는 순교자들의 넋을 기린 설치 미술 필자제공

무엇보다 강렬한 것은 벽면에 흐르는 그림자 영상이다. 망나니의 서슬 퍼런 칼날이 허공을 가르고, 이내 고개가 떨궈지는 비극의 순간이 소리 없는 그림자로 반복된다. 붉은 벽돌의 요새 안에서 마주하는 이 무거운 기록들은,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가 얼마나 많은 희생 위에 세워진 것인지 말해준다.

상설전시관 벽면의 영상. 망나니의 몸짓 그림자가 걸음을 멈춘다. 필자제공

벽을 향해 서있는 군상들은 모두 고개를 바닥으로 떨어트리고 있다. 빛의 조절로 실루엣을 강조하고 있는 작품, '하늘과 대지사이에 사람이 있다'는 배형경의 작품이다. 넓은 전시공간 안으로 걸어 들어갈 수 있게 열려있어 잠시 작품 가까이 다가가 본다. 나도 모르게 고개가 떨궈지기도 하고 반대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기도 한다.

KakaoTalk_20260223_134950719_15.jpg 배형경'하늘과 대지사이에 사람이 있다'. 고개를 바닥으로 떨군 채 서 있는 군상. 빛과 어두움의 대비가 돋보인다. 필자제공
박물관 MI
서소문의 자음인 ‘ㅅㅅㅁ’이 한줄기로 연결되어 있다. 첫 번째 ‘ㅅ’은 공원을 산책하는 사람들을, 두 번째 ‘ㅅ’은 대지의 길을 걷는 순례자를 상징하며 마지막의 ‘ㅁ’은 순교의 정신을 간직한 성지를 상징한다. 한글을 모티브로 하여 하늘과 사람, 그리고 땅의 조화를 나타낸 디자인이다. 이 모든 요소는 서소문이 가지는 순교의 역사와 공원에서의 ‘쉼’, 생명의 보금자리인 ‘숲’, 그리고 미래로 이어질 문화적 가치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홈페이지 참고 -
27.jpg 콘크리트 배경 지상벽면의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사인 필자제공,

벽을 넘어 울타리로, 어둠을 뚫고 하늘로


지상으로 올라온다. 수많은 이야기를 품은 공간을 경험해 왔지만, 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만큼 밀도 높은 곳은 드물다. 한 시대의 어두운 장면, 특히 강압적으로 생명을 다루었던 비극의 현장을 통과하는 일은 결코 가볍지 않았다.

처음 발을 들였을 때는 그늘지고 습한 기분이 마음을 짓눌렀다. 그러나 처형지였던 서소문 밖 네거리의 역사를 건축적 흐름으로 전환하는 과정은 모든 것에 반전을 일으켰다.

300미터의 진입로가 만드는 공간의 깊이감, '하늘광장'과 '콘솔레이션 홀'이 보여주는 빛과 어둠의 대비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극적으로 드러낸다.

여기서 우리는 과거와 현재가 다시 이어지고 있음을 목격한다.

한때 생명과 맞바꾸었던 저항의 벽이 화해와 수용의 울타리가 되고, 무거운 천장이 걷히고 하늘이 쏟아져 들어오는 순간, 어둡던 지하 공간은 생명력 있는 빛으로 가득 찬다. 차가웠던 벽돌의 질감은 빛을 머금으며 비로소 따뜻한 온기를 내뿜는다.


단순히 밖을 내다보는 것이 아니라, 땅 밑에 가라앉아 있던 슬픈 기억들이 비로소 자유롭게 숨을 쉬며 세상의 서사와 연결되기 시작했다는 반가운 신호다.

진열장 속 나란히 놓인 두 개의 백자 사발은 기해박해 때 순교한 어느 모녀의 지석이다. 번듯한 비석을 세울 수 없던 가난한 신자들이 사발 안쪽에 이름과 세례명을 정성껏 적어 무덤에 묻었던 것이다. 땅속에 가라앉아 있던 이 간절함은 이제 세상 밖으로 나와 우리에게 침묵의 위로를 건넨다.

모녀의_지석.jpg 순교자 모녀의 지석(誌石) 비석 대신 사발 안쪽에 이름과 순교일을 적어 묻었던 가난한 이들의 기록. 필자제공

공간이 실체를 드러내기까지 다양한 의견들의 갈등과 고비도 있었을 것이다. 그 과정을 되짚어보면, 과거의 슬픔과 역경을 딛고 일어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가슴뭉클한 성장스토리처럼 다가왔다.

장소의 서사가 건축적 장치로 이어져 거대한 예술작품으로 완성되는 이곳, 서소문성지 역사발물관은 누구나 와서 위로를 얻고 가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