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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기니 Aug 26. 2020

긴 머리 휘날리며




무대 위에서 매번 긴 머리가 주는 약간의 존재감을 뽐내다 보면, 괜한 자신감이 생겨난다. 이제는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이 예술가를 포기하는 일처럼 느껴진달까. 말도 안 되는 억지지만 나는 역시, 긴 머리가 좋다. 누가 뭐래도 내가 가진 무기이자 자신감이라 도무지 헤어질 수가 없는 거다.






대학 이후, 기르기 시작한 머리카락을 아직도 유유히 휘날리며 유지 중이다. 주변에서는 머리 좀 잘라라. 나이 먹고 머리 너무 길면 치렁치렁 보기 안 좋다. 귀신같다. 길다 보니 많이 빠지는 머리카락 덕에 365일 털갈이 중이냐는 이야기도 듣지만, 그런 말들을 여전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낸다.



그러면서도 속으론 사실 많이 불편하다. 가끔 머리카락이 어딘가에 걸리거나, 숱이 많아 잘 마르지 않는 머리카락과의 사투를 벌일 때면, 싹둑 자르고 싶은 충동에 자주 휩싸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머리를 선호하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적으로 긴 머리에 남자들이 종종 갖고 있다는 환상을 내가 가지고 있다. 그 환상이 시작된 건 홍콩 영화 무협 판타지의 끝판왕 '동방불패'를 처음 보고 완벽한 설렘에 빠져들었을 때다. 나는 왜인지 '이연걸'보다 '임청하'에 더 마음을 빼앗겼다. 동방불패에 임청하가 있다면 '천녀유혼'에는 '왕조현'이 있었다.





임청하와 왕조현, 어릴 적 그녀들의 연기와 판타지에 빠져 긴 머리와 긴 옷자락을 펄럭이며 하늘을 나는 상상을 정말 많이 했다. 하여간 왜 예쁘기까지 해 가지고. 나는 그녀들을 보며 내가 주인공이길 바라보기도 하고, 현실에서 공중에 뜨고 날아다닐 수 있길 기도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현실은 나의 그런 판타지를 들어줄 수 없다. 그때는 판타지 주인공이 되면 못 하는 게 없을 것 같은, 다른 사람들보다 하나 더 특별한 마법을 부릴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건 없고, 그 특별함을 갖기에 턱없이 부족한 나는 인간이다. 그러니 아쉬운 대로 머리카락만이라도 기르는 거다.



그후로도 나는 판타지 위로 점점 머리를 길러야만 하는 이유들을 찾아, 하나 둘 차곡히쌓아갔다.



어떤 일의 결과가 아쉬움이라는 감정을 반복해서 가져다주면, 나는 또다시 생길지도 모를 아쉬움에 무던히 대비하게 된다. 혹시 모르니까라는 이유로.



20대 중반, 머리카락을 소품으로 사용하고, 움직임 요소로 출연했던 작품이 있었다. 두 작품 모두 긴 머리카락을 원했다. 그러나 그 당시 나는 단발인 상태였고, 이제 막 어깨를 지나 자라다 만 매우 어중간한 상태에 있었다. 굳이 머리카락을 붙이지는 않았지만, 내 머리카락이 짧은 것에 얼마나 마음을 두었는지 모르겠다. 매일 야한 생각을 해야 한다며, 머리카락이 공연 전까지 빨리 자라주길 바라고 또 바랐다.



알다시피 빌고 빌어 한 달 길러봤자 1.2센티에서 1.5센티가 고작이다. 필요할 때 느린 머리카락이 얼마나 서운하고 애가 타던지. 눈으로 보이는 변화도 없고, 인력으로 되지 않는 일에 엄청난 아쉬움을 묻혀놨다. 그래서 나는 그 뒤로도 긴 머리를 유지해야 하는 이유에 좀 더 무게를 싣기로 했다.



하나 둘 모아가는 이유들 중에는 춤추는 순간도 역시 포함되었다. 긴 머리카락을 휙휙 날리며 춤을 추기 시작했을 때, 이 중독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거라고 직감했다. 물론 짧은 헤어스타일도 모두 매력적이지만 역시, 춤 빨은 머리카락이 한몫한다.


턴을 돌거나 숙였다 일어나는 동작들 또는 시선을 탁탁 꽂아주는 동작들에 머리카락을 착착 쳐올리면, 그게 그렇묘한 중독성을 가져다준다. 이미 그 맛을 알아버려 중독이 진하게 된 나는, 짧아지는 머리카락 속에 춤 빨도 연해질까 전전긍긍이 되었다.  맛에 춤추지. 이제는 없으면 허전할 내 머리카락이 가끔은 무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무대 위에서 매번 긴 머리가 주는 약간의 존재감을 뽐내다 보면, 괜한 자신감이 생겨난다. 이제는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이 예술가를 포기하는 일처럼 느껴진달까. 말도 안 되는 억지지만 나는 역시, 긴 머리가 좋다. 누가 뭐래도 내가 가진 '무기'이자 '자신감'이라 도무지 헤어질 수가 없는 거다.



언젠가 머리카락이 도구로써의 역할로 다시 작품에 쓰인다면, 필요할 때 쓰였다는 최고의 만족감을 나에게 선사해 줄 것 같다. 그 성취감은 아마 나와 머리카락만 아는 것이 될 거고.



이제는 짧은 머리로 무대에서 춤을 추는 나를 상상하기 어렵다. 아마 의상을 입지 않고 벌거숭이가 되어 춤을 추는 기분이 될 것만 같다. 그래서 아직은 나에게 긴 머리를 포기하게 하고 싶지 않다. 긴 머리가 주는 특별한 개성을 바라지는 않는다. 다만, 춤을 출 때만큼은 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판타지 속 상상도 함께  채워가기를.



높은 곳에서 바람과 함께 펄럭, 힘차게 소리를 내며 존재감을 드러내는 태극기처럼, 무대 위 나의 머리카락도 과 함께  펄럭이는 존재감을 음껏 드러내기를 꿈꿔본다. 부디 오래오래 이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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