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4 두장짜리 납량소설 2탄입니다.
자식이 병을 얻어 부모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게 되면
천하의 불효자식이라 집안에서 장례를 치러주지 않는다고 했다.
교문 기둥에 'ㅇㅇ국민학교 분교'라고 되어있는 폐교 창고에서 운동회 때 쓰던 천막을 가져와
외갓집옆 공터에 빈소를 만들었다.
외삼촌의 장례기간 사흘동안 비가 내렸다.
장마라고는 했지만 사흘동안 정말 쉼 없이 내렸다.
몇 년 전 딸(내겐 엄마)도 병으로 먼저 보내버려 자식 둘이 모두 불효자가 된 외할머니는
굵은 빗줄기만 보이는 하늘이 외삼촌으로 보이는 듯 하늘을 향해 계속 꾸지람을 하셨다.
빗줄기가 굵어지면 말대꾸한다고 언성을 높였고
빗소리가 줄어들면 그까짓 걸로 사내놈이 못나게 우느냐고 나무랐다.
치매로 인해 생기는 현실과 환상, 삶과 죽음의 모호한 경계가 외할머니의 슬픔을 무디게 하는 것 같았다.
그나마 외할머니 감정선상에 좋은 기억만 남아있는 내가 외할머니 밥상을 맡았다.
밥, 국, 김치, 그리고 썰어놓은 양이 반통은 되어 보이는 수박.
상중에도 시어머니 밥상을 직접 준비하는 외숙모에게 수박이 너무 많은 거 아니냐고 하니
수박만 다 드신다고 했다.
빗줄기가 줄어든 틈을 타서 부엌에서 들고 나온 점심상을 외할머니 앞에 놓았을 때 TV에선
'전원일기'김회장 가족들이 저녁을 먹고 있었다.
외할머니는 상위에 있던 밥과 국을 방바닥에 거칠게 내려놓았다.
이 여름에 며칠째 상한 걸 계속 데워서 준다며 먹을 건 수박뿐이라고 했다.
빈 참치캔에 넣어 보관하는 틀니는 깜빡하셨는지 바로 수박 하나를 집어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그 모습을 똑바로 보고 있기가 어렵게 수박을 드시기 시작했다.
몇 조각 드시고 나니 외할머니 주변은 수박 주스로 흥건해졌다.
그때 다시 빗줄기가 거세졌다.
"이노무 자식이 에미 밥 먹고 있는데.."
외할머니는 고함을 지르고는 아직 빨간 부분이 많이 남아있는 수박 조각을 밖을 향해 던지며 일어섰다.
그러다 수박물에 바닥 장판이 밀릴 정도로 미끄러져 툇마루로 나가는 문지방위로 넘어졌다.
뭔가 딱 하는 소리가 크게 났고 툇마루 한쪽 끝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외사촌 형들이 뛰어왔다.
그동안 내 시선은 밀려서 드러난 장판밑을 향했다.
곰팡이 얼룩 가득 처바르고 숨어있다가 들켜버린 수십 장의 만 원짜리들을 눈대중으로 대충 세고 있었다.
다들 이유 있는 고함소리가 오가는데 장맛비 쏟아붓는 소리가 더 커서 뭔 말인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