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격리 때 썼던 연극 대본입니다.
등장인물 : 1. 엄마 2. 남편 ( 목소리만 ) 3. 딸 4. 사위
5. 엄마 첫사랑 소년 6. 뉴스 앵커
바니 걸스의 노래 '낭랑 18세' 흐르며 조명 밝아지면 무대 가운데 엄마가 뭔가( 소품 없이 마임으로 )를
정성껏 꿰매고 있다.
허름한 옷차림에 새마을운동 모자 거꾸로 쓴 소년 등장, 노래에 맞춰 엄마 주위를 돌며 춤춘다.
엄마도 노래 흥얼거리며 즐겁다.
갑자기 주전자 던지는 소리. 노래 끊기고 소년은 어쩌지도 못하고 한쪽 뒤로 가서 서있다.
술 취한 남편 목소리.
남편 : 이년아! 술 없다 카는데 뭐하노?
엄마 : ( 일어나서 정면을 향해 양손을 보이며 ) 경이 아부지! 이거 몇개 안 남았심더.
이거 마저 다 해서 갖다주고 돈 받아가 당신 좋아하는 삶은 고기 사와가 . .
( 뺨 맞고 쓰러진다.) 아악!
남편 : 야 이년아! 내가 지금 고기가 넘어가겠나?
내가 날린 돈이 얼만데 니는 겨우 바느질이나 하고 있나?
고기는 니나 마이 사 쳐무라 이년아! 에이 퉤!
소년 : ( 조용해지자 주위를 확인하고 쓰러진 엄마에게 다가와 앉으며 ) 분아.. 괜찮나?
( 도어록 누르는 소리. 소년 놀라서 달아난다. 그새 엄마는 얌전하게 코를 골고 있다. 딸 부부 등장.)
딸 : ( 짜증 ) 아~ 진짜! 엄마! 집에 있으면서 왜 전화를 안 받노?
핸드폰 잃어버린 거 미안하면 집전화라도 잘 받던가!
엄마 : ( 천천히 일어난다. 어느새 할머니다.) 이래야 딸내미 얼굴도 한번 더 보고 좋지.( 미소 )
딸 : 뭐?
사위 : 여보. 그만해. 무사하시면 됐지 뭐. 어머님! 괜찮으시죠?
엄마 : 그래. 피곤해가 잠들었뿟는갑다.
딸 : 이 할머니 참 속 편해요. 밖에는 난리구만.
요즘은 교회 안 나가재? 정신도 없으면서 쓸데없이 돌아다니지 말고 꼭 나가고 싶으면
마스크 쓰고 앞에 학교나 몇 바퀴 돌고 온나. 알았재?
이쁜 딸내미 얼굴 보여줬으니까 간다.
엄마 : 경아! 이거 갖고 가라. 니 줄라꼬 사놨다.
( 마임으로 옆에 있던 뭔가를 준다.)
딸 : 또 뭔데? ( 받아서 풀어보다가 냄새에 경악.) 으악! ( 바닥에 던져버린다.)
사위 : ( 주워서 보고는 ) 어머님.. 이거.. 상했는데요.
엄마 : 뭐라꼬? 엊저녁에 샀는긴데 벌써?
딸 : (거의 울기 직전 ) 엄마~! 제발 쫌~! 왜 이라노? 나 이제 수육 쳐다보기도 싫다!
엄마 : ( 사위 들고 있던 수육 봉지 뺏으며 ) 김서방. 이리 도고. 내가 갖다버리께. 아이고.. 미안하대이.
( 딸은 말없이 나간다. 문 쾅 닫히는 소리.)
사위 : 아..그 사람 참.. 신경 쓰시지 마세요. 가다가 커피 한잔 사주면 풀어져요.
어머님. 그거 아깝다고 드시면 안돼요. 꼭 버리세요. 그럼 저희 가보겠습니다.
( 사위 나가면 소년 다시 등장.)
소년 : 분아. 그거 줘봐라. ( 엄마에게서 받아서 수육 한조각 꺼내 먹는다.)
에이~ 아직 괜찮네. 맛만 좋구마는..
엄마 : ( 표정 밝아지며 ) 맞재? 괜찮재?
소년 : 그래. 니도 하나 묵어봐라. ( 수육 한조각 집어서 엄마 입에 넣어준다.)
엄마 : ( 맛있게 씹으며 ) 우와! 진짜 구시하다.
( 잠시 소년을 쳐다보다가 ) 니가 주니까.. 고기가 더 맛있는갑다.
( 분위기 어색.)
소년 : ( 괜히 엄마의 입가를 자기 손으로 닦아주며 ) 뭐 묵을때 제발 좀 입가에 묻히지 마라.
꼭꼭 씹어래이. 마이 묵고 퍼뜩 커야 오빠야한테 시집오지.
엄마 : ( 부끄러워하며 ) 야! ( 소년을 밀쳐낸다. 엉덩방아 찧은 소년도 자기 말이 부끄러운지 )
소년 : 오빠야 간대이! 잘 자래이~!
( 소년 사라지면 엄마는 그쪽을 한참 바라보다가 천천히 수육 봉지를 정성스럽게 묶어서
품 안에 안는다. 그사이 한쪽에 뉴스 앵커 등장.)
앵커 : 네. 안타까운 소식입니다.
기하급수적으로 확진자를 발생시킨 대구 사방천지교회의 18번 환자가 행방불명 사흘 만에
숨진 채로 발견됐습니다. 핸드폰도 없고 교회 신도들 중에도 18번 환자의 거주지를 아는 사람이
없어 조사에 난항을 겪던 중 환자의 사위가 발견하고 경찰에 신고를 했으며 신원이 확인됐습니다.
발견 당시 환자옆에는 부패한 수육이 있었다고 하고요.
최초 발견자인 사위 김 모 씨와 환자의 딸 박 모 씨 그리고 손녀 모두 현재 격리 중이라고 합니다.
( 앵커 사라지면 엄마는 수육 봉지 조심스럽게 앞에다 내려놓고 두 손 모으고 정면 향해 기도한다.)
엄마 : 하느님요! 요새 무서븐 병이 막 돌아댕긴다 카대요.
제발.. 제발.. 우리 경이 식구들 좀 지키주이소.
그동안 제가 정신이 없어서 기도하는 거를 잊아뿌고 살았는데..
이 삶은 고기 잡숫고 제-발 우리 경이 식구들 꼭 지키주이소.
묵던거 드리가 참말로 죄송함미더. 우선 이거 드시고 내일 장에 가가 또 사드리께예.
( 힘겹게 앉아 큰절. 일어나지 못하고 그대로 천천히 엎드리게 된다.
무대 서서히 어두워진다. 암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