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베스 안의 맥베스

연기 어렵다.

by 무글이

연극배우로 살면서 피하고 싶은 역할(혹은 장면 연기)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학교 선생님

특히 수학 선생님 역할입니다.

영어나 일본어선생님은 달달 외워서 얼굴에 두꺼운 철판 깔고 할 수 있겠지만 수학선생님은 초등학교 저학년 수업도 불가능할 겁니다.

그런데 이번에 셰익스피어 비극 <맥베스>를 준비하면서 수학선생님 연기는 명함도 못 찍을 정도의 끔찍한

장면을 하게 되었습니다.

글로 남기기에도 손 떨리는 살인 장면입니다.

그것도 어린아이를 말이죠.


일인삼역 중에 하나가 자객인데 주요 인물의 아내와 어린 아들을 무참하게 죽이는 장면이 있습니다.

참 연극적인 게 극 중 부자지간이 실제로 부자지간입니다.

아역배우를 찾다가 후배의 아들을 쓰기로 한 거죠.

후배는 매일 자기 아들이 죽는 장면을 몇 번이나 봐야 하는 비극 속의 비극을 익히는 중입니다.

그래서 후반부에 가족들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뒤 토해내는 울분이 엄청 리얼합니다.

초등학교 3학년이지만 엄마, 아빠가 다 배우라서 그런지 확실히 유전자가 다르더라고요.

" 복돌이(가명) 대사 끝나면 바로 삼촌(정확한 표현은 큰아버지)이 대사 하면서 복돌이 목덜미를 잡고

옆구리와 팔 사이를 칼로 찌를 거야. 그리고 복돌이가 "어머니! 도망가세요!"라고 마지막 대사하면 칼을 빼서 복돌이 등을 내리치고 그다음에 복돌이는 앞으로 쓰러져 엎드려 있으면 돼."

이런 횡설수설 설명을 베테랑 배우처럼 알아듣고 뒤에서 내리치는 건 보이지도 않는데도 정확한 타이밍에

"으윽.." 하고 쓰러집니다.


연습 시작할 때와 마칠 때마다 프로 스포츠 선수들처럼 주먹 맞대는 인사도 하고 과자 상납도 하고 있지만

막상 문제는 칼자루를 쥔 제게 있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어린아이들이 희생당하는 것만 봐도 감독을 증오할 만큼 경악하는 제가

그 가해자(?) 역할을 맡다 보니 불안한 마음과 악역을 잘해보고자 하는 마음이 매일 충돌하는 거죠.

마치 왕이 될 거라는 예언을 들은 맥베스가 던컨왕을 죽일 결심을 할 때의 마음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복돌이가 극 중 엄마를 막아서며 제게 " 거짓말! 이 악당놈아!" 하며 노려볼 때는..

군대 가있는 큰 놈 어릴 때 모습도 생각나고 만감이 교차합니다.

그러다 보니 " 뭐라고? 이 반역자 xx가.." 하면서 다가갈 때는 제 손에 있는 것이 칼이 아니라

솜사탕이었으면.. 할 때도 있습니다.

사흘뒤 공연인데.. 연기란 게 참 어렵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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