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성탄절 새벽에..
아들내미가 대학 태권도과 시범단에 들어간 후부터 예상치 못했던 스케줄이 가끔 생깁니다.
그중 가장 부담스러운 것 중 하나가 해외로 시범행사 떠나는 팀원들을 배웅하는 건데요.
인천공항으로 가는 전세버스 출발시간에 맞추다 보니 배웅 시간이 거의 새벽 4시쯤입니다.
'우리는 하나다!' 뭐 이런 것도 좋지만 로드매니저 입장에서는 솔직히 부담스러운 시간대이지요.
이번 성탄 전야에도 다음날 새벽에 배웅 있다는 고객님(?)의 예약문자를 받았습니다.
세상은 내 뜻대로 되는 게 없다는 사실을 평소보다 4시간 일찍 알려준 핸드폰 알람을 입다물게 하고
20대 청년에게 억지로 아비 내복바지를 입게 한 다음 집을 나섰습니다.
큰길로 나와 마치 인류종말을 다룬 재난영화의 한 장면처럼 컴컴한 도로를 달리는데 저 앞에
야광조끼 차림으로 경광봉을 흔들고 있는 사람이 보이더군요.
그분 뒤로 점점 커지는 소음과 함께 주위 조명이 밝아지고 서행으로 지나면서 보니 도로정비
공사 중이었습니다.
포클레인과 덤프트럭 그리고 이름 모를 중장비들 사이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하얀 입김을
토해내며 작업 중이었습니다.
성탄절 새벽 3시 반에..
아들놈을 학교에 내려주고 차에서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리기가 좀 그래서 근처 심야 카페를 검색해
찾아갔습니다.
성탄절이라 그런지 젊은 커플들이 꽤 많더군요.
잠든 남친 사진 찍어서 키득거리며 문자 하는 테이블,
어깨동무와 포옹의 중간형태에서 노트북으로 영화 보는 테이블.
혈중알코올농도가 적잖게 느껴지는 커플 목도리 테이블 등에서 가급적 떨어져 앉아 눈치채지 못하게
힐끔힐끔 살펴보다 보니 조금 전에 봤던 작업 인부들이 떠오르더군요.
똑같은 시간대에 온도와 환경이 다른 곳에 있는 사람들.
그 온도는 겨울이라는 계절이 표시하는 눈금의 온도라기보다 삶의 온도라고 해야 할까요?
누군가는 한국의 미를 알린다는 자부심을 캐리어에 가득 담아 공항으로 향하고, 누군가는 성탄의 의미를
식어버린 아메리카노 잔속에서 찾으려 할 때 누군가는 얼어붙은 아스팔트를 깨고 땜질하고 있었지요.
저는 그 시간에 뭘 했냐고요?
인스타 친구들의 성탄절을 훔쳐보고 있었습니다.
'좋아요'나 댓글 없이..
'끝났습니다.'라는 아들놈의 문자를 받고 찻잔을 반납하며 카페를 나서는데 마이클 부블레의 Let it snow에 이어지는 노래가 제 발목을 붙잡았습니다.
중학생 때였나..
영국의 유명가수들이 모여 만든 노래.
아프리카의 고통받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만든 노래.
Do they know it's Christmas time이었습니다.
과연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성탄절은 어떤 날일까요?
혹은 어떤 날이어야 할까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도 코스는 똑같았으나 그 공사현장을 지날 때는 안전운전을 위해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