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람회'의 첫 경험
"결혼 박람회?" 그 단어를 들었을 때 처음 떠올린 것은 우습게도 1800년 대 파리에서 거행된 '만국 박람회'였다. 도대체 결혼 박람회에서는 뭘 하는 걸까? 고민도 잠시, 내가 뺀질나게 드나들던 산업, 취업, 중소기업 박람회 같은 것을 그제서야 떠올렸다. 어쩐지 '결혼'과는 매치가 되지 않았다. 어릴 때 문방구에서 오 백원 짜리 사탕을 사 먹고선 새 돈 천 원을 냈더니 낡아빠진 오백 원을 돌려받고 한참 생각한 적이 있다. 새 것이라고 해도 같은 가치를 지녔다고 봐야 하는 걸까? 이렇게 태생부터 경제 관념이 거의 무너져 있는 사람으로써 결혼도 결국 시장이자 산업이라는 연결고리를 맺는 데 오래 걸린 것이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내 상상에 의하면 결혼은 두 사람의 결합을 축하하는 신성한 의식이자, 돈으로 쉬이 계산을 하지 말아야 하는 인륜지대사에 속해 있었다. 그래서 기어코 생각한 것이 세계의 난다 긴다 하는 화가들의 그림을 모아 놓은 만국 박람회였다. 그러나 이러한 편견에서 해방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결혼 업체는 대부분 컨설팅 형식으로 결혼 박람회를 시행하고 있었다. 가격이 있고 오래 된 업체는 예약 후 1:1상담으로 진행하고, 인터넷으로 바이럴이 잘 된 가성비 웨딩 플래너 업체들은 매 주마다 많은 건씩 컨설팅을 진행했다.
참 신기했다. 내가 모르는 건 세상에 얼마나 많다는 것인가? 결혼 준비의 문을 두드릴 때마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풍경들이 벌컥벌컥 열렸다. 박람회의 인파를 보며 내 또래의 결혼 대기자들이 이렇게 많은 것도 놀라웠다. 요즘 대한민국에 결혼과 출산 문제는 심각하다고 하지 않았던가? 한편으로는 또 금방 이런 풍경이 사라질 것이 예상되기도 했다. 인구 수가 적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엘리베이터 각 모서리를 두 명씩 차지한 모습이 왠지 웃겼는데, 그건 약과였다. 회장에 들어선 순간 모든 테이블에 커플과 플래너 상담 구조로 앉아 시끌시끌 상담을 진행하고 있었다. 칸막이도 없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유추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커플의 형태도, 각자의 사정도 모두 제각각이었다. 자리에 앉은 순간 우리는 본격적으로 결혼 '산업'을 맞이했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