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산은 우거져 앞을 알 수 없고
작은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온 아침.
특별히 할 일이 없다. 아침을 먹기엔 부담스럽고 점심을 먹기엔 아직 이르다.
서재에 들어가 어제 읽다만 ‘디노 부차티’의 ‘타타르인의 사막’을 펼쳤다.
요새 넘어 미지의 시공간, 타타르인의 사막이라 불리는 곳.
대령은, 대위는 왜 요새를 떠나지 못하는 것일까.
아직 결말을 알기엔 남은 페이지가 너무 많다.
읽기와 함께 생각도 멈춘다.
서재를 나와 간단한 채비를 하고 뒷산을 오르기로 한다.
비 온 뒤 하늘색이 파랗고 날씨는 청명하다
뒷산은 영춘산이다. 이 길로 계속 오르면 남한산성이 나온다.
남한산성은 삼국시대부터 축조되기 시작했다고 하니 그 연원이 오래인데
외성과 옹성을 포함한 성벽 총길이가 12킬로미터가 넘는다.
병자호란 때는 임금이 이곳으로 피신해 47일간 농성했다.
지나간 역사가 아쉽고 안타까워 애처롭다.
뒷짐을 지고 오르는 산길이 한가하다.
노란 산수유는 이미 진지 오래고, 쌀밥같이 탐스럽던 이팝꽃도 어제 졌다.
꽃이 진 왕벚나무엔 까만 버찌가 알알이 박히고, 노란 애기똥풀로 산길이 아름답다.
산꽃들은 제 각기 이뻐서 이름을 알 필요가 없는데,
굳이 핸드폰 카메라에 담는다.
산마루턱에 올라 주위를 돌아보니 사방이 산이고, 온통 신록이다.
마스크 안으로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잠시 흐르는 땀을 닦는다.
여름산은 우거져 앞을 알 수 없어 무심(無心)에 제격이다.
남문 문루에 올라 먼 산들을 본다. 노안인데도 눈이 흐려 멀리 보지 못한다.
성문 앞 500년 된 느티나무 보호수 두 그루,
세 그루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지난겨울, 버티던 수명을 다하고 잘려나갔다.
이제 그해 병자년을 기억하는 느티나무는 두 그루만 남았다.
저들도 언젠가는 오랜 기억을 제 수명과 함께 묻을 것이다.
간단한 스트레칭으로 근육을 이완하고 산을 내려간다.
내려가는 길의 산은 숨이 고르고 평온한데,
육신이 편안하니 마음도 느슨하다.
시원한 물 한 잔 마시고, 낮잠 한숨 자야겠다.
아파트 단지 화단에 패랭이꽃이 예쁘다.(2021.6)
애기똥풀|김무균
줄기와 이파리는
국화를 닮았는데
노란 꽃잎은
애기 똥을 닮았다.
애기 똥은
애기똥풀 꽃처럼 노래야
향기가 나고
애기가 건강하다.
애기 똥은 검거나 묽으면
애기가 탈이 난 건데
애기똥풀 꽃은 노래서
애기 탈 날 일 없겠다.
노란 애기똥풀
이름 하나 참 잘 지었다.
※작가노트
‘디노 부차티’는 이탈리아 기자, 소설가다. 1906년에 벨루나에서 태어나 1972년 밀라노에서 사망했다. 이탈리아 아방가르드 문학을 이끈 환상문학의 거장으로 불린다. ‘산악순찰대원 바르나보’, ‘60개의 이야기’, ‘어떤 사랑’, ‘곰들이 시칠리아를 습격한 유명한 사건’등의 작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