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하나같이 헐떡거렸다.
아파트 단지에는 다양한 침엽수들이 있다.
하지만 소나무를 빼고 내가 이름을 알 수 있는 나무는 전나무와 측백나무 정도다.
사실 이마저도 정확하게 구별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들 침엽수 -측백나무, 편백나무, 화백나무, 노간주나무, 히말라야시다, 개잎갈나무,
가문비나무, 전나무, 잣나무, 구상나무, 주목 등등- 들은 전문가가 아닌 이상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무슨 나무인지 알 수 있게 나무에 이름표를 달아 주면 좋겠는데, 다른 나무들과 꽃나무에는 친절하게
이름표를 달아놓은 것과 달리 이들 침엽수에만 이름표를 달아놓지 않았다.
지구상에 자라고 있는 나무의 80%는 침엽수이고, 20%는 활엽수라고 한다.
침엽수는 무르고, 활엽수는 단단하다.
그래서 영어로 침엽수는 소프트우드(Softwood), 활엽수는 하드우드(Hardwood)다.
침엽수는 싸서 건축자재로 많이 쓰이고,
활엽수는 비싸서 주로 가구 제작 등에 많이 사용된다.
비틀즈의 노래 ‘노르웨이안 우드(Norwegian Wood)’는 ‘노르웨이의 숲’이 아니라 1960년대 영국의 가난한 이들이 쓰던 노르웨이산 싸구려 소나무 가구다.
폴 매카트니는 존 레넌의 작사 과정을 설명하며, 노래 제목을 ‘Cheap Pine’으로 지을 수는 없지 않겠느냐고 말했다고 한다.
‘노르웨이의 숲’, 비틀즈의 노래에서 책 제목을 따온 하루키 또한 이를 몰랐을 리 없을 것이다.
지난해 여름 읽은 ‘나무의 시-간’을 세 번째로 읽고 있다.
나무에 담긴 인문학적 이야기들이 내 취향과 부합하고, 나무에 대한 지식을 좀 더 배양하겠다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다.
심지어 동백나무에 대한 글을 읽다가는 오래전 산 이후로 꺼내보지 않았던
‘I,van Gogh, 반 고흐가 말하는 반 고흐의 삶과 예술’이라는 고흐의 그림책(2007년에 무려 38,000원이라는 거금을 주고 샀다.)을 책꽂이에서 꺼내 펼쳐보기까지 했다.
‘자화상’속 뒤쪽 벽면엔 진짜 책에서 말한 것처럼,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우키요에(浮世繪)’가 걸려 있었다.
자화상을 그린 후 고흐는 9월 동생 테오에게 편지를 보냈다.
“흔히 자신을 알기가 어렵다고 말하지. 그리고 나도 기꺼이 그 의견에 동의하지만, 자신을 그리는 것도 그리 쉽지만은 않아.”
고흐가 소품으로 활용할 만큼 19세기 유럽엔 일본 바람이 무섭게 불었다.
자주 뒷산을 오른다. 남한산성을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한다.
나무들은 구불구불 자란 활엽수들이다.
대부분 참나무 수종이고, 아카시아나무와 오리나무도 틈틈이 자라고 있다.
그 사이에 지구상에 80%에 달한다는 침엽수의 대표 수종 소나무가 드문드문 자란다.
다른 침엽수들은 내 안목으로는 이름을 구별을 할 수가 없다.
산을 오르는 길가에는 심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쥐똥나무, 조팝나무, 좀작살나무, 화살나무 등 키 작은
관목들이 줄지어 서 있다.
길가를 좀 벗어나면 산수유, 왕벚나무, 이팝나무, 산딸나무 등이 뿌리를 내리려 안간힘을 쓰고 있는데,
그 옆 푸른 잎을 틔우지 못하고 고사(枯死)한 나무들을 늘상 보아서 일게다.
무료함과 사투하며 뒷산을 오르던 어느 날, 칠월은 염천(炎天)이었고, 그 아래서는
잎이 넓은 나무들이나, 잎이 가는 나무들이나 모두가 하나같이 헐떡거렸다.
저것이 나무들의 삶이라면 내 삶은 또 저 나무들과 무엇이 다를까.
뒷짐을 지고, 고개를 숙이고 묵묵히 산길을 걸었다.
정상도 아닌 곳, 그저 도시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까지 올라 흐린 눈을 들기 전까지.
한가한 산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오래전 고사해 ‘세한연후지송백지후조(歲寒然後知松栢知後彫)’를 무색케 했던, 팔뚝만큼 굵었던 창문 밖 전나무 세 그루가 베어져 사라지고 없었다.
5년 전 입주할 때 조경수로 심어져 있던 전나무는 이사 후 일 년을 견디지 못하고 말라 죽었다.
일 년쯤 지나자 관리사무소에서 죽은 나무를 베어 내고 그 자리에 다시 전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채 일 년이 되지 않아 또 전나무는 고사했다.
토양 때문인지, 나무 자체의 문제 때문인지 아니면, 식재 방법 때문인지 나는 알 수가 없었다.
아무도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동안 관리사무소에서는 전나무가 죽은 채로 정원을 방치해 두고 있었다.
바늘 같은 잎사귀들이 갈색으로 말라 눈에 거슬렸으나, 그런대로 거실 창문을 가려줘
작은 소임이나마 하고 있었는데 막상 사라지고 나니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리사무소에서 언제 다시 나무가 베어진 곳에 나무를 심어줄 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고사한 나무가 오늘 조경작업으로 베어지기까지도 1~2년이 걸렸다.(2021.7)
※작가노트
‘노르웨이의 숲’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1987년 발표한 소설이다. 이 소설로 전 세계에 하루키 붐이 일었다. 한국에서는 1988년 삼진기획이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원제 그대로 책을 출간해 쪽박을 찼으나, 1989년 문학사상사가 ‘상실의 시대’라는 제목으로 책을 재출간해 대박을 쳤다. 내가 ‘상실의 시대’를 읽은 것도 이 무렵이었고, 한동안 헤어나오지 못했다. ‘우키요에’는 오랫동안 건조한 동백나무(Camellia, 질기고 단단한 수종이어서 판화의 밑판으로 애용되었다.) 판재에 그림을 새겨 인쇄하듯 찍어낸 판화다. 일본이 태생인데 당대의 풍속과 풍경을 전통 방식으로 판각했다. 그렇듯이 동백나무의 학명도 Camellia Japonica다. 하지만 동백은 우리나라나 중국에서도 많이 자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