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례 팔월, 불면(不眠)

신(神)은 근심의 보상으로 ‘희망’과 ‘잠’을 주었다.

by 김무균

근 한 달간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습니다. 누워 잠을 청하면 온몸이 근질거리고, 다리에 벌레가 기어 다니는 듯해서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불편하고 불쾌한 느낌을 없애려 자리에서 일어나 다리를 주무르고, 밤새 거실을 왔다 갔다 하며 걸었습니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불쾌한 느낌들이 다소 사라졌습니다. 동이 터오는 새벽까지 이러한 느낌과 행동들이 반복됐습니다. 침대에 눕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근질근질한 느낌과 피부 속 이물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불쾌했고, 참기가 힘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며칠 이러다 말겠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어느덧 이러한 불면의 생활이 한 달째 이어지고 있습니다. 잠을 자려고 무리하게 운동을 해 몸을 피곤하게 만들었습니다.

커피도 마시지 않았고, 카페인이 들어 있는 음료도 마시지 않았습니다. 밤의 수면을 위해 낮잠도 쪽잠도 자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잠자리에 들면 변함없이 불쾌감이 스멀스멀 기어올랐습니다. 도대체 잠을 잘 수가 없었고, 피곤과 수면강박에 지쳐 허우적대다 새벽이 돼서야 겨우 잠들었습니다. 이마저도 한 시간 정도나 될까요. “수면은 피로한 마음의 가장 좋은 약이다.”라고 한 세르반테스의 말은 저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습니다.


하루 종일 정신이 멍하고 피곤해 집중이 되지 않았고,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녁이 되고 밤이 깊어지면 오늘 밤은 또 어떻게 견딜까 걱정됐습니다. 밤이 오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이러다 정신적으로 무슨 병이 들지는 않을까 무섭기까지 했습니다. ‘그냥 저러다 말겠지’하던 아내도 어느 날, 불면으로 온 밤을 잠들지 못하며 힘들어하는 나를 지켜보더니 다음날 하루 종일 인터넷을 뒤져 저의 증상과 꼭 들어맞는 병명 하나를 찾아냈습니다. ‘하지불안증후군(Restless legs syndrome)’, 의학정보에는 “다리를 움직이고 싶은 참을 수 없는 충동을 특징으로 하는 신경학적 상태. 주로 잠들기 전에 다리에 불편한 감각증상이 심하게 나타나 쉽게 잠들지 못하거나, 잠든 후에도 이로 인해 다리를 움직이게 되면서 수면장애를 일으키는 질환”이라고 나와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이 병은 낮에는 아무런 특별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세상에나, 이러한 증상의 병명이 실제로 존재하다니요. 게다가 이 증상으로 불면의 고통을 받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데 저는 더욱 놀랐습니다. 이 질환은 조기진단이 아주 중요한데, 진단하기가 쉽지 않은 데다 병이 심각해지면 수면장애로 인한 무기력증, 우울증이 동반되기도 하기 때문이랍니다. 한 연구조사에 의하면 국내 성인인구의 5.4%가 이 증후군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송파야경.jpg 불면으로 잠들지 못한 어느 밤, 남한산성을 오르는 산책길 전망데크에서 바라본 위례와 송파 야경.

곧바로 아내가 인터넷에서 나름대로 평이 좋고, 신뢰할 만한 병원 하나를 찾아내어 진료예약을 했습니다. 그리고 며칠 후 저는 병원에 입원해 밤 동안 수면상태에서 ‘수면다원검사’라는 검사를 받았습니다.(이 검사를 받기 위해서는 잠을 자야 하는데, 저는 잠의 초입에도 들지 못해 두 차례나 수면제 처방을 받고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습니다.) 다음날 오전 검사결과가 나왔습니다. 이미 스스로 진단을 내린 하지불안증후군(Restless leg syndrome)과 수면을 방해하는 무호흡증, 불특정 한 철분 결핍성 빈혈 등이 제 수면을 방해하는 병명들이었습니다. 특히, 이 중에서 하지불안증후군이 가장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수면을 방해하는 하지증후군에는 여러 요인이 있으나, 환자의 경우는 철분 결핍에 따른 도파민 부족으로 진단된다.”고 하면서, 우선 고농축 철분주사를 맞을 것을 권했습니다. 더불어 수면 중 무호흡증 치료를 위해 양압기(수면무호흡증을 치료하는 의료기기) 사용 또한 추천했습니다. 하지만 제 관심은 오로지 하지불안증후군에 집중되어 있었던 터라 양압기 사용은 귓등으로도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고농축 철분주사는 예방주사 같이 주사기로 직접 맞는 것이 아니라 혈관에 수액을 맞듯이 하는 것이었고, 시간도 한 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비용이 무려 25만 원이나 하더군요. 당연히 보험 처리 또한 되지 않았습니다.


불면의 원인을 알았고, 치료를 위한 고가의 주사액을 맞은 데다 하지불안 증세를 완화하는 약 처방까지 받고 나니 근 한 달을 괴롭히던 불면증도 한순간에 모두 날아갈 것 같았습니다. 시간이 흘러 저녁이 되고 밤이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밤이 무척 기대되었습니다. 처방받은 약을 복용하고 침대에 다소곳이 누워 잠을 청했습니다. 그런데 웬걸요. 잠들지 못했습니다. 양을 100마리를 세어도 100마리를 열 번을 더 세어도 잠은 오지 않았습니다. 하지불안증이 크게 줄어든 듯은 했지만 정신이 말짱한 것이 잠은 먼 나라, 아니 먼 우주 안드로메다의 이야기였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일까요?

왜 나는 잠들지 못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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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월엔 늘 해바라기가 피고, 고흐도 이미 오래전에 죽었는데....(2021.8)


※작가노트

“신은 현재의 여러 근심의 보상으로 희망과 ‘잠’을 주었다.”(토마스 아퀴나스) 하지만 나는 잠들지 못했으니 근심이 없었고, 근심이 없었으므로 인해 신으로부터 보상받지 못했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Infin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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