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시어스 클레이’, 노예주의 이름을 버리다

베트콩은 나를 ‘깜둥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by 김무균

며칠 전 영국의 패션잡지 ‘엘르 UK’에서 글로벌 스타 블랙핑크 멤버 ‘로제’의 사진이 편집된 채 발행됐다. 영국의 팝스타 ‘찰리 xcx’는 저스틴 비버의 아내 헤일리 비버, 배우 조 크라비츠, 로제와 함께 찍은 사진에서 로제를 어둡게 음영 처리해 자신의 SNS에 올렸다. 영국에서의 인종차별은 그 뿌리가 깊다고 한다. 흑인보다 아시아인에 대해 특히 심한데, 잘나가는 아시아인에 대한 시기와 질투 때문이라는 말이 있다.


2016년 한국 시간 6월 4일 복싱 영웅 ‘무함마드 알리’가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향년 74세로 세상을 떠났다.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쏜다.”는 명언을 남긴 알리는 죽기 전 오랫동안 파킨슨병을 앓았다. 어떤 사람들은 그 이유가 복싱을 하면서 머리를 많이 맞아서라고 했다. 알리는 로마올림픽에서 금메달은 땄지만 흑인이라는 이유로 식당 출입을 저지당하자 “나는 세계챔피언인데도 내가 들어갈 수 없는 이웃집들이 있다.”고 비난하는 등 미국 사회의 인종차별 관행에 강하게 저항하고, 올림픽 금메달을 강물에 던지고 프로로 전향했다.

1965년 5월 25일 ‘소니 리스턴’과의 2차전에서 알리는 1분 44초 만에 리스턴을 녹다운시켰다. <사진. 네이버 나무위키에서 캡처>

1964년 2월 알리는 21세의 나이에 전문가들의 8:1 예상을 뒤엎고 ‘소니 리스턴’을 7회 TKO로 물리치면서 WBA, WBC 헤비급 세계 통합 챔피언에 올랐다. 그리고 그때까지 써온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버렸다. ‘캐시어스 클레이’는 노예주가 자신의 조상에게 붙여준 이름을 따라 붙인 이름이었다. 그리고 1965년 소니 리스턴과의 2차전에서 스스로 지은 이름 ‘무함마드 알리’로 링에 올랐다. 그리고 이겼다. 하지만 그는 1967년 타이틀과 함께 선수 자격을 박탈당했다. “베트콩은 나를 깜둥이라고 부르지 않는데, 내가 왜 총을 쏴야 하느냐.”며 베트남전 참전을 거부한 것이 이유였다. 그 후 그는 인권운동가가 됐고, 그의 고향 루이빌에서 열린 시위에 참가해 다음과 같은 연설로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내 고향 루이빌에서는 이른바 우리 ‘니그로’가 개 취급을 받고 기본적인 인권도 누리지 못하는데, 왜 그들은 나에게 군복을 입고 1만 마일 떨어진 베트남에 가서 거기에 사는 황색 인종들에게 폭탄을 떨어뜨리고 총을 쏘라고 강요하는가? 사람들은 참전 거부 때문에 내가 수백만 달러를 손해 보게 될 거라고 경고하지만, 나는 이미 말했고, 이제 다시 말할 것이다. 내 동족의 진정한 적은 바로 이 나라 안에 있다. 나를 감옥에 가두어 넣는다면 뭐 어떤가? 우리는 이미 지난 400년 동안 감옥에 갇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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