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역사와 부끄러움까지 함께 했다.
2017년 1월 1일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해는 정유년(丁酉年) 닭의 해였다. 특히 ‘붉은 닭’의 해라고 했다. 아들이 2005년생으로 닭의 해에 태어났다. 이해는 을유년(乙酉年)인데, ‘푸른 닭’의 해였다. 닭띠 해에 태어나면 성격이 열정적이고, 목표 지향적이라고 했다. 난 아들이 닭띠 해의 성격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있는지 그때도 알지 못했고, 함께 산 지 20년이 지난 지금도 잘 알지 못한다. 그런고로 띠로 성격을 논하는 것은 아무 의미 없고, 맞지도 않는다는 게 내 생각이다. 이해에 대통령이 파면되어 임기를 채우지 못했고, 새 대통령이 취임해 청와대로 갔다. 5천 년 역사에 몇 번 되지 않는 아주 드문 일이었다.
어쨌든 그랬다. 2017년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지금처럼 은퇴한 백수가 아니라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스포츠단의 단장(경영의 핵심에서 밀려났다는 말이다.)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었다. 스포츠단은 3개의 스포츠팀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선수만도 50명이 넘는 무척 규모가 큰 선수단이었다. 하지만 단장이라는 직책이 그렇게 할 일이 많은 직책은 아니었다. 빼도 박도 못하게 책정된 예산을 토대로 직원들이 짜 온 운영 계획서를 검토하고, 기획안에 사인을 하고, 해마다 선수들의 연봉을 협의해 새로 책정하고, 경기가 있을 때는 경기장을 찾아 선수들을 격려하고, 경기를 관람하고, 가끔 구단주에게 보고를 하고, 또 가끔은 후원사나 지자체의 장과 협약서에 사인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아니, 일 년에 두어 번은 선수들과 회식을 해야 하기도 했다. 선수단 중에는 국가대표도 있었으나, 선수들의 성적에 회사나 스포츠단이나 그렇게 목을 매지도 않았고, 그럴 필요도 없었다. 돈을 쓰는 조직이었으나, 돈을 벌 필요는 없었고, 문제없이 무난히 선수단이 운영되면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하는 일을 늘어놓다 보니 일이 많은 것 같지만, 늘어놓은 일들이 매일 있는 것도 아니었다. 뭐라도 해야만 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시간이 많아졌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됐다. 그렇다고 안 해도 될 일을 만들어서 할 필요는 없었고, 일도 없는데 바쁜 척할 필요도 없었다. 일을 오래 많이 한다고 효율이 높아지거나 성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바쁘고 일이 많으면 직원들이 힘들어졌다. 문제가 생길 수 있는 큰일이 아니면 관여하지 않았고, 웬만하면 정시에 퇴근했다. 퇴근해서는 저녁을 먹고,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했다. 운동은 두 시간쯤 했다. 운동을 마치고 오면 샤워를 하고, 서재에서 하루를 돌아보는 일기를 썼다. 처음에는 일기를 쓰는데 종이 노트와 만년필을 사용했다. 만년필의 펜촉이 종이 위를 스치며 내는 서걱거리는 소리가 좋았다. 일기의 내용은 대개 열 줄을 넘지 않았다. 팩트 위주로 그날 있었던 일을 단문으로 썼는데,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를 흉내 냈다. 그렇게 4년을 썼다. 노트 3권 분량이었다. 그러다가 2022년이 되면서 종이 노트에 쓰던 일기를 노트북 컴퓨터의 자판을 치는 것으로 바꿨다(일기의 제목도 정해 ‘백수의 일상’이라고 했다). 펜으로 쓰는 것이 불편했고, 고칠 일이 있으면 화이트로 지우거나 칼로 긁어내야 했는데, 이는 아주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었다. 그런데 컴퓨터로 일기를 쓰다 보니, 아니 치다 보니 내용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내용을 덧붙이게 되고, 팩트뿐만 아니라 팩트와 관련된 생각도 많이 버무려서 쓰게 됐다. 그러한 이유로 2022년에는 A4지 282장, 2023년에는 230장, 2024년에는 240장의 일기를 썼다. 올해도 오늘까지 200여 장을 썼는데, 지난해와 분량이 비슷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하지만 일기를 쓰는 일은, 그것을 쓰든 치든 어쩌면 번거로운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기를 쓰기 시작한 2017년 1월 1일부터 오늘까지 하루도 빼먹지 않고 일기를 썼다. 만 9년째다. 일이 있어 못 쓴 날은 다음 날 썼고. 다음 날 못 썼으면 그다음 날이라도 썼다. 일기를 빼먹고 안 쓰면 하루가 허전했고, 해야 할 뭔가를 잊어버린 듯 불안했다. 그래서 기억이 안 나면 아내에게 묻고, 술에 취해 기억을 못 할 때는 구글 타임라인과 녹음된 전화 통화를 재생해 그날의 흔적을 찾아내 기록했다. 강박이라면 강박이었다. 그래도 이 꾸준한 기록 덕택에 (조선왕조실록만이야 할까마는) 집에 실록 하나가 생기게 됐다. 모월(某月) 모일(某日)의 일을 도저히 기억에서 살려내지 못할 때, 지출의 증거는 있으나 그 용처나 용도를 확인할 수 없을 때, 아내는 내 일기에 묻고, 나는 확인해서 답한다. 요즘은 산행을 하다가도, 헬스장에서 운동을 하다가도 ‘오늘은 뭐 했지?’, 하고 가끔 기억을 더듬는다. 그리하여 일기는 정확해서 빈틈이 없다.
일기는 주로 나를 위주로 나와 관계된 이야기, 가족이야기를 쓴다. 하지만 어떨 때는 기록할만한 정치, 사회, 스포츠, 경제 등의 이슈도 쓴다. 예를 들면 얼마 전 우리나라 축구국가대표팀이 브라질 대표팀과의 친선경기에서 5대 0으로 대패한 일(그 속에 패전 감독에 대한 욕이 들어있다.), 며칠 전 코스피 지수가 장중 250P까지 폭락한 일(세상 꺼질 것 같은 한숨을 그 속에 녹여 놓았다.)도 일기에 쓰는데, 그 일이 내 일기에 쓰일 만큼 특별한 일이기 때문이다. 일기를 있는 그대로, 느낀 그대로 쓰다 보니 나중에 다시 보게 되면 부끄러울 때도 있고, 누가 보아서는 절대 안 되겠구나, 할 때도 있다. 물론, 일기라는 것이 내가 허락하지 않는 한 다른 누가 보아서는 안 되는 것이어서 쓸데없는 걱정을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혹시 아는가? 내 일기가 치명적인 사건에서 내 알리바이를 증명할 유일한 증거 자료가 되지 않는다고. 세상일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쓴 일기지만 내가 죽을 때 이 일기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는, 일기를 쓸 때마다 드는 걱정이다. 하지만 이것이 ‘안네의 일기’도 아니고, ‘난중일기’나 ‘백범일지’는 더더욱 아니어서 사회에 기증하거나, 자식들에게 유산으로 남겨둘 필요는 없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래서 아직 죽음이 코앞에 닥치지 않은 일이라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태워서 없애버리는 것이 상책’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괜히 남겨두었다가 할 일 없이 무료한 어느 날, 자식들이 책꽂이에서 우연히 내 일기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지난날 내 흑역사와 부끄러움까지 함께 보게 된다면 저승에서라도 “저것을 그때 왜 태워 없애버리지 않았을까?”하고 후회할 것 같아서다. 아마, 그때 함께 태워 없애버려야 할 것은 일기뿐만이 아닐 것이다.
※작가노트
일기를 처음 쓴 것은 아마 국민학교(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일 것이다. 일기검사를 받았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 있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때는 일기란 것을 쓴 적이 없는 것 같다. 모르겠다. 한두 번쯤 있었나? 대학교 때는 일기를 썼다. 하지만 어쩌다가였다. 모두 끌어 모아도 스무 장도 채 되지 않을 것이다. 시국과 좌절, 부족한 재능에 대해 썼고, 가끔 연애나 그것이 주는 상처에 대해 쓴 것도 있을 것이다.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가끔 일기를 썼으나, 오래지 않았고, 흔적도 없다. 그 시기 나는 엄청난 분량의 다른 많은 글들을 써야 했다. 그 속에 내 삶은 자리하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