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하루키가 ‘서문’을 쓰고 있는 나이가 되고 말았다.
2007년 8월 무라카미 하루키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서문(序文)을 쓰고 있을 때 나는 40대 초반이었다. 약간의 양념을 치면 청춘인 줄 알고 산도 뛰어다닐 때였다. 그런데 지금 내 나이가 어느새 하루키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서문’을 쓰고 있을 때의 나이가 되고 말았다. 시간이 지나간다는 것은 어쩌면 이처럼 순식간의 일인 것이다.
이틀 전, 인터넷 서점의 알림이 있어 열어보았더니.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펀딩 한다고 했다. 목표 금액이 1백만 원이었는데, 펀딩 금액은 이미 목표를 훌쩍 뛰어넘어 세 배 가까이에 달하고 있었다(이 글을 다 쓰고 궁금해 확인해 보니, 펀딩액이 목표의 728%를 달성하고 있었는데, 얼마나 더 초과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루키의 존재감이 아직 이 정도인 것이다). 오래전 나온 이 책을 왜 펀딩 출간을 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나는 하루키가 달리기를 좋아하고, 번역된 하루키의 책을 거의 사서 읽었고, 하루키가 마라톤 완주도 두 자릿수 이상(하루키가 마라톤을 완주한 횟수는 이 책 1장에는 스물세 번이라고 나오지만, 작가 후기에는 스물다섯 번이라고 나온다. 그 사이 두 번 더 마라톤을 완주한 시간의 간극이 생겼다) 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이 책을 읽지는 않았다.
책을 사지 않은 지가 근 한 달이 지났고, 갑자기 마음이 동해 인터넷서점의 책 펀딩을 누르려고 했다. 그런데 책값이 너무 비쌌다. 리커버 특별판에 하루키가 달리는 모양의 더블 키링(Key-Ring) 하나가 선물로 주어진다고 했지만, 키링은 무용해서 내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었다. 검색을 통해 일반 구매 가격을 알아보니 책값이 5천 원이나 더 쌌다. 키링 값이 5천 원인가?, 생각하며, 펀딩 하기를 멈추고 일반 구매로 돌아섰다. 그런데 한 권만 구매하고, 결제를 하려고 보니 배달비 1,500원이 추가됐다. 내게 배달비와 와인 콜키지 비용만큼 가혹한 낭비는 없었다. 그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배달비를 내지 않아도 될 금액을 찾아 언젠가는 사서 읽겠다며 인터넷 서점 카트에 담아 놓았던 책 목록을 살펴보았다. 그곳에는 역사 몇 권과 술 몇 병, 그리고 글쓰기와 인문·교양을 꽂아 놓은 책장 한 칸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그 가격이 모두 2만 원을 넘거나 근접하는 것들이었다. 그중의 한 권 ‘롤랑 바르트가 쓴 롤랑 바르트 : 나를 쓰다, 나를 읽다’를 골랐다. 언젠가는 사서 읽겠다고 했지만, 가장 나중 카트에 담긴 책이 가장 먼저 밖으로 나오게 됐다.
두 권의 책은 저녁 약속에서 와인 몇 잔으로 약간의 취기가 올라 말이 많아진 시간에 집에 배달됐다(귀가해 박스를 뜯어보니 ‘롤랑 바르트’의 책은 하드케이스 양장본의 멋진 커버를 가지고 있었는데, 2만 원이 넘는 책값을 톡톡히 하고 있었다). 나는 그것을 택배회사 배송원의 핸드폰 문자로 확인했다. 오전에 주문했는데, 저녁에 배달이 완료되는 세상, 고객의 급한 성격을 완벽하게 충족시켜 주는 서비스였다. 이미 오래전에 달을 갔다 온(1969년 7월 20일의 일이다)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턱도 없을 일일 터였다.
나는 40대 초반부터 규칙적인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장소는 주로 헬스장이었다. 줄넘기, 러닝머신 등을 통한 유산소 운동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했다. 하지만 트레이너를 통해 따로 레슨을 받지는 않았다. 그것 또한 내게는 쓸데없는 낭비였다. 한 시간을 뛰었고, 줄넘기 800~1,000개를 했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위한 운동 기구마다 3회씩 반복해 근력운동을 했다. 휴일에는 가끔 등산을 했고, 산악자전거와 마라톤에 참여하기도 했다. 산악자전거와 마라톤은 5~6년 정도 한 것 같다. 마라톤은 풀코스는 언감생심이었고, 시작하면 한 번쯤은 한다는 하프코스도 뛰지 못했다. 겨우 10km 단축코스만 5~6회 뛰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모두 1시간 이내의 기록으로 들어왔다. 마라톤은 그만두었지만 뛰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트랙이나 로드가 아닌 러닝머신 위에서는 꾸준히 뛰었다. 가슴을 절개하는 심장 수술을 받고도 뛰었는데, 순전히 내 체형에서 배가 나오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몸무게 61kg을 유지해야 했을 뿐 다른 이유는 없었다. 산악자전거는 2016년 중랑천에서 높은 계단을 타고 내려오다 염라전 명부의 방명록을 펼친 사정이 있어 산과 계단에서는 타지 않고, 어쩌다 ‘한 번쯤은 타줘야 하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 들 때 평지에서만 탄다. 요즘도 가끔 자전거를 타고 가다 계단의 가장 높은 부분을 지나칠 때가 있다. 사건 이전 같으면 ‘음, 한 번 도전해 볼까’ 했을 것이다. 그때는 자전거를 타고 높은 계단을 내려가는 것이 겁도 났지만, 가슴이 쿵쾅거리는 기대와 다 내려오고 난 후의 짜릿한 희열이 더 컸었다. 하지만 이제는 까마득한 높이와 각도에 스스로 오금이 저려 엄두가 나지 않는다. 모두 저승 문턱을 다녀온 ‘중랑천 공중제비 사건’의 깊은 트라우마 덕택이다.
이제 나는 뛰지 않고 주로 걷는다. 헬스장의 러닝머신 위를 걷고, 아파트 단지를 걷고, 위례휴먼링과 남한산성 등산길을 걷는다. 걷는 중간에 단단히 마음먹고 10분, 20분, 혹은 30분씩 뛰는 경우도 있지만 아주 드문 경우다. 힘이 들어서이고, 숨을 가쁘게 몰아쉬며 뛰는 것을 생각하면 겁이 먼저 나서 이기도 하다. 하루키가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서문을 쓰고 있을 때의 나이가 되고만 것이다. 나는 이제 걷는 것이 좋다. 뛰고 났을 때 오는 ‘해냈다’는 희열만큼은 아니더라도 걷는 것도 나름의 기쁨과 즐거움이 있다. 걷다 보면 흩어진 생각들이 가지런히 모이기도 하고, 모였던 생각들이 봄바람에 떨어지는 꽃처럼 흩어지기도 한다. 그렇게 더 걷다 보면 아무런 생각도 생기지 않는 무념(無念)과 무상(無想)의 순간이 오기도 하는데, 뇌가 정화되는 느낌이 든다. 걸으면서 계절이 바뀌고 나이를 먹은 것이다.
책이 온 다음 날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1장, ‘누가 믹 재거를 비웃을 수 있겠는가?’를 읽었다. 믹 재거가 젊었을 때 “마흔 살이 되어 ‘새티스팩션’을 부르고 있을 정도라면 차라리 죽는 게 낫다”라고 큰소리쳤는데, 실제로는 그가 60세를 넘기고서도 계속 ‘새티스팩션’을 불렀지만, 누가 그것을 비웃을 수 있겠냐는 내용이다. 그렇다. 누가 그런 미래를 생각이나 했겠는가?, 되어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다. 이미 읽은 ‘작가 후기’와 ‘역자 후기’를 제외하고, 책을 전부 읽은 것은 책을 산 지 열하루 만인 11월 16일 오후 6시 54분 서재에서였다. 읽을 때는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읽기 시작했으나, 읽기를 계속하면서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 까닭으로 읽는데 다소 시간이 걸렸다. 어쨌든 하루키 스스로에 대한 약간의 삶과 글쓰기에 대한 많은 철학이 담긴 처음이자 마지막 회고록 같은 책이었다. 하루키는 책 마지막에 이렇게 썼다.
“만약 묘비명 같은 것이 있다고 하면, 그리고 그 문구를 내가 선택하는 게 가능하다면, 이렇게 써넣고 싶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그리고 러너)
1949~20**
적어도 끝까지 걷지는 않았다
이것이 내가 지금 바라고 있는 것이다.”라고.
※작가노트
‘믹 재거’(영국. 1943~)는 롤링스톤즈의 리더이자 보컬리스트다. 역대 최고의 보컬리스트 및 프런트맨(그룹의 리더, 대변인)으로 평가받는다. ‘새티스팩션(Satisfaction)’은 롤링 스톤즈가 1965년에 발매한 팝송으로, 2000년에 ‘위대한 세계 10대 팝송’에 선정됐다. 1위는 비틀스의 ‘인 마이 라이프’였다. 하루키의 책은 그만 읽기로 했는데, 출간되면 습관처럼 자꾸 사게 된다. ‘중랑천 공중제비 사건’은 나중에 브런치에 한번 소개할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