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루투스냐? 옥타비우스냐?(2)

카이사르 두 번째 주사위를 던지다.

by 김무균

7월의 셋째 날 마침내 카이사르 일행은 나르보(지중해 연안의 프랑스 남부에 있는 항구 도시)에 도착했다. 10군단의 잔존 병사들과 이전보다 수가 늘어난 종달새5군단도 함께 했다. 마중을 나온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에게 사죄를 청하며, 용서를 구했다. “사죄를 받아들이고 용서를 내리겠네, 안토니우스.” 카이사르가 흔쾌히 대답했다. 안토니우스는 독재관에게 잘 보이기 위해 로마에서 온 원로원 의원이 예순두 명이라고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그러면서도 호리호리한 청년에게 연신 시선을 빼앗겼다. 안토니우스는 자신의 친척인 이 청년을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진지하게 눈여겨본 적이 없었다. 그저 훗날 가문에 불명예를 안길 동성애자 청년으로만 생각해 왔던 것이다. 물론 변함없이 여자처럼 예쁘장하긴 했다. 하지만 지금은 카이사르에게 촉망받는 수습군관이라는 자신감을 조용히 발산하고 있었다. “아까 보니 그 여장남자 같은 옥타비우스를 몹시 아끼시는 것 같습니다.” 카이사르와 함께 실내로 들어온 안토니우스가 불쑥 말했다. “사람을 외모로만 판단하는 우(愚)를 범하지 말게, 안토니우스. 옥타비우스를 머리 짧은 무희(舞姬)쯤으로 봐선 곤란해. 옥타비우스의 새끼손가락 하나에 든 정치 감각이 자네의 그 거대한 몸 전체에 든 것보다 많아. 문다전투 후 줄곧 같이 다녔는데, 젊은이와 같이 있던 게 그렇게 즐거웠던 적이 없었네. 몸이 병약하니 무관은 못 되겠지만 두뇌 회전이 빠르고 슬기로워.” 안토니우스는 깜짝 놀랐다. 가슴에 비수가 꽂힌 기분이었다. 그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혹시 녀석을 입양해서 율리우스 카이사르라는 이름을 주실 생각이십니까?” 안토니우스가 물었다. “애석하지만 그렇지 않아. 아까 말했지 않나. 그앤 병약해. 오래 살지 못할 걸세.” 카이사르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저한테 잘해주십시오, 카이사르. 그럼 저도 잘해드릴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내가 자네 사죄를 받아들이긴 했지만 아직 자넨 근신 기간이야. 그 사실을 잘 기억해 두게. 빚은 다 해결되었나?” 안토니우스의 막대한 빚에 대해서는 온 로마가 다 알고 있었다. 카이사르는 안토니우스에게 내년 집정관을 지낸 다음 다누비우스 강(다뉴브 강) 유역과 다키아(현재 루마니아 영토)에서 흑해에 이르는 땅을 정복하러 가게 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안토니우스가 전리품도 적고, 그것마저도 바티니우스와 나누어가져야 한다는 사실에 불만을 표하자, “안토니우스 자네는 숙제 안 하고 놀다가 산수도 못 깨친 로마 소년의 전형이로군, 욕심은 또 어찌나 많은지.” 카이사르가 조롱하듯 안토니우스를 쳐다봤다.


카이사르는 나르보에서 두 주간 머물렀다. 그동안 신규 속주 나르보 갈리아를 정돈하고 얼마 되지 않는 10군단 잔존 병사들에게 비옥한 토지를 넉넉히 분배해 주었다. 종달새5군단은 카이사르를 따라 동진해 로다누스 강(스위스와 프랑스에 걸친 강. 현재 이름은 론 강이다.) 유역으로 가기로 했다. 그곳에서 종달새5군단 병사들도 똑같이 좋은 땅에 정착시키는 것이 카이사르의 생각이었다. 이 비길 데 없는 무적의 군단병들은 갈리아에 있어 값을 매길 수 없는 귀한 선물이었다. 이들은 장차 갈리아 여자들과 결혼함으로써 뛰어난 두 전사 민족의 피를 결합할 터였다.

콜린 매컬로가 연필로 그린 ‘데키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카이사르가 점찍은 후계자 순위 두 번째였다.

“전에도 왕처럼 보였지.” 아첨하는 원로원 의원들 사이로 거니는 카이사르를 바라보며 가이우스 트레보니우스가 데키무스 브루투스에게 말했다. “하지만 요즘은 그런 경향이 더욱 짙어지고 있어. 카이사르 렉스! 카이사르가 로마의 왕이 되려 한다는 확신을 로마의 주요 인사들에게 심어준다면 우리는 분명 무사할 걸세, 데키무스. 로마는 참주(僭主 tyrannos,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에서 비합법적으로 독재권을 확립한 지배자.)를 시해한 자를 처벌하지 않아.” 그들은 안토니우스를 그 일을 맡을 적임자로 골랐다. 나르보에서 보낸 마지막 날 트레보니우스는 마침내 안토니우스와 이야기하는 데 성공했다. 몸집이 큰 멋진 말을 보여주겠다는 트레보니우스의 미끼를 안토니우스가 덥석 물었다. 트레보니우스는 “어쨌든 올해 남은 기간과 내년에 집정관을 맡기로 한 자네야말로 카이사르가 카이사르 렉스가 되려고 하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 작은 계획들을 실행할 적임자.”라며 카이사르가 죽어야 모든 게 달라진다고 머리가 컸지만 그보다는 탐욕이 더 큰 안토니우스를 꼬드겼다. 트레보니우스는 허리를 숙여 장화 끈을 매는 안토니우스의 손가락이 떨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래. 내 말이 먹히고 있어.” 하지만 안토니우스 역시 입가에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다음날 새벽 거대한 마차 행렬이 나르보를 출발해 사흘 후 아렐라테(프랑스 남동부, 부슈뒤론주 서부의 관광 도시. 론 강 하류 왼쪽 연안 낮은 대지에 있다.)에 도착했다. 데키무스는 마차에서 안토니우스가 카이사르에게 고자질했을까 걱정했으나 위인은 고자질보다는 자기의 역할을 더 기쁘게 여겨 입을 다물었다. 카이사르는 거기서 일주일간 머무르며 종달새5군단의 정착 업무를 살폈다. 그리곤 갈리아 속주의 수도, 총독의 관저가 있는 플라켄티아(현 지명은 피아첸차. 이탈리아 에밀리아로마냐주에 있는 도시.)로 향했다. 플라켄티아에는 카이사르의 충성스러운 피호민인 가이우스 비비우스 판사가 총독으로 있었다. 카이사르는 여기서 그를 보러 온 유니우스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를 만나 저녁을 함께 했다. “브루투스 투스쿨룸(키케로의 별장이 있던 로마 근교의 지명.)에 있다는 원고 이야기를 듣고 싶군.” “네, 하나는 덕(德)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순종적 인내심에 관한 것이며 나머지 하나는 의무에 관한 것입니다.” “덕에 관한 자네의 견해는 무엇인가, 브루투스?” “아, 덕은 그 자체로 행복한 삶을 보장합니다. 덕이 있는 사람은 가난이나 질병이나 추방을 겪어도 결코 불행해지지 않지요, 카이사르.” “그럴 리가! 그간 자네가 겪은 숱한 경험을 들어보건대 실로 놀라운 발언이로군. 과연 스토아주의자의 주장다워. 순종적 인내심, 그건 미덕인가?” 카이사르는 이렇게 묻더니 스스로 답을 내놓았다. “절대 아니지!” 칼비누스가 웃었다. “응당 카이사르다운 대답이군요.” “응당 남자다운 대답이지요.” 멀리 있는 의자 끝에서 한 목소리가 말했다. “인내심은 참된 미덕이지만, 순종은 오로지 여자에게만 바람직한 덕목입니다.” 옥타비우스가 단언했다. 한마디 하려던 카시우스는 충동을 억눌렀다. 그를 자제시킨 것은 카이사르의 표정이었다. 세상에, 우리 지배자께서는 저 멍청한 팬지꽃을 자랑스레 여기시는군! 게다가 저놈 의견을 존중하기까지!


저녁식사 자리가 끝나고 브루투스와 카시우스는 카이사르에게 각각 수도담당 법무관 자리와 외인 담당 법무관 자리를 제안받았다. “내 제안을 받아들이겠나?” “네 물론입니다!” 브루투스가 밝은 얼굴로 소리쳤다. “네, 좋습니다.” 브루투스보다는 덜 기쁜 목소리로 카시우스가 말했다. 카이사르는 왜 그 자리가 그들에게 적합한지 말해주는 것으로 그의 제안을 마쳤다. 카시우스는 느릿하게 뒤로 누우며 생각했다.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었어. 브루투스는 날아갈 듯한 행복감에 젖었다. 수도담당 법무관! 가장 높은 자리. 크림이 가득한 호수 속의 두 마리 고양이들 같군, 하고 옥타비우스는 생각했다.


플라켄티아를 떠날 땐 카이사르 혼자 이동했다. 옥타비우스에게조차 로마까지 알아서 가라고 했다. 아이밀리우스 가도를 타고 해안을 지나 에투루리아의 아우렐리우스 가도를 질주하는 작은 이륜마차에는 카이사르의 비서들과 하인들, 그리고 합데파네만이 타고 있었다. 8월이 되고도 한참이 지났다. 거리낌 없이 떳떳한 전쟁을 치르러 시리아로 출발하기까지 일곱 달도 남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카이사르는 로마와 이탈리아를 정비하고, 15개 보병 군단과 게르만족과 갈리아인과 갈라티아인(터키의 소아시아 또는 아나톨리아의 북중부에 주로 거주했던 갈리아인)으로 구성된 기병 1만 명이 동원될 5년짜리 원정을 준비해야 했다. 카이사르의 머리 속은 이를 위한 생각들로 가득 찼다. 도로를 달리는 사이 시간이 훌쩍 지나고 있었다. 카이사르는 비서들에게 동시에 해결해야 할 여러 내용들을 구술했다. 군사 문제, 운하와 도로에 관한 문제, 퇴역병들의 정착에 대한 문제, 이탈리아 갈리아의 로마시민권에 관한 문제, 알렉산드리아에는 있으나(그것도 무려 100만 권의 책을 소장한), 로마에는 없는 공공도서관의 문제까지. 이것은 카이사르가 해야 할 일들이었고, 그만이 잘 해결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하지만 카이사르가 비서들에게 구술하지 않은 주제가 하나 있었다. 그의 부재중에 로마의 운명을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그것은 바로 상속자, 후계자에 대한 문제였다. 그가 독재관이 되고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로마는 아직 안정되지 않았다. 그래서 카이사르가 로마를 비워야 한다는 사실은 상당히 심각한 문제였다. 카이사르는 그동안 사실상 모든 일을 혼자 해 왔었고, 이것이 이 문제의 핵심이었다. 카이사르는 절대 동의하지 않겠지만 로마에는 자기도 카이사르와 똑같이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일곱 달이 지나면 파르티아로 가야 했다. 파르티아는 서방세계를 위협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그만이 오로지 파르티아 왕국을 침략해 멸망시킴으로써 그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이는 자만심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와 기량과 능력을 잘 알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만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로마에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달리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카이사르는 처음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파르티아에 데려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안토니우스는 본능적으로 권력을 악용하려는 욕구를 지닌 자였다. 군단들을 데리고 카이사르가 없는(그때 카이사르는 위대한 폼페이우스와 내전 중으로 이집트에 있었다.) 로마에서 로마의 일인자 독재관이 되려고 말썽을 일으킨 전력도 있었다. 파르티아와의 전쟁에서 상황이 어려워졌을 때 안토니우스가 항명하지 않으리라는 보장 또한 없었다. 안토니우스를 파르티아로 데려갈 수는 없었다. 이 말은 안토니우스에게 집정관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집정관이 된 안토니우스를 통제할 방법은 따로 마련하면 될 터였고, 이미 그의 머리 속에 방법은 그려져 있었다. 동방에 가기 전까지는 카이사르가 수석집정관을 맡고, 그가 동방에 간 후에는 푸블리우스 코르넬리우스 돌라벨라, 그가 수석집정관이 될 것이었다. 돌라벨라는 그 일을 몹시 즐거워할 인물이었다. 섹스투스 폼페이우스가 아직 히스파니아에 있지만 카리나스가 대적하고 있고, 섹스투스가 순순히 항복하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리 위협적인 존재는 아니었다. 그래도 양 히스파니아와 갈리아 속주에 강력한 총독들을 배치할 필요는 있었다. 카이사르가 신뢰할 수 있는 동시에 안토니우스를 싫어하는 자들로. 이것이 안토니우스를 통제할 카이사르의 방법들이었다. 그런데 누가, 누가, 누가? 누가 카이사르의 상속자가 될 것인가?


카이사르는 나르보 총독 관저의 정원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안토니우스의 낯익은 얼굴을 본 순간 한때 후계자로 생각하긴 한 적이 있는 안토니우스에 관한 모든 고려를 접었다. 석양에 비친 안토니우스를 본 순간 카이사르는 그의 내면이 썩어 있음을, 도덕성이 무너지고 감정이 메말랐음을 보여주는 끔찍한 징후들을 목격했다. 사치스러운 생활에 너무 탐닉하며 지낸 탓이리라. 줄곧 빚에 시달려왔기 때문이기도 했고, 모자란 상식과 야수적인 야망이 결합된 결과이기도 했다. 다른 한 명, 퀸투스 페디우스는 훌륭한 인물이지만 언제까지나 캄파니아(이탈리아 남부에 있는 주. 주도는 나폴리이다.)인 기사로만 남을 터였다. 최종 후보는 데키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알비누스와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이 두 사람으로 압축되었다. 클레오파트라와의 사이에서 얻은 친아들 카이사리온은 염두에 없었다. 카이사르에게 그는 로마인이 아닌 이집트인, 파라오가 될 아들이었다.


데키무스 브루투스는 인생의 절정기에 있었고(기원전 84년, 혹은 기원전 81년생. 어린 시절에는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와 친구로 지냈다고 한다. 카이사르가 후계자 중의 하나로 정할 때가 기원전 45년쯤이니 이때 데키무스 브루투스의 나이는 마흔이 되지 않았다.) 여태껏 단 한 번도 잘못된 행보를 보이지 않았다. 장발의 갈리아에서 육상전이든 해상전이든 항상 눈부시게 지휘했고, 살인 법정에서도 법무관으로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카이사르는 딱 한 차례 그를 나무란 적이 있었는데, 자신이 장발의 갈리아를 통치하던 시절 벨로바키아족의 봉기에서 데키무스가 보인 잔혹한 태도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데키무스가 카이사르에게 설명하길, 벨로바키아족은 카이사르가 떠난 뒤에도 군사를 유지한 유일한 부족이었을뿐더러 차기 총독이 누구일지는 모르지만 카이사르만큼 결단력이 있지는 않으리라고 판단해서 내린 결정이었다고 했다. 카이사르는 이 설명을 받아들였다. 카이사르는 데키무스를 절대적으로 신뢰했다.(7개월 후, 기원전 44년 3월 15일, 카이사르는 원로원 회의장으로 들어가는 회랑 앞에서 단검으로 자신을 찌르는 14명의 암살자 중 하나가 데키무스 브루투스인 것을 알았으나, 그가 그 일을 주도한 ‘카이사르 암살 모임’의 핵심 멤버라는 것은 죽는 순간까지도 알지 못했다.)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카이사르는 옥타비우스를 그의 유언장에서 후계자 순위 첫 번째로 점찍었다.

가이우스 옥타비우스는 9월 말경 열여덟 살이 될 것이다. 카이사르는 이 청년을 몹시 사랑했다. 하지만 옥타비우스는 너무 어리고 병약했다. 합데파네는 옥타비우스가 카이사르와 함께 있으면 안정감을 느껴 천식 증세를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카이사르가 옥타비우스 세계의 일부로 남아있는 한 옥타비우스는 건강하겠지만, 카이사르의 상속자는 그의 사후에 유산을 받는다. 카이사르의 상속자 곁에는 카이사르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갈리아 최고의 드루이드 카트바드의 말이 사실이라면 카이사르는 죽을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 카트바드는 카이사르가 괴팍한 노인이 될 정도로 오래 살지 못하며 인생의 절정기에 죽으리라 예언했다. 카이사르는 쉰다섯 살이 되었으니 인생의 절정기는 이제 10년 남짓 남았다.


카이사르는 눈을 감고 두 사람의 얼굴을 떠올렸다. 데키무스 브루투스, 금발에 새하얀 피부로 담백한 인상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눈빛에 굳은 의지와 지력이 엿보이고 입매가 굳고 강인하며 얼굴에 무시할 수 없는 존재감이 느껴진다. 감점 요인은 모친에게서 이어받은 성적(性的) 방종 기질이다.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닮은 얼굴. 살짝 여성스럽고 다소 지나치게 우아하며, 삐죽 튀어나온 귀를 가려주기엔 역부족인 긴 머리칼. 하지만 눈을 들여다보면 비범하고 영민한 인물임을 알 수 있다. 입매와 턱선은 강인하고 단단하다. 감점 요인은 천식이다.


카이사르, 카이사르, 어서 결정을 내려! 루키우스가 뭐라고 했었지? 카이사르의 행운은 카이사르의 이름과 함께 간다고, 그러니 카이사르가 믿어야 할 것은 오로지 카이사르의 행운뿐이라고 했다. “주사위를 높이 던져라!(ανερρίφθω κύβος! 에네리힉소오 키보오즈)” 카이사르는 그리스어로 외쳤다. 그가 이 말을 한 것은 살면서 두 번째였다. 첫 번째로 그렇게 말한 것은 루비콘 강을 건너기 직전이었다. 카이사르는 종이 한 장을 끌어당겨 갈대 펜에 잉크를 적시고 유언장을 쓰기 시작했다.


그의 유언장은 그가 죽기 전까지 누구도 볼 수 없을 터였다. 데키무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알비누스도, 가이우스 옥타비우스도. 그리고 유언장을 볼 수 없었던 그들 중 한 사람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지중해와 세상의 지배자이면서 신격을 갖춘 신보다 겨우 한 뼘 아래의 장군, 카이사르 암살자가 될 것이었다. 다른 한 사람은 좀 더 오랜 시간이 지나 존엄한 자, 아우구스투스가 될 것이었다.


※작가노트

위 글은 콜린 매컬로의 「Masrers of Rome Ⅵ. ‘시월의 말, The October Horse’ 2권. 7장 균열의 시작(93p~210p). 기원전 46년 인테르칼라리스(윤달)부터 기원전 45년 9월까지.」를 읽고,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몇 가지 사건 및 지명에 주(註)를 넣고, 약간의 내 생각을 첨가해 요약한 것이다.


이전 08화브루투스냐? 옥타비우스냐?(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