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이두스, 거인의 몰락(1)

카이사르를 먼저 렉스(왕)로 만들어야 해

by 김무균

10월이 되면서 ‘카이사르 살해 모임’의 회원 수는 점점 늘어났으나, 정말 영향력 있는 인물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했다. 카이사르가 렉스가 되려 한다는 안토니우스와 트레보니우스의 공작-퀴리누스 신전에 세우기 위해 제작 중인 카이사르의 조각상에 ‘불패의 신’이란 명패를 달고, 황금마차를 탄 카이사르의 상아 조각상을 만들기 위한 모금이 승인되고, 퀸틸리스 달(月)을 율리우스 달로 바꾸고, 서른여섯 번째 트리부스를 창설하며 그 이름을 율리우스 트리부스로 정하고, 카이사르의 관용을 기리는 신전을 세우고, 경기대회에서 카이사르는 보석이 박힌 황금 관을 쓰고 황금 고관 의자에 앉는다. 등-은 원로원 결의 속에서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었다. 아직 카이사르 살해 모임을 모르는 카시우스가 씩씩대며 카이사르는 신이 아니라며 고관석 단상의 왼편(관습상 표결에 질 때가 많은 불운한 방향이었다.)에 서며 반대했지만 그를 따르는 의원은 브루투스(데키무스 브루투스가 아닌 마르쿠스 브루투스), 카이사르의 육촌 형인 루키우스 카이사르, 루키우스 피소, 칼비누스, 필리푸스가 다였다. 안토니우스를 필두로 거의 모든 의원들이 단상의 오른편에 섰다. 카이사르는 지나치게 바쁜 공무로 회의에 참석할 수가 없어 자신을 렉스로 만드는 공작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파르티아 원정이 다가오고 있었고, 퇴역병 토지 분배 문제 등으로 그는 로마에 있지 못하고 캄파니아(로마 아래에 있는 이탈리아반도 남부 지역)에 머물러 있어야 했으며,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그의 부재중에 열린 원로원 회의 의사록을 읽지 못하고 한쪽에 밀어두고 있었다.


카이사르에 대한 경의의 표시는 계속되고 있었다. 12월 10일 호민관에 취임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막내 동생 루키우스는 카이사르에게 집정관 선거를 제외한 모든 선거의 후보자 절반을 추천할 권리, 그리고 그가 동방에 있는 동안 집정관을 포함한 모든 정무관을 지명할 권리를 주자는 법안을 평민회에 제출했다. 당연히 첫 번째 회의에서 안건은 곧바로 통과되었다. 절차상 위헌이었지만 집정관 트레보니우스는 “카이사르를 위한 일이라면 그 무엇도 위헌이 될 수 없습니다.”라며 합헌을 승인했다. 의도에서는 달랐을지 모르지만 밀어붙이는 것은 그때 로마나 지금 우리나 똑같다. 어제의 말과 오늘의 말이 달라도 밀어붙이면 된다. 뻔뻔하고 치졸하지만 당할 장사가 없다. 한편에서 목소리를 내지만 미약해서 아무도 그 소리에 관심조차 가지고 있지 않고, 원죄 때문에 스스로도 민망해 움츠러들고 있을 뿐이다. 얼마 뒤 원로원은 카이사르의 세 번째 독재관 임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독재관 임기 연장을 또다시 승인했다.


기원전 44년 새해 첫날, 카이사르가 재정관련 고충사항을 처리하고 있을 때 차석 집정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 전 차석 집정관 트레보니우스, 전 법무관 루키우스 틸리우스 킴베르, 전 법무관 데키무스 브루투스, 그 밖에 신중하게 선정된 평의원 스무 명이 카이사르를 만나러 왔다. 하급 정무관 여섯 명이 번쩍번쩍 빛나는 은판을 하나씩 손에 들고 있었다. “카이사르, 원로원 결의에 따라 은판에 금문자로 새긴 여섯 가지 경의를 당신께 바칩니다.” 안토니우스가 한쪽 무릎을 꿇고 소리쳤다. 군중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탄성을 질렀다. 신임 재무관 데키무스 투룰리우스가 앞으로 나와 손에 든 서판을 한쪽 무릎에 얹어 보여주었다. 율리우스 달에 관한 법이었다. 카이킬리우스 메텔루스가 율리우스 트리부스에 관한 법을 보여주었다. 카이킬리우스 부키올라누스가 루페르쿠스 신관단에 관한 법을 보여주었다. 마르쿠스 루브리우스 루가가 카이사르 관용에 관한 법을 보여주었다. 카시우스 파르멘시스가 황금 고관의자와 황금 관에 관한 법을 보여주었다. 페트로니우스가 신들의 행렬에서 상아 조각상을 전시하기로 한 법을 보여주었다. 카이사르가 소리쳤다. “나는 이것들을 받아들일 수 없소. 이러한 것들은 인간에게 바칠 수 있는 경의가 아니오. 서판을 전부 녹여 국고에 돌려다 놓으시오.” 이들의 치졸한 행위에 카이사르는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웠으나, 사절단의 투룰리우스가 “지금 저희를 모욕하시는 겁니까?”라며 크게 소리쳤다. 카이사르를 렉스로 만들려는 ‘카이사르 살해 모임’의 공작은 집요할 정도로 계속됐다. 카이사르는 자신이 렉스가 될 생각도 의지도 없음을 알려야 했다. 그는 곧바로 원로원 회의를 소집했다.


“원로원 의원 여러분, 나는 이 우스꽝스러운 아첨을 당장 그만두라고 말하겠습니다. 나는 그런 것들을 요구한 적도 바란 적도 없습니다. 앞으로도 결코 받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이 나의 지시이며, 이 지시는 반드시 준수되어야 합니다. 원로원에서 나를 로마의 왕으로 만들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는 결의안이 통과되는 것을 묵과하지 않겠습니다. 우리 로마에서 왕정은 폐지되었고, 그 대신 공화정이 탄생했습니다. 나는 왕정을 혐오합니다. 나는 결단코 왕이 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나는 합법적으로 임명된 로마의 독재관이며, 이 독재관직만이 내게 필요한 전부입니다.” 카이사르의 말은 계속됐다. “따라서 오늘부로 내 수하의 릭토르 스물네 명을 해산시키겠습니다. 나는 로마시 경계 1마일 내에서는 공식 업무에 릭토르들을 대동하지 않겠습니다.” 카이사르는 고관석 단상 오른쪽 계단에 앉아 있는 릭토르단의 수장 파비우스를 바라보았다. “파비우스, 동료들과 함께 릭토르단에 복귀하게 자네들이 필요할 때 통지하겠네.” 파비우스는 겁에 질린 얼굴로 그러면 안 된다는 듯, 한 손을 앞으로 뻗었지만 이내 손을 떨구었다. ‘카이사르 살해 모임’이 의도했던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그리고 아무도 그것을 생각하지 않고 있던 그 순간에 카이사르 살해의 첫 번째 장애물이 사라지고 있었다. ‘카이사르 살해 모임’은 3월의 이두스(Idus Martii) 며칠 전 그것을 기억해 냈고, 카이사르는 이것이 그의 죽음을 불러올 가장 치명적인 자신의 만용임을 알지 못했다.


기원전 44년 2월의 칼렌다이(칼렌다이는 각 달의 첫날을 일컫는다.)에 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주재로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딕타토르 페르페투우스(Dictator perpetuus)’ 즉, 종신 독재관으로 임명하기로 표결했다. 아무도 고관석 왼편에 설 엄두를 내지 못했고, 만장일치로 통과되었다. ‘카이사르 살해 모임’의 회원 수는 스물한 명으로 늘어났다. 가이우스 트레보니우스, 데키무스 브루투스, 스타이우스 무르쿠스, 틸리우스 킴베르, 미누키우스 바실루스, 데키무스 투룰리우스, 퀸투스 리가리우스, 안티스티우스 라베오, 세르빌리우스 카스카 형제, 카이킬리우스 형제, 포필리우스 리구리엔시스, 페트로니우스, 폰티우스 아퀼라, 루브리우스 루가, 오타킬리우스 나소, 카이센니우스 렌토, 카시우스 파르멘시스, 스푸리우스 마일리우스,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아직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는 모임에 가담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럴 가능성도 매우 낮았다. 카이사르 살해에 대한 모든 내용을 알고 있었지만 안토니우스 또한 공식적으로는 이 모임에 들지 않았다.(시오노 나나미는 그의 저서 ‘로마인 이야기’에서 안토니우스와 카이사르 살해는 무관하다고 이야기한다. 콜린 매컬로의 ‘로마의 일인자’는 소설이고, 시오노 나나미의 저서는 역사서이니 무엇이 맞는지는 독자가 판단할 일이다. 그러나 매컬로가 본 것을 나나미는 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카이사르 살해 모임’에 가담한 회원들 중 눈에 띄는 인물은 갈바, 데키무스 브루투스 등 몇 명에 불과했다. 대부분은 한물갔거나, 아직까지 빛을 보지 못한 그저 그런 군상들이었다.


트레보니우스와 데키무스 브루투스가 카이사르 살해 모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던 어느 날 카시우스가 브루투스의 서재 문을 두드렸다. 카시우스는 종신 독재관에 대한 의견을 그들에게 구하며 자신의 방식대로 할 수 있다면 카이사르를 죽여 버릴 거라고 이야기했다. 그 방법을 묻는 살해 모임 창립자들에게 카시우스는 더듬거리며 방법은 잘 모르겠다고 했다. “우리 모임에 들게” 트레보니우스가 말했다. “모임이라뇨?” 모임에 대해 궁금해하는 카시우스에게 그들은 ‘카이사르 살해 모임’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지금까지 스물한 명이 모였네. 가입할 의향이 있나?” 카시우스는 재빨리 자신도 끼워줄 것을 부탁했다. 이로써 훌륭한 회원 하나가 더 늘어나게 되었다. 이제 회원 수는 스물두 명이 되었다. 하지만 혈통과 영향력이 있는 회원이 좀 더 필요했다. “브루투스!” 카시우스가 트레보니우스와 브루투스의 이야기 중간에 외쳤다. “브루투스, 브루투스를 우리 모임에 가입시켜야 합니다. 로마 최초의 브루투스의 직계 자손이고 모계 쪽으로 세르빌리우스 아할라의 후손이기도 하지요. 브루투스를 설득해서 가입시킬 수만 있다면 감히 누구도 우리를 기소하지 못할 거예요.” 로마 마지막 왕을 축출하고 그 후 왕정복고를 시도한 친아들들을 사형에 처한 브루투스! 로마의 왕이 되기를 기도한 스푸리우스 마일리우스를 죽인 세르빌리우스 아할라! 데키무스 브루투스의 표정이 뻣뻣해졌다. “나 역시 로마 최초의 브루투스 직계 자손이오. 우리가 그 생각을 벌써 안 했을 것 같소?” 그가 따졌다. “그래, 하지만 자넨 세르빌리우스 아할라와는 관계없지 않나. 마르쿠스 브루투스의 혈통이 자네보다도 한 수 위야, 데키무스. 그는 로마 최고의 갑부이고 영향력이 지대한 데다 브루투스 가문과 파트리키인 세르빌리우스 가문의 혈통을 동시에 이어받았어. 카시우스 우린 그를 데려와야 해! 그러면 우리에겐 두 명의 브루투스가 있으니까. 절대 실패할 리 없어!” 이로써 목숨이 걸릴 정도로 매우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공작이긴 하지만 또 하나의 브루투스 영입이 결정되었다.


2월 초 카이사르는 파르티아 전쟁의 명분을 찾았다. 파로코스 왕자가 이끄는 파르티아 군대가 시리아를 침략한 것이다. 결국 시리아 속주 북단의 전 지역이 파르티아군에게 짓밟혔고, 시리아 총독 안티스티우스 베투스는 안티오케이아에 갇힌 몸이 되었다. 이제 굳이 시리아 속주를 방어하거나 파르티아와 싸울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될 터였다. 카이사르는 당초 계획보다 훨씬 많은 돈을 국고에서 빼내 군자금으로 조성하고 브룬디시움(이탈리아반도 장화 뒷굽에 있는 지역)으로 보냈다. 군자금은 보안상 카이사르의 은행가 가이우스 오피우스의 금고에 보관되었다(카이사르가 살해당하자 이탈아리아로 돌아온 제1 상속자 옥타비우스는 이 돈을 자신의 친구이면서 참모인 아그리파와 함께 빼돌려 자신의 군자금으로 활용했다. 나중 안토니우스가 이 돈을 기억하고 찾았지만 옥타비우스는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고 잡아떼었다). 카이사르는 3월의 이두스에 집정관 직에서 물러나겠다고 원로원에 통보했고, 가이우스 옥타비우스는 푸불리우스 벤티디우스로부터 브룬디시움으로 가라는 짤막한 통지서를 받았다. 이보다 며칠 전 트레보니우스와 안토니우스가 만나 둘 만의 밀약을 맺었다. “카이사르는 날 덩치만 큰 바보로 아는데 그건 사실이 아니예요, 트레보니우스. 카이사르가 살해되면 당신들이 나나 루키우스 외삼촌이나 칼비누스나 페디우스를 살려두겠어요?” 안토니우스는 절대 발설해서는 안 된다는 말과 함께 내가 당신들의 표적이 되지 않을 거라고 보장한다면 자신도 이 일로 당신들 중 아무도 고통받지 않을 것을 보장하겠다고 말했다. 이것은 이 모든 일을 계획한 트레보니우스가 도저히 뿌리칠 수 없는 너무나도 좋은 제안이었다. 안토니우스는 일중독자 카이사르와 달리 행정에 무관심한 게으름뱅이다. 스스로 로마의 일인자라고 일컬으며 우쭐한 얼굴로 길거리를 활보할 수만 있다면, 그리고 카이사르의 어마어마한 재산을 탕진할 수만 있다면(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의 당질로 자신이 후계가 없는 카이사르의 상속자가 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었다.) 그는 로마가 옛날 방식으로 퇴보하든 말든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제안을 받아들이겠네.” 가이우스 트레보니우스가 말했다. “데키무스에게도 비밀로 하는 거죠?” “데키무스에게도 비밀로 하겠네, 맹세해.”


카이사르가 로마의 왕이 되려 한다는 안토니우스의 작전 하나가 더 추가됐다. 루페르쿠스 축제(고대 로마에서 건강과 다산을 기원하고 도시를 정화하는 축제. 매해 2월에 열렸다.)에서 안토니우스가 카이사르의 머리에 디아데마(Diadema, 머리에 디아데마를 묶는다는 것은 왕이 된다는 것을 상징한다.)를 묶어주려 한 것이다. 그러나 이 행동은 카이사르의 재빠른 반응으로 디아데마가 땅에 떨어짐으로써 실패했다. 카이사르는 디아데마를 오른손으로 집어서 높이 들고 우렁차게 외쳤다. “로마에서 유피테르 옵티무스 막시무스만이 유일한 왕이다.” 카이사르의 지시로 다음날 새벽 원로원 의사당에서 회의가 열렸다. “동판에 이렇게 새기십시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집정관을 지낸 해 열린 루페르쿠스 축제일에 집정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가 카이사르에게 디아데마를 매어주려 했으나 카이사르는 이를 공개적으로 거부하고 군중으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로써 카이사르가 렉스가 되려 한다는 소문은 공개적으로 잦아들게 되었다.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카이피오’. ‘카이사르 살해모임’의 스물세 번째 회원으로 모임에 가입했다. ‘카토’의 딸이었던 아내 ‘포르키아’가 잠시도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카이사르가 자신이 디아데마를 받기를 거부한 사실을 동판에 기록하라고 지시한 이틀 뒤 쉽지 않은 일이었으나 야음을 틈타 ‘카이사르 살해 모임’의 회원 전원이 모였다. 그들은 초조하고 불안했다. 트레보니우스는 과연 자신이 그들을 하나로 모을 수 있긴 할지 회의가 들었다. 얼마 전 회원으로 가입한 카시우스가 발언을 시작했다. “한 달 안에 카이사르는 제거될 것입니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여러분 중 한 사람이라도 이 일을 진지하게 여기고 있다는 걸 보여주는 증거를 단 한 가지도 찾지 못했습니다. 말은 쉽지요. 중요한 건 행동입니다!” “그러는 당신이야말로 마르쿠스 브루투스를 데려오는 일에 진척이 있소?” 스타이우스 무르쿠스가 아니꼽게 말했다. 카시우스의 브루투스 영입 작전은 사실 잘 풀리지 않고 있었다. 브루투스는 아내 포르키아를 향한 유별난 열정과 포르키아와 모친인 세르빌리아의 지치지 않는 전쟁 사이에서 다른 일에 마음 쓸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일주일만 더 주시오.” 카시우스가 짧게 말했다. 더 이상 진전이 없으면 이 모임에서 브루투스는 뺄 작정이었다. 카이사르 살해가 성공하면 안토니우스도 죽여야 한다고 카시우스와 데키무스 브루투스가 으르렁거렸지만 “어디 그래보게. 우리는 신성모독을 저지른 죄인이 되어 돈 한 푼 없이 로마에서 영원히 추방될 테니까.”라며 “우리 모임의 목적은 압제자를 제거하는 것이며, 이 일의 대상을 카이사르로 한정해야 만이 우리의 행동이 정의롭고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모스 마이오룸에 부합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며 트레보니우스가 안토니우스와의 밀약을 기억해 내며 다시 한번 반대했다. 별 소득 없이 모임은 해산됐다.


다음날 아침 카시우스가 처남인 브루투스를 만나러 왔을 때만 해도 브루투스가 살해 모임에 가입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결국 마르쿠스 유니우스 브루투스 카이피오는 스물세 번째 회원으로 모임에 가입했다. 카이사르의 숙적이었던 카토의 딸이며 그의 아내인 포르키아가 잠시도 그를 가만히 두지 않고 카이사르를 죽이라고 악다구니를 퍼부었고, 끊임없이 공작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허벅지를 칼로 자해하는 포르키아의 피분수 앞에서 그는 끝내 버틸 수가 없었다. “알았어, 알았어, 알았어!” 브루투스가 사색이 되어 말했다. “알았어, 포르키아, 당신이 이겼어! 할게. 그를 죽일게.” 집안의 조각상마다 쓰인 낙서(“브루투스, 너는 어째서 나를 잊었느냐? 나는 로마의 마지막 왕을 축출했다.” “감히 너 스스로를 브루투스로 부를 자격이 있느냐? 너는 그를 쓰러뜨리기 전까지 그 영광스런 이름으로 불릴 자격이 없다.” 등 )를 보고 브루투스의 모친이면서 한때 카이사르의 연인이었던 세르빌리아는 사태를 파악했다. 이건 카이사르 살해 음모야!(브루투스는 사업관리인이었던 마티니우스가 자신과 카이사르를 이간시키려 한 짓이라고 이야기했다. 마티니우스는 회사 돈을 횡령해 며칠 전 해고 시켰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솔직히? 너 같은 쥐새끼가? 너 같이 겁 많은 토끼가? 버러지가? 끔찍한 괴물 같은 마누라에게 눌려 사는 너 같이 줏대 없는 놈이? 네 마누라가 죽였으면 죽였지, 네가? 차라리 돼지가 하늘을 난다는 말을 믿겠구나.” “그러니까 말이예요, 엄마.” “거기 그렇게 머저리같이 서 있지 말고 어서 카이사르를 만나러 가! 암살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카이사르에게 기소당하기 전에.” 브루투스는 시킨 대로 했다. 어쨌든 지금은 그것이 최선의 대처였다. “이것이 이번 일의 전모입니다. 카이사르.” 브루투스가 종신 독재관 관저의 서재 앞에서 말했다. “심려를 끼쳐 죄송합니다.” 카이사르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파르티아 정복 때까지 살아있을 거라 장담했다. 일말의 양심을 가진 브루투스가 릭토르들을 다시 부르라고 했을 때도 그럴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만약 그런다면 사람들은 내가 겁먹었다고 수군댈 텐데, 내가 그 꼴을 볼 것 같은가? 이것이 카이사르의 성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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