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의 이두스, 거인의 몰락(2)

“브루투스 너마저도(Et tu, Brute)”는 없었다.

by 김무균

2월이 지나고 3월의 칼렌다이 밤에 살해 모임 회원들이 케레스 신전에 다시 집결했다. “이미 논의를 마친 내용이지만 마르쿠스 브루투스를 위해 거사가 치러질 장소를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우리의 선택지는 하나로 좁혀졌습니다. 바로 클레오파트라의 저택과 아우렐리우스 가도 사이의 긴 도로입니다. 카이사르는 클레오파트라를 방문할 때 비서 두어 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대동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거기서 매복 공격을 합니다. 날짜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매복 공격이요? 진짜로 매복 공격을 하자는 말은 아니겠지요.” 브루투스가 말했다. “매복 공격만이 유일한 방법이네.” 단호하게 트레보니우스가 대답했다. “우리는 압제에 항거하는 사람이지 살인자가 아닙니다. 열린 장소에서의 공개적인 행위여야 합니다. 아주 조금이라도 숨기는 부분이 있으면 우리는 암살자로 낙인찍힙니다. 나는 우리가 로마의 해방자였으며, 지금도 해방자로 추앙받는 최초의 브루투스와 아할라의 정신을 계승하는 사람들이라고 믿습니다. 우리의 동기는 순수하며 우리의 목적은 숭고합니다. 그리고 그 행위는 강한 신념에 기초한 용기를 요구합니다. 이 행위가 남모르게 행해진다면 우리는 갈채를 받을 수 없습니다.” 포르키아에게 떠밀려 가담하긴 했지만 이 일에 돌이킬 수 없을 만큼 깊숙이 가담하게 된 브루투스는 이 일이 자신에게 매우 중요해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브루투스의 완고한 태도는 카시우스에게 뜻밖의 영향을 미쳤다. “브루투스의 말이 옳소! 공개적으로 거행해야 합니다. 카이사르와 더불어 안토니우스와 돌라벨라까지 한꺼번에 제거합시다.” “안돼! 우리는 압제에 항거하는 사람들이지, 살인자가 아니야. 우리는 오로지 왕을, 왕만을 죽입니다. 거사를 치를 때 외치는 말도 ‘우리가 로마를 압제에서 해방시켰다’여야 합니다.” 이것이 브루투스의 확고한 신념이었다. 트레보니우스는 브루투스가 지껄이는 헛소리를 들으며 마음이 납덩이처럼 무거워졌다. “어째서 우리는 브루투스가 우리의 귀한 자산이 되리라고 생각했을까?” 데키무스를 쳐다보니 그도 자포자기한 듯 눈알을 위로 굴렸다.


이때 트레보니우스의 머리에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잠깐, 잠깐! 방법이 있습니다. 공개적이면서도 안전한 방법이 있습니다. 3월의 이두스에 폼페이우스 회의소, 이만하면 충분히 공개적인 장소겠지, 브루투스?” “원로원 회의 장소라면 내가 바라는 모든 기준을 충족시킵니다, 트레보니우스.” 공개적이라고 해서 반드시 포룸 로마눔의 수많은 군중이 보는 앞일 필요는 없었다. 회원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리고 회원들이 해야 할 각각의 임무가 주어졌다. 공식 회원은 아니지만 안토니우스가 담당해야 할 역할도 정했다. 카이사르를 죽이는 동안 안토니우스와 돌라벨라, 그리고 고등정무관들을 회의소 밖에 머물게 하는 임무는 만장일치로 트레보니우스가 맡게 됐다. 그래도 안토니우스를 죽여야 한다는 카시우스의 말은 데키무스에 의해 무시됐다. 회의는 끝났다. 케레스 신전 문 앞에서 그들은 모두 엄숙히 악수를 나누고 서로의 눈을 들여다본 뒤 어둠 속으로 녹아들었다.


“가이우스, 제발 릭토르들을 다시 부르게.” 육촌형인 루키우스 카이사르가 국고위원회에서 나오다 마주친 카이사르에게 말했다. “할 일이 너무 많고 쉴 시간이 없다.”며 카이사르는 이 말에 신경 쓰지 않았다. 릭토르들은 없으나 구름처럼 뒤따르는 카이사르의 피호민이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고 루키우스는 생각했다. 두 카이사르가 베스타 신전 사이를 지날 때, 스푸린나(예언가들 중에 가장 높은 명성을 누리고 있었다.)가 카이사르를 불렀다. “카이사르! 3월의 이두스를 조심하십시오.” 카이사르가 허리띠에 매달린 돈주머니에서 금화 하나를 꺼내 튕기자 스푸린나가 능숙한 솜씨로 낚아챘다. “3월의 이두스에 무슨 일이 있소, 영감?” “당신의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경고 고맙소.” 카이사르는 이렇게 말하고 가던 길을 갔다. “저자의 말은 늘 섬뜩하리만치 정확했어. 카이사르 제발 릭토르들을 다시 부르게!” “그래서 내가 소문이나 늙은 예언가 말에 신경 쓰는 걸 온 로마가 알게 하란 말입니까? 내가 겁을 먹었다고 인정하라고요? 절대 그럴 수 없어요.” 이것이 카이사르의 대답이었다. 베스타 신전 앞 영험한 예언가를 통해 유피테르 옵시무스 막스무스가 두 번째 전조를 보여주었으나, 카이사르는 간단하게 거절함으로써 그의 죽음에 조금 더 가깝게 다가가고 있었다.


3월의 이두스 전날 마르쿠스 아이밀리우스 레피두스가 마련한 만찬에 초대받았을 때도 카이사르의 일에 대한 열정은 줄어들 줄을 몰랐다. 카이사르는 원로원 회의가 끝나면 로마를 떠나 파르티아 원정길에 오를 터였고, 처리해야 할 일들은 그의 머릿속에 천장에 닿을 만큼 쌓여 있었다. 만찬에는 카이사르 외에도 안토니우스, 돌라벨라, 브루투스, 카시우스, 데키무스 브루투스, 트레보니우스, 루키우스 피소, 루키우스 카이사르, 칼비누스, 필리푸스가 초대되었다. 키케로도 초대되었으나 건강상 이유를 들어 만찬에 참석하지 않았다. 만찬 중에 안토니우스가 불쑥 말했다. “죽음을 맞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전투 중에”라고 카시우스가 대답했다. “자다가 맞는 죽음”은 레피두스의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돌라벨라는 그냥 늙어서 죽는 것이라고 말했고, “결백을 증명하며 맞는 죽음”은 트레보니우스의 죽음이었다. 마지막으로 카이사르가 말했다. “죽음의 방법은 중요치 않네. 그것이 갑작스럽지만 않다면.” 그때 갑자기 칼비누스가 쓰러졌다. “심근경색입니다. 사망에 이르지는 않을 것이지만 당장 집으로 돌아가 치료를 받아야 합니다.” 카이사르의 주치의인 합데파네가 말했다. 만찬을 파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카이사르가 안토니우스에게 딱딱하게 말했다. “불길한 주제였어!” 당신이 짐작하는 것보다 훨씬 불길하지요, 하고 안토니우스가 속으로 말했다. 갑작스런 죽음, 그것은 바로 카이사르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예언하는 것이었다. 오래전 갈리아 최고의 드루이드 카트바드가 카이사르는 괴팍한 노인이 될 정도로 오래 살지 못한다고 예언한 적이 있었는데, 카이사르는 그 시기를 인생의 절정기 10년 후쯤으로 보고 있었다. 그의 죽음에 대한 안이함은 어쩌면 여기서 비롯된 것인지도 몰랐다.


3월의 이두스 전날 밤 지독한 폭풍우가 몰아쳤다. 카이사르는 폭풍우 소리를 들었다.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지만 카이사르는 침실에 들어가 네 시간 동안이나 꿈도 꾸지 않고 깊은 잠을 잤다. 동트기 두 시간 전에 폭풍우는 물러갔고 그는 잠에서 깨어났다. 기분이 가볍고 상쾌했다. 아침 식사를 마쳤을 즈음 아내 칼푸르니아가 찾아와서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악몽이었어요. 남자들이 당신을 에워싸고 칼로 찔러 죽였어요.”(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는 그냥 간단하게 아내가 불길한 꿈을 꾸었다 정도로만 나온다.) “그냥 꿈일 뿐이오, 칼푸르니아.” “하지만 너무도 생생했는걸요! 원로원 회의소였어요. 폼페이우스 회의소였어요. 가까이에 폼페이우스 조각상이 있었어요. 제발, 카이사르, 오늘 회의에 가지 마세요!” 스푸린나의 두 번째 계시에 이은 세 번째 전조였다. 로마의 신들이 그의 죽음에 이르는 길을 막고 있었으나 카이사르는 계속해서 그 전조와 예언들을 무시했다. 그리고 카이사르는 원래 그런 사람이었다. 카이사르는 칼푸르니아의 손을 풀어 자신의 손으로 감싼 뒤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꼭 가야 하오, 여보. 오늘 나는 집정관 자리에서 물러나오, 로마에서의 마지막 공식 일정이오.”(“카이사르는 3월 18일 파르티아 원정에 나설 예정이었다. 그처럼 중차대한 출발을 앞둔 그에게, 3월 15일의 원로원 회의는 아내가 불길한 꿈을 꾸었다는 정도의 이유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회의였다. 원정으로 로마를 비우게 되는 2년 동안, 로마와 속주의 방어와 통치를 맡을 책임자를 공표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카이사르에게 마지막 기회는 음모자들에게도 마지막 기회였다.”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5, 율리우스 카이사르 하권 369p. 1996년 한길사 刊 5쇄) 회의소로 가는 길은 데키무스와 함께 했다. 칼푸르니아는 데키무스에게 “그이를 잘 부탁한다.”고 문간에 서서 간청했다. 데키무스도 “걱정 마세요, 칼푸르니아. 약속해요. 제가 잘 지켜 드리겠습니다.”라며 칼푸르니아를 안심시켰다. 데키무스는 이미 칼푸르니아에게서 꿈 이야기를 들은 터였다.


두 시간 뒤 그들은 관저에서 나와 베스타 계단을 올라 팔라티누스 언덕으로 갔다. 그 뒤를 피호민 무리가 뒤따랐다. 관저 모퉁이를 돌아 베스타 신전 쪽으로 가려는데, 언제나처럼 문 옆에 쭈그리고 앉아있던 스푸린나가 소리쳤다. “카이사르! 3월의 이두스를 조심하십시오.” 네 번째 경고였다. 카이사르는 가볍게 넘기며 웃었다. “이미 3월 이두스라오, 그리고 당신도 보고 있다시피 나는 멀쩡하다오, 스푸린나.” “3월의 이두스가 오긴 했지만, 아직 다 지나진 않았습니다.” 스푸린나의 예지가 다시 경고했다. 베스타 계단을 내려오자 군중이 밀려들었다. 누군가 손을 뻗어 카이사르에게 쪽지를 내밀었다. 데키무스가 그 쪽지를 낚아채 자기 토가 주름 안에 넣었다. 그 쪽지에 무엇이 쓰여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이 책 어디에도 쪽지의 내용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 하지만 혹시 그것이 다섯 번째 경고가 아니었을까? 하여튼 카이사르는 살아서 그 쪽지를 보지 못했다.


폼페이우스 회의소 계단을 빠르게 올라가는 카이사르를 하인 둘이 따라갔다. 한 명은 상아 대좌와 접는 탁자, 다른 한 명은 밀랍 서판 여러 개와 두루마리가 든 자루를 들고 있었다. 하인들은 의자와 탁자를 고관석 단상에 놓은 뒤 회의소에서 나갔다. 회의소는 신성경계선 밖이었지만 로마에서 1마일 내에 있었으므로 카이사르의 주위에 릭토르들은 없었다. 카이사르는 가구가 올바르게 배치된 것에 만족해하며 자루에서 두루마리를 꺼내 탁자 뒤쪽에 차곡차곡 쌓아 올리고 의자에 앉았다. 이어서 필기가 필요할 경우를 대비해 왼쪽에 밀랍 서판을 쌓아두고 철필을 옆에 놓았다. “벌써 일을 하고 있습니다.” 데키무스가 계단 밑에 모여 있는 스물두 명과 합류하며 말했다. “회의소 안에 평의원들이 마흔 명 정도 있지만 고관석 단상 주변에는 아무도 없어요. 지금이 기회입니다.” 카이사르는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채 펼쳐진 두루마리 위로 고개를 숙이고 앉아 있었다. 갑자기 그가 움직였지만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무리를 보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는 왼손으로 가장 위에 놓인 서판 하나를 집어 들어 펼치고 오른손으로 철필을 집더니 밀랍 서판에 빠르고 능숙하게 글씨를 써나가기 시작했다.

카이사르 암살.jpg 이탈리아 빈센초 카무치니가 그린 '카이사르의 죽음'. <사진 네이버 캡처>

고관석 단상 3미터 가까이 접근했을 때 데키무스는 손가락 감각이 무뎌지는 것을 느끼며 단도를 뽑아 옆으로 숨겼다.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때 시야 끝으로 브루투스가 허둥지둥 방으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마침내 용기를 낸 모양이었다. 루키우스 틸리우스 킴베르가 단도를 높이 쳐들고 릭토르들이 앉는 고관석 단상 옆 계단을 걸어 올랐다. “멈춰, 이 참을성 없는 머저리, 멈춰!” 카이사르가 고개를 숙인 채 신경질적으로 버럭 소리쳤지만 그의 손은 여전히 철필을 쥐고 글씨를 새기고 있었다. 아, 도대체 언제나 카이사르의 옆을 지키고 있던 포르투나의 여신은 어디에 있는가. 눈치 빠르기로는 신을 능가하는 카이사르의 눈치는 또 어디로 갔는가. 카이사르에게 지금 있는 것은 오로지 파르티아 원정과 그에 따른 로마가 해야 할 일들뿐이었다.


킴베르는 성큼성큼 걸어가 카이사르의 목덜미 왼쪽 토가 주름을 홱 잡아당겼다. 그때 킴베르의 왼쪽에 서 있던 카스카가 먼저 카이사르의 목을 향해 뒤에서 단도를 내리쳤다. 단도는 쇄골을 맞고 비껴가 카이사르의 가슴팍에 얕은 상처만을 남겼다.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난 카이사르는 본능적으로 철필을 휘둘렀다. 카스카의 팔에 철필이 꽂혔다. 겁이 난 카스카가 동료들에게 도와달라고 소리치자 해방자들이 단도를 높이 들고 앞으로 달려들었다. 카이사르는 격렬하게 싸우면서도 비명을 지르거나 목소리를 내지 않았다. 탁자가 쓰러지고 두루마리가 사방에 쏟아졌으며 상아 대좌가 구르고 핏방울이 튀었다. 회의소 꼭대기 단의 원로원 의원들이 겁을 내며 비명을 질렀지만 카이사르를 구하러 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뒷걸음을 치던 카이사르의 등이 폼페이우스 조각상 받침대에 부딪혔다. 카시우스가 카이사르의 얼굴에 칼을 꽂고 손목을 비틀어 눈알을 뽑아내 그 아름다움이 더는 존재하지 않게 했다. 흥분한 해방자들이 몰려들었다. 단도가 솟아올랐다 내리 꽂히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카이사르는 저항을 멈추고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가 그토록 신뢰하던 포르투나의 여신은 옆에 없었다. 이 세상에서 단 하나뿐인 카이사르의 특별한 정신만이 존엄을 손상시키지 않고 죽음을 맞는 데 남은 힘을 쏟아부었다. 카이사르는 왼손으로 토가의 주름진 부분을 잡아 얼굴을 가리고 오른손으로 허벅지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토가 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이 썩어빠진 고깃덩어리들 중 그 누구도 카이사르가 죽음의 순간에 어떤 생각을 했는지 보아선 안 되었다. 품위 없이 드러난 카이사르의 다리를 기억하며 조롱해서도 안 되었다.


카이킬리우스 부키올라누스가 등을 찌르고 카이센니우스 렌토가 어깨를 찔렀다. 피가 무참히 흘렀다. 카이사르는 연이어 밀려드는 칼을 맞으면서도 여전히 서 있었다. 끝에서 두 번째 순서를 맡은 냉정한 전사 데키무스 브루투스가 카이사르의 왼쪽 가슴팍에 온 힘을 실어 칼날을 꽂았다. 칼끝이 심장을 뚫으며 카이사르가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카이사르의 주치의 합데파네는 이 상처가 카이사르를 죽음에 이르게 한 가장 기술적으로 가해진 치명적 상처, 누군가 개인적 감정을 가지고 한 행위라고 말했다. 아직 유언장은 공개되지 않았다. 유언장 속에 열여덟 살의 제1 상속자 옥타비우스에 이어 제2 상속자로 자신의 이름이 올려진 것을 마흔 살의 데키무스는 알지 못했다.) 마지막은 브루투스였다. 땀으로 눈앞이 보이지 않았고 두려움으로 감각이 마비된 채였다. 그는 무릎을 꿇고 자신의 엄마인 세르빌리아가 그토록 찬미해 마지않던 카이사르의 음경을 찔렀다. 칼끝이 겹겹이 싸인 토가 주름을 뚫고 들어갔다. 뼈에 금속이 닿아 으스러지는 소리에 브루투스는 구역질을 하며 바닥에 쓰러졌다. 그 순간 손등에 타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다른 누군가의 칼에 벤 것이었다. 카이사르의 마지막 말 “Et tu, Brute(브루투스 너마저도)”는 없었다. 이 말은 천오백 년이 더 지나서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나 나오게 될 터였다.


거사는 끝났다. 스물두 명 전원이 카이사르의 몸 스물세 곳을 찌르고 베었다.(카이사르 암살음모에 가담한 원로원 의원이 60여 명에 달한다는 설이 있지만 확증은 없다. 카이사르를 죽이는데 직접 가담한 암살자들은 실제 열네 명이었고 그 이름도 알려져 있다. 마르쿠스 브루투스, 데키무스 브루투스, 카시우스 롱기누스, 가이우스 트레보니우스, 틸리우스 킴베르, 폰티우스 아퀼라, 카스카 형제, 오타킬리우스 나소, 미누키우스 바실루스, 퀸투스 리가리우스, 세르비우스 술피키우스 갈바. 루브리우스 루가, 그리고 기원전 54년 집정관을 지낸 아헤르바노부스의 아들이 그들이었다. 스물세 곳의 상처에 대한 기록은 역사서나 소설에서나 같은 숫자로 나온다.) 데키무스는 밖에서 안토니우스와 돌라벨라를 막고 담소 중인 트레보니우스의 몫까지 약속을 지키느라 두 번을 찔렀다. 카이사르는 얼굴과 다리를 가린 채 위대한 폼페이우스의 조각상 아래 누워 있었다. 가슴과 등 부분이 갈기갈기 찢어진 크림빛 토가가 찬란한 붉은 피를 빨아들였다. 흰색 대리석 단상에 퍼져 나온 피는 더 이상 흘러나올 수 없을 것처럼 많았다. 너무나 많은 피가 쏟아져 나와 바닥 구석구석 사방으로 번져나갔다.


지중해와 세상 3분의 1의 지배자, 신격을 갖춘 신보다 겨우 한 뼘 아래의 장군, 클레오파트라의 신(神)이었던 카이사르는 파르티아 원정을 사흘 앞두고 그렇게 갑작스럽게 죽었다. 이것은 진정으로 그가 원하지 않던 죽음이었다. 기원전 44년 3월의 이두스였고, 카이사르의 나이 쉰여섯 살이었다.(실제로는 만으로 쉰여섯을 4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카이사르는 B.C 100년 7월 12일 태어났다.) 숙적 폼페이우스 마그누스가 살해당할 때보다 두 살 더 적은 나이였고, 그가 생각한 인생의 절정기를 10년 앞둔 시점이었다.


※작가노트

‘시월의 말’ 2권 8장 ‘거인의 몰락’은 170여 페이지에 달한다. 나는 처음에는 카이사르의 죽음을 A4지 한 장으로 압축 요약하려 했다. ‘죽음은 간명할수록 좋다. 나머지는 군더더기일 뿐이다’라는 게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글을 써내려 가다 보니 페이지가 자꾸 늘어났다. 콜린 매컬로의 적나라하고 직접적인 문장들이 압축을 거부하며 나를 유혹해 어쩔 수가 없었다. 여기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까지 다시 읽게 되면서 원고는 더 길어졌다. 글의 길이가 A4지 열두 장이 되면서 원고를 마쳐갈 무렵 나의 집게손가락이 마우스를 잘못 누르는 실수를 저질렀다. 두 페이지가 넘는 원고가 저장되지 않고 날아갔다. 아무리 용을 쓰도 원고를 다시 살릴 수가 없었다. 참담했다. 한번 날린 원고를 다시 기억해 살려내기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만한 사람들은 알 것이다.(순서를 맞춰 내용을 일관되게 하고, 사이사이에 생각을 넣고, 다른 자료에서 인용한 글들을 이어 붙이고. 하는 일련의 행위들) 글들을 복구해 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아깝고 아쉬웠지만 사후약방문이었고, 죽은 자식 부랄 만지기였다. 나는 원고 살리기를 포기하고 카이사르의 죽음에서 원고를 급히 마무리했다. 사라진 원고에는 카이사르가 죽었다는 소리에 놀라 집으로 도망가 대문을 닫아 건 안토니우스의 이야기, 유피테르 옵티무스 신전으로 도망가 똥을 지리도록 공황상태에 빠진 암살자들의 심리상태, 키케로에 의해 신전에서 끌려 나와 로스트라 연단에서 카이사르 암살의 당위에 대해 연설한 데키무스 브루투스의 연설 “카이사르를 사랑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했다.”는 내용, 폼페이우스 회의소에 방치된 카이사르의 시신과 시신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논의하는 키케로와 암살자들의 격렬한 토론(암살자들은 크라쿠스처럼 카이사르의 시신도 티베르 강에 버리려 했다. 하지만 카이사르를 평소 흠모하던 노예 세 명이 카이사르의 시신을 그들이 토론하고 있는 시간에 빼돌려 카이사르의 수부라 사저로 운반해 왔다.), 안토니우스는 절대 믿을 수 없었으나 현실이었던 카이사르의 유언장 내용, 카이사르의 죽음과 군중들의 반응 등이 그것이었다. 거의 일주일간 짬을 내어 쓴 카이사르의 죽음에 대한 원고는 마지막에 작은 실수 하나로 미완이 됐다. 안타까웠으나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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