쉼 없이 일해야 하는 가장의 무게(無憩)
어쩌다 딸아이와 둘이서 점심을 같이 하게 되었다.
메뉴는 내 스스로를 위해 정성을 다해 만든 볶음밥이었다.
깎은 감자와 햄을 깍뚝썰고, 양배추와 대파를 어슷썰어 프라이팬에 먼저 넣고 볶은 다음, 찬밥을 넣고 다시 함께 버무려 볶았다. 볶으면서 간 마늘 한 스푼과 참치액젓 약간을 넣고, 진간장 한 스푼에 맛소금도 약간 넣어 간을 맞춘 후 마지막으로 참기름 몇 방울을 떨어뜨렸다.
드디어 지상 최고의 ‘감자·햄 볶음밥’이 완성됐다.
그런데 이 지상최대의 볶음밥을 먹고 알아줄 이가 나 외에는 없었다.
아내와 아들은 며칠간 지방으로 합숙을 떠나고 없었고, 딸아이는 제 방에서 취침 중이었다. 백락伯樂이 없는 데 천리마가 무슨 필요가 있을까.
자는 딸아이를 깨워 식사를 종용했다.
그렇게 어쩌다 딸아이와 둘이서 식사를 같이 하게 된 것이었다.
딸아이는 적게 먹고, 나는 늦게 먹고 많이 먹어서 식사 속도가 늦었다.
식사를 먼저 마친 딸아이가 빈 그릇을 개수대에 갖다놓고 식탁을 지나면서 말을 건넸다.
“아빠~ 허공을 보고 밥 먹지 마!”
“왜”
“가장의 무게가 느껴져.”
“그럼 뭘 보고 밥을 먹어.”
“그냥 밥만 보고 먹어. 밥에 집중해”
나는 순간 당황했다. 딸아이에게 저런 말을 들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딸이 컸나? 내가 나이 들었나? 아니면, 누가 보기에도 내 모습이 애처로운가?
만 가지 생각이 떠오르는 그 순간, 오만 가지 생각을 깨뜨리며 들려오는 소리.
“아빠 나 나가.”
“어디 가는데~.”
“네일숍.”
“내가 해 줄게.”
“아빠~!”
“그 돈이면 네 아르바이트 일당이다.”
“내가 알아서 할게. 이런 거 내 마음대로 하려고 아르바이트 하는 거야!”
손톱을 돈을 주고 하다니 도대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딸아이가 현관문 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허공을 보고 다시 남은 밥을 꼭꼭 씹어서 먹었다.
깊은 가장의 무게(나는 가끔 이 무게가 물체에 작용하는 중력의 크기가 아니라, 쉼 없이 일해야 하는 가장들의 무게無憩가 아닐까 생각한다.)를 느끼면서.
P.S.“내가 알아서 할게.”는 우리집 금지어인데, 또 써도 어떻게 할 수가 없어 사문화 되었다. 어쨌거나 간에 나는 오늘 저녁 아내도 아니고 아들도 아닌 딸아이와 인근 영화관에서 영화 ‘영웅’을 둘이서 같이 보기로 했다. 내 기쁘고 설레는 마음은 봄처녀 같은데, 딸아이는 두 번째 보는 ‘영웅’이라고 했다. 아빠에게 선심을 써주는 것인지, 감동이 그만큼 깊은지 잘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