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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무균 Mar 26. 2024

응무소주 이생기심

마음자리, 몸 자리 하나도 머물지 말라!

국에서야 자정을 넘은 시간이겠지만 이곳 베트남에서는 겨우 10시가 지났을 뿐입니다. 숙소 거실에서 유튜브로 TV를 보다 특별히 볼 것도 없고, 괜히 드라마 요약본 하나 잘못 선택하면 또 새벽까지 몰두할지도 몰라, 다소 이른 시간이었지만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워서 가지고 간 ‘모비 딕’을 펼쳐 들었습니다. 이 책은 700쪽이 넘을 정도로 두껍고 무거워 들고 읽기에 몹시 불편합니다. 겨우 몇 쪽을 읽다가 이내 내려놓고는 주위를 어슬렁거리던 잠을 소환했습니다. 하지만 쉽게 잠들지 못했습니다. 하노이의 시간이 근 한 달에 가까워지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습니다. 가족들도 보고 싶고, 최근 돌아가는 상황 속에서 지금 하는 일의 앞날도 걱정됐습니다. 걱정은 그저 걱정일 뿐이고, 걱정으로 그치면 다행이겠습니다마는 그 걱정이 구체화되고, 현실화되면 여러 가지 난망하고 난처한 상황이 벌어질 것 같았습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걱정에 잠은 오지 않고, 정신이 말똥 해지면서 하마터면 밤을 꼬박 새울 뻔했습니다. 이러다 안 되겠다 싶어 생각을 멈추고, 긴장됐던 자세도 풀어 잠들기 편한 상태로 바꾸고, 숨도 길게 쉬면서 육체와 정신 모두를 이완시켰습니다. 그러다가 시나브로 잠이 든 것 같습니다. 눈을 뜨니 새벽 6시가 조금 넘었더군요. 야장몽다夜長夢多라, 밤이 길면 꿈이 많다더니 잠을 자는 동안 이런저런 상황이 애매한 여러 꿈을 꾸었습니다. 그런데 도무지 꿈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습니다. 이럴 때는 왠지 모르게 기분이 찝찝하고 우울해집니다. 이 기분이 종일 이어져 오늘 하루가 불길하고, 무기력하게 전개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침대에서 일어나 몸을 움직여야 할 것 같습니다. 이 찝찝하고 우울한 기분을 떨쳐버리려면 혼몽昏懜한 생각을 멈추고, 실체적 육신을 움직여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이 생각에 들러붙어 뇌 속 깊이 파고 들어가지 못하도록 생각과 분리시켜야 한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알고 있습니다.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 앉아 목운동을 하고, 침대에서 빠져나와 무릎 운동과 허리 운동을 합니다. 등 굽혀펴기운동도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푸시-업이라고 하는 팔 굽혀 펴기 운동을 하는데, 이는 얼마간의 어깨와 이두 및 삼두근, 전완근의 힘을 필요로 합니다. 저는 가뿐하게 목표한 4~50회의 팔 굽혀 펴기 운동을 마칩니다.

    

기분이 한결 좋아집니다. 찝찝하고 우울했던 마음자리에 오늘 하루에 대한 약간의 기대, 뭐라도 헤쳐 나갈 것 같은 미완의 자신감, 다소의 흥분 상태가 대신 들어와 앉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주변의 상황이 친화적으로 바뀌었거나, 없던 능력이 갑자기 새로 생긴 것은 아닙니다. 그저 생각을 머물게 하는 자리에서 벗어나 그 생각을 멈추어 끊고, 새로운 마음을 일으켰을 뿐입니다. 그러기 위해 몸 자리를 변화시키는 것이 필요했고, 그 몸에 새로운 기운을 불어넣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마음이 한자리에 머물면 근심이 생기고, 몸이 한자리에 머물면 욕창褥瘡이 생깁니다. 응무소주 이생기심應無所住 而生其心, 그 어렵다는 금강경金剛經 깨달음도 어쩌면 마음먹기에 따라 이렇게 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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