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6펜스’, 한 예술가의 광기와 집념

어느 백수의 오락가락 독서일기/달과 6펜스/서머싯 몸

by 김무균

머싯 몸의 ‘달과 6펜스 The Moon and Sixpence’, 책 이름이야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읽을 생각도, 읽을 계획도 전혀 없던 책이었다. 도대체가 ‘달’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6펜스’는 돈의 단위 같기는 한데, 또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가 없었고, 궁금하지도 않았다. 이런 ‘달과 6펜스’를 한번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3월 어느 날 베트남 하노이에서였다. ‘달과 6펜스’가 천재(?) 화가 ‘폴 고갱’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어디에선가 읽었거나 혹은, 보고 난 이후였다. 그렇다고 평소 고갱에 대해 큰 관심이 있었거나,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냥 그 순간 “그래 그러면 한번 읽어보아야겠네”라는 생각이 들었을 뿐이었다.


한국에 돌아온 후 4월 6일, 온라인 서점에서 휴대전화 메모함에 기록해 두었던 J.D(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과 와인디렉터 양갱의 ‘세상에 맛있는 와인이 너무 많아서’와 함께 이 책을 주문했다. 책은 나흘 뒤인 4월 11일 집으로 배달되어 왔다. 대개 이틀 뒤면 도착하는데, 주문한 책 중 한 권의 재고 파악이 늦어 배달이 늦어졌다고 했다. 퇴근을 하니 거실 소파 옆 작은 독서 책상 위에 책이 담긴 박스가 다소곳이 놓여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안방 침대에 누워 ‘세상에 맛있는 와인이 너무 많아서’를 금방 모두 먹어 버렸다. 와인에 대한 관심이 애드벌룬처럼 부풀어 하늘을 날던 때였다. 책 크기 또한 작고(140×210mm), 페이지 수도 200쪽에 불과한 데다 와인 사진이 책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게다가 초보자용이라 익히 알고 있는 내용들이 많았다. 내가 알고 싶었던 것은 단지, 책에서 소개하는 ‘세상의 맛있는 많은 와인들’이었다. 이로써 이 책을 베트남에서 읽으려던 계획은 취소됐다.


4월 중순 다시 하노이로 출장을 갈 때, ‘호밀밭의 파수꾼’과 ‘와인 읽는 CEO’ 그리고 2015년 산 후 읽지 않고 책꽂이에 꽂아두기만 했던 ‘오베라는 남자’를 캐리어와 백팩에 나누어 담았다. 그랬다. 넣지 않고 담았다. 긴 출장이 될 것이었고, 휴일에는 책이라도 읽어야 느린 시간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때까지도 아직 ‘달과 6펜스’는 제 차례가 아니었다. 더 먼저 선택을 받았던 ‘호밀밭의 파수꾼’도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모든 관심이 와인에 집중되어 있을 때였다.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기 시작한 것은 4월 21일 ‘와인 읽는 CEO’를 모두 읽고 난 후였다. 그리고 4월 27일 밤 9시 20분, 이 책을 모두 읽었다. 책은 읽으면서 생각할 필요가 전혀 없는, 그냥 읽는 대로 읽히는 책이었다. 그리하여 감상평을 한마디로 짧게 말한다면, “책의 내용이 세평世評과 너무나 멀리 떨어져 그 명성에 다다르지 못했다.” 사춘기 소년의 일기, 혹은 넋두리에 불과한 이 책이 왜 그렇게 인구에 회자膾炙(사람의 입에 자주 오르내림)됐고, 또 회자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미 읽었지만) 내가 읽기에는 내 나이가 한참 더 어려져야 했고, 이제 스무 살 된 아들에게도 굳이 일독을 권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 존 레논을 죽인 마크 채프먼이 암살 직후에 왜 “모든 사람이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어야 한다.”고 외쳤는지, 케네디 대통령을 암살한 하비 오스왈드가 체포될 때 ‘호밀밭의 파수꾼’이 그에게서 왜 나왔는지, 영화 ‘컨스피러시’에서 멜 깁슨이 ‘호밀밭의 파수꾼’ 책을 볼 때마다 왜 사서 쌓아 두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책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어떤 진실이 감춰져 있는 걸까?


‘달과 6펜스’를 읽기 시작한 것은 5월 다시 하노이의 출장지에서였다. 이번 출장길에는 ‘달과 6펜스’, ‘와인 읽는 CEO’(세 번을 읽었으나, 다시 한 번 더 읽을 생각이었다.)와 함께 ‘모비 딕’을 다시 캐리어에 담았다. ‘모비 딕’은 지난 1월 출장 왔을 때 끝을 보겠다고 했으나, 결국은 다 읽지 못하고 집 서재 책꽂이로 되돌아가 있었다. ‘달과 6펜스’는 처음에는 잘 읽히지 않았다. 별 흥미를 끄는 재미 요소도 없었고, 문장이 그렇게 탁월한 것도 아니었다.(뉴욕타임스는 “빈틈없는 구성, 강렬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 명쾌하고 간결한 문체가 고루 돋보이는 위대한 작품”이라고 추켜세우며, “후대에 걸쳐 두고두고 평가받을 수작”이라고 했다.) 진도는 지지부진했다. 언제 그림을 그리는 천재 화가 고갱의 이야기가 나오나 하고, 뒷장을 휘리릭~ 넘겨 보기 일쑤였다. 그러던 책의 진도가 한순간에 빨라지기 시작했다. 증권중개업으로 안정적인 삶을 누리던 주인공 ‘스트릭랜드’가 아내와 아이, 직업, 재산 등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림을 그리겠다며 프랑스 파리로 떠나가면서부터였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 틈나는 대로 책을 읽었다. 그리하여 5월 25일 토요일 오후 3시 8분 작품해설까지 356쪽(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에 달하는 ‘달과 6펜스’를 모두 읽었다.


거기에는 실제의 고갱과 닮은 듯, 닮지 않은 그림에 집착한 광기 어린 한 예술가가 있었다. 그의 영혼은 그리스인 조르바 보다 더 자유로웠고, 천하의 이기주의자라는 양주楊朱보다 더 이기적이었다.(그를 죽음의 문턱에서 구해준 스트로브를 절망에 빠뜨리고, 그의 아내와 같이 살 때는 뭐 이런 작자가 있나, 했을 정도다.) 그는 그림에 대해서는 광기 어린 천재성을 보였으나 -스트로브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지만- 세상사에는 무관심했다. 붓만 들 수 있으면 빌어먹든 거리의 뒷골목에서 뒹굴든 먹고 자는 것이 문제 되지 않았다. 심지어 한센병에 걸려 두 눈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에서도 마음의 눈으로 그가 살던 집의 모든 벽을 죽기 전까지 그림으로 채웠다. 벽화는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에 비할 만했다. 하지만 그의 천재성은 그 시대가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남긴 것들이 경매에 붙여졌을 때 섬의 호텔주인 티아레는 그가 남긴 그림은 제쳐 두고 이십칠 프랑을 주고 미제 난로를 샀을 뿐이었다. 스트릭랜드, 그가 궁구했던 것은 6펜스(돈과 물질)가 아니라 달(영혼과 관능)이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으면서 갑자기 타히티에 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방갈로 1박에 120만 원이나 주었다는 어떤 글을 읽고는 바로 포기했다. 몇 년 전 항공사 마일리지를 사용해 ‘누벨칼레도니(뉴칼레도니아)’를 가려고 항공 예약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작은 아이 일정을 맞출 수 없어 예약을 취소했다. 하지만 분명코 그때 갔었어야 했다. 지금 지도를 보니 누벨칼레도니는 타히티와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뱀다리

양주楊朱 : 양楊子, 이름은 주, 중국 전국시대 전기의 사상가. 노자보다 후대 사람이고, 맹자보다는 앞선다. 양자를 두고 맹자는 “털 하나를 뽑아 천하를 이롭게 한다고 하여도 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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