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백수의 오락가락 독서일기/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무라카미 하루키
2023년 9월 3일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yes24’에서 정재찬의 ‘다시 시를 잊은 그대에게’와 함께 주문했다. 그리고 나흘 뒤인 9월 7일, 하드커버로 양장된 초판본 책이 집으로 배달 되어 왔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인쇄된 머그컵 하나와 함께.... 언젠가부터 하루키의 책은 더 이상 읽지 않기로 했었다. 무의미한 것 같았다. 그런데 오랜만에 신작이 나왔다 하기도 하고, 또 건방지게도 그동안 얼마나 하루키가 변했을까?, 궁금하기도 했다.
작가 후기까지 767쪽에 이르는 이 책을 모두 읽은 것은 2024년 1월 29일 오후 2시 47분 베트남 하노이 꺼우저이에 있는 사무실에서였다. 한국시간으로는 4시 27분일 것이었다. -겨울의 하노이는 쌀쌀하고 추웠다. 가지고 간 카디건을 남방 위에 덧껴입었지만, 한기가 뱃속에서 스멀스멀 기어 나와 온몸이 절로 어슬어슬했다. 체감온도는 겨우 12~13도에 불과했다. 한국에서라면 웃을 일이었다. 어쨌든 그랬다.- 책이 집으로 배달 되어 온 지 근 반년만이었다. 책을 산 이후 하노이에 세 번이나 출장을 왔고, 그때마다 이 두꺼운 책을 들고 왔었다. 출장도 길어서 8일, 18일, 26일에 달했었다. 한국에서는 엄두가 나지 않아, 도저히 책이라도 읽지 않고서는 시간을 버틸 재간이 없을 것 같은 베트남에서는 이 책을 읽지 않을까, 해서였다. 그런데도 하노이에서 이 책을 읽겠다고 펼쳐 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어쩌면 이번 출장이 그만큼 더 길었고, 다소의 무료함이 더해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이번 출장에서 나는 이 책을 모두 읽었고, 이제는 더 이상 이 무겁고 두꺼운 책을 백팩에 넣고 사무실을 오갈 일은 없게 되었다. 이 책이 무슨 법전이나 어떤 경제학 서적처럼 두고두고 몇 번씩 읽을 책은 아니지 않은가?
이 책,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읽으면서 처음 느낀 것은 기시감이었다. 그리고 그 기시감이 어디에서 연유했는지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됐다. 오래전 30년도 더 전에 하루키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더 원더랜드’를 읽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 그 책이나 지금 이 책이나 나는 요령부득要領不得이었다. -특히, 김난주의 ‘一角獸’와 홍은주의 ‘單角獸’는 글자 한 자가 바뀐 것이 아니라, 세상 전부가 바뀐 것처럼 낯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도, 모두 읽고 나서도 나는 하루키의 의도는 고사하고, 단어나 행간조차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는 그때나 지금이나 프로이트도 융도 아니었다. 그리고 이제는 나이가 들어 복잡한 것은 생각하기가 싫었다.
#뱀다리
“나이를 먹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니다. 누구나 나이를 먹는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어떤 한 시기에 달성돼야 할 것이 달성되지 못한 채 그 시기가 지나가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니다.”<하루키, ‘먼 북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