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백수의 오락가락 독서일기/걷는 독서/박노해
크기는 문고판 만했으나 두께는 무려 880쪽에 달해 목침으로 쓸 만했다. 파란 물감으로 칠한 듯 한 면직물로 된 양장 표지에는 책을 읽으며 걷는 소년(내 눈에는 여인으로 보였다.)이 소년의 그림자와 함께 흑백으로 그려져 있다. 그 아래 책 제목 ‘걷는 독서’가 또 그 아래에는 ‘READING WHILE WALKING ALONG’이라는 영어로 된 책 제목이 쓰여 있다. 그리고 가장 아래 박노해라 한글로 쓰고 그 아래 다시 영어로 PARK NOHAE라 적었다. 단순한 듯하면서도 품격을 잃지 않은 디자인이다. 얼마전 어느 주말 한 인터넷 서점에 들어가 아들이 생일 선물로 준 1만 원짜리 문화상품권 다섯 장을 탈탈 털어 책 세 권을 구매했다. 그 중에 ‘걷는 독서’가 있었다. 가키야 미우의 ‘70세 사망법안, 가결’을 막 다 읽고 난 후였다.
이 책을 접하게 된 것은 며칠 전 어느 날, 서재의 책상 앞 리클라이너 의자에 거의 눕다시피 앉아 느긋하게 구독하는 종이 신문을 읽다가였다. 습관적으로 신문 페이지를 넘기다 신문 오른쪽 한편에 세로로 길게 편집된 칼럼을 읽기 시작했다. 지정된 날 고정된 자리에 나오는 익숙한 칼럼이었는데, 칼럼을 읽다가 눈이 번쩍 뜨였다. 아침 겸 점심을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식후의 졸음이라도 쏟아질 판이었다. 나는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았다. 그리고 책상 위에 신문을 펼쳐 놓고 첫 줄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거기에 ‘걷는 독서’ 박노해가 있었다.
“생활이 고달프다 하여/함부로 살아가지 않기를/가난과 불운이 내 마음까지/흐리게 하지 않기를” “삶의 반대는 죽음이 아니다./다 살지 못함이다.”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은/어둠이 깊어서가 아니다./너무 현란한 빛에/눈이 멀어서이다.”
일본 하이쿠俳句와 비슷했으나, 하이쿠처럼 애매하지 않았다. 간결하고 분명한데 깊은 사유가 있었다. 내게는 ‘노동의 새벽’으로 더 각인된 박노해의 시였다. 아니, 고백록이었다. 아니, 기도문이었다. 아니, 염원이며 부르짖음이었다. 한때 그의 시를 읽고 울었다. 그와 같은 노동을 하지는 못했지만 그와 같은 시를 쓰고 싶었다. 30년도 더 된 일이다. 지난 6월 그가 30년 동안 걷는 독서 길에서 번쩍 번쩍 불꽃이 일 때마다 발걸음을 멈추고 수첩에 새겨둔 글들을 모아 책 한 권을 내놨다. 책 이름은 ‘걷는 독서’, 2008년 고대문명의 발상지 알자지라 평원(우리에게 알자지라방송으로 더 유명할지도 모른다.)에서 만난 ‘걷는 독서’를 하는 소년을 찍은 사진에서 책 제목을 따왔다. 그는 이제 노동자, 혁명가에서 사유하는 철학자로 변했다. 돌아다니면서 하는 독서가 여행이고, 앉아서 하는 여행이 독서라 했는데, 그는 걷고 읽으면서 현인賢人이 됐다.
목차가 없는 이 책은 앞이든 뒤든 중간이든 어디서부터 읽어도 상관없다. 하나하나가 모두 작가가 사유해서 얻은 깨달음이다. 그는 더 적게 말하고 더 적게 이것을 오래된 만년필로 꾹꾹 눌러 썼다. 작가는 말한다. “만일 내가 한 달에 한 병씩 쓰는 잉크병에 내 붉은 피를 담아 쓴다면, 그러면 난 어떻게 쓸까. 더 적게 쓰고 더 짧게 쓸 것이 아닌가. 한 자 한 자 목숨 걸고 살아낸 것만을 쓰고 최후의 유언처럼 심혈을 기울여 쓸 것이 아닌가. 나는 그런 글만을 써야 한다고 몸부림쳐왔다.” 책의 본문 첫 장을 펼치면 오른쪽 면에 작가가 2,400편의 글에서 엄선한 423편의 글 중 하나인 글이 나온다. 한글 아래 글로벌하게 영어로 번역까지 해놓았다. 하루 한 문장씩 영어를 공부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꽃은 달려가지 않는다. Flowers never hurry.” 왼쪽 면에는 우표만한 크기의 사진이 있다.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이다. 사진이 작아서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하는데, 오른쪽 면의 글이 사진에 녹아 있다. 모두가 화두요 깨달음이다.
“마음아 천천히 천천히 걸어라. 내 영혼이 길을 잃지 않도록. Ah, heart, slowly, slowly, walk, Lest my soul lose its way.” 서문 앞 첫 장에 나오는 글이다. 이 글로부터 이 책은 시작된다. 이 한 편의 아포리즘이 어쩌면 이 책의 모든 문장을 대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진정한 독서란 지식을 축적하는 ‘자기 강화’의 독서가 아닌 진리의 불길에 나를 살라내는 ‘자기 소멸’의 독서다. 책을 ‘읽었다.’와 책을 ‘읽어버렸다.’의 엄청난 차이를 알 것이다. 읽어버리는 순간, 어떤 숨결이 일었고, 어떤 불꽃이 피었고, 저 영원의 빛에 감광되어 버렸고 그로부터 내 안의 무언가 결정적으로 살라지고 비워지고 만 것이다. 그 소멸의 자리만큼이 진정한 나를 마주하고 새로운 삶을 잉태하는 하나의 성소인 것이다.” ‘걷는 독서’ 작가 서문에 나오는 글이다. 나 또한 그동안 많은 책들을 ‘읽은’ 것이 아니라 ‘읽어버렸다.’ 어쩌면 이는 작가가 추구한 독서와 같았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의 독서는 대부분 강박에서 나온 것들이었다.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 무언가 이루어 내기 위해 읽어내 버린 ‘자기 강화’였고 이를 통한 ‘자기 과시’였다. 소멸을 통한 깨달음이 들어갈 자리에 나는 이러한 것들, 어쩌면 잉여의 쓰레기가 될지도 모르는 것들을 매번 채워 넣고 있었다. 나는 소멸함으로써 잉태하는 성소를 알지 못했다.
“정치인에게서 권력을 빼보라. 부자에게서 돈을 빼보라. 유명인에게서 인기를 빼보라. 빼버리고 남은 것이 바로 그다.” 내게서는 무엇을 빼야 온전한 내 그대로의 모습이 남을까? 뺄 그 무엇이라도 내게 있기는 한 걸까?
팔월의 마지막 날 비가 내리고 바람이 비를 따라 불었다.
#뱀다리
박노해(朴勞解, 1957~) : 시인이자, 사진작가, 혁명가이며 평화활동가다. 이 책을 보면 철학자 현인이라 부를만하다. 본명은 박기평으로 전라남도 함평에서 태어났다. 청소년 시절 낮에는 노동자로 생활하고 밤에는 선린상고 야간을 다녔다. 1984년 스물일곱 살에 쓴 ‘노동의 새벽’은 금서였음에도 100만 부가 넘게 팔렸다. 이때부터 얼굴 없는 시인이 됐다. 1991년 군사정권 하에서 사형을 구형받고 무기수로 감옥 독방에 갇혀 수감생활을 했다. 7년 6개월 만에 석방되어 복권되고,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되었으나 국가보상금을 거부했다. 그후 20여년간 국경 너머 가난과 분쟁의 땅에서 평화활동을 펼치며 현장의 진실을 기록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