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혀 사소하지 않은 ‘이처럼 사소한 것들’

어느 백수의 오락가락 독서일기/이처럼 사소한 것들/클레어 키건

by 김무균

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을 접하게 된 것은 겨울 하노이, 꺼우저이에 있는 사무실에서 인터넷으로 기사를 검색하다가였다. 나는 그때까지 ‘이처럼 사소한 것들’은 물론, 키건, 이라는 소설가의 이름조차 알지 못했다. 휴대폰 메모 파일에 키건의 책 두 권, ‘맡겨진 소녀(foster)’와 ‘이처럼 사소한 것들(Small Things Like These)’을 기록해 두었다. 각각 ‘살 책들’ 62번과 63번이었다. 한국에 돌아와 1주일이 지난 토요일 오후 나는 이 책 두 권과 친구 이지상의 지리지地理誌 ‘포천’ 그리고 배명은의 소설 ‘수상한 한의원’을 ‘yes24’에서 주문했다. 이날은 설날이었고, 설날이 되어도 고향을 가지 않은 지가 이미 수년이 되어 만날 사람도 특별히 할 일도 없는 날이었다.


책들은 사흘 뒤 예정보다 하루 일찍 현관문 앞에 배달되었고, 아내가 그것을 내 서재 책상 위(혹은 거실 식탁 위였는지도 모르겠다.)에 올려놓았다. 퇴근 후 책을 포장한 상자를 조심스럽게 뜯어 책들을 확인했다. 두 권의 책은 두께가 매우 얇았고, 다른 두 권의 책은 크기가 무척 작았다. A5판 크기의 두께가 얇은 두 권의 책이 키건의 책이었는데(각각 16쇄와 15쇄였다.), 두 권 모두 옮긴이의 글까지 131쪽과 103쪽에 불과했고, 내가 이 책들을 산 이유이기도 했다. 곧 있을 베트남 출장 때 하노이의 사무실에서 아주 가볍게 읽을 요량으로.


하지만 내가 이 책을 꺼내 읽게 된 것은 14일 오후 판교에 있는 사무실에서였다. 하루키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 독서기讀書記 원고를 마무리해 막 블로그에 올리고 난 후였다. 하노이에서 읽을 책으로는 오랫동안 침대 옆 협탁 위에 놓여 있던 허먼 멜빌의 ‘모비 딕’과 서재 책꽂이에서 언제나일까?, 손길을 기다리던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적당할 것이었다. 두 권 다 목침으로 사용해도 좋을 만큼 두께가 두꺼웠고, 내용도 웬만한 끈기로는 버티지 못할 만큼 지루해서(몇 번이나 읽기를 시도했으나, 실패한 책들이었다.) 하노이에서의 시간을 충분히 버텨줄 것이라 생각했다.


“10월에 나무가 누레졌다. 그때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돌렸고 11월의 바람이 길게 불어와 잎을 뜯어내 나무를 벌거벗겼다. 뉴로스 타운 굴뚝에서 흘러나온 연기는 가라앉아 북슬한 끈처럼 길게 흘러가다가 부두를 따라 흩어졌고, 곧 흑맥주처럼 검은 배로Barrow강이 빗물에 몸이 불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의 첫 문장이다. 옮긴이가 키건에게 번역의 조언을 구했을 때 키건은 “‘헐벗다’, ‘벗기다’, ‘가라앉다’, ‘북슬북슬하다’, ‘끈’, ‘흑맥주’, ‘불다’ 등의 단어를 써서 임신하고 물에 뛰어들어 죽은 여자를 암시하고자 했고, 가능하다면 그런 뉘앙스가 번역문에도 유지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했다.


나는 몇 번이나 첫 문장을 다시 읽으며 이 단어들과 ‘물에 뛰어들어 죽은 여자’의 이미지를 연결시켜 보려 했으나, 종내 이들의 연결된 이미지를 찾아낼 수 없었다.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아일랜드의 모자 보호소와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고통받았던 여자들과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바칩니다.”라고 하는 작가의 문장을 읽지 않았더라면, 이 책이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아일랜드 정부의 협조하에 카톨릭 수녀원이 운영하는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희생된 여자들의 이야기라는 것을 몰랐을 것이었다. 그만큼 책은 나에게 덤덤하고 사소하며 무미하게 읽혔다. 책 중간 어디쯤 작가가 무언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어렴풋이 알아챘을 때조차도 나는 그녀들의 거대한 아픔을 알지 못했고, 책이 의도하는 바 또한 제대로 알지 못했다. 단지, 모두가 침묵해서 작은 정의조차 실현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마침내 망설임 -자칫 모든 것을 잃을 수 있었다- 을 끝낸 ‘펄롱’이 창고에서 여자아이를 데리고 나와 침묵했던 사람들 사이를 걷는 모습에 조용히 박수를 쳐주었을 뿐이었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짧게 읽었으나 여운이 길었고, 얇았으나 두껍고 무거운 ‘전혀 사소하지 않은’ 책이었다.


#뱀다리1

‘이처럼 사소한 것들 Small Things Like These’은 2022년 소설부문 오웰상을 수상하고, 같은 해 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라 -역대 부커상 후보에 오른 가장 짧은 소설로 알려져 있다.- “아름답고 명료하며 실리적인 소설”이라는 심사위원들의 찬사를 받았다. 부커상을 수상하지는 못했다.


#뱀다리2

18세기부터 운영된 ‘막달레나 세탁소’는 1996년에야 마지막 세탁소가 문을 닫았다. 이 시설에서 은폐·감금·강제 노역을 당한 여성과 아이가 얼마나 많은지는 알려지지 않았다. 적게 잡으면 1만 명이고, 3만 명이 더 정확한 수치일 것이라고 작가는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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