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류의 일관성과 ‘와인 한 잔의 진실’

어느 백수의 오락가락 독서일기/와인 한 잔의 진실/무라카미 류

by 김무균

료한 오후, 어제 읽지 못한 신문을 읽었다. 신문은 구문이었는데, 분류상 신문이라고 불렀다. 신문을 읽고 나서 무라카미 류의 ‘와인 한 잔의 진실’, ‘로버트 베일 양조스 트록켄베렌아우스레제’ 편을 읽었다. 그러고는 30~40분 정도 운중천과 금토천 변을 산책했다. 천의 물결은 낮게 깔려서 조용했고, 흐름을 막는 군데군데 바위는 비켜 돌아서 흘렀다. 그럴 때마다 만추晩秋의 풍성한 햇살이 물결을 비추었고, 윤슬이 눈부셨다. “우리는 죽음의 세계를 몰라. 그래서 대신 죽음의 감미로움을 상상해 보는 거야. 이 와인은 그런 맛이 나. 죽음의 세계의 맛이.” ‘트록켄베렌아우스레제’가 독일 와인이고, 독일 와인 6개의 등급 중 최고 등급 와인이라는 것은 알겠으나, 이 와인이 죽음처럼 감미로운 맛인지, 또 죽음이 와인처럼 감미로운지는 이 와인을 마셔 보지 않아서 알지 못했다. 게다가 무심無心한 저 물결과 와인은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


얼마 전 ‘오퍼스 원’이라는 와인에 대해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다가 이 책을 알게 됐다. 당연히 휴대폰 ‘살 책들’ 메모난에 기록해 두었다가 책값 1천 원 상품권이 주어지는 주말 자주 이용하는 온라인서점에 주문했다. 그런데 서점에서 바로 답변이 왔다. “품절되었고, 절판되어서 책을 구할 수 없다.”(이 책은 2004년 10월 2판 1쇄가 ‘도서출판 창해’에서 발간됐다.) 아내에게 SOS를 날렸다. “‘알라딘’ 같은 중고 서점에 책이 있는지 알아봐 달라.” 한참 후 아내에게서 답변이 왔다. “‘알라딘’ 등 중고 서점에서도 책을 구할 수 없다”라고. 책 사기를 포기했다. 이 책이 물이나 공기처럼 없으면 죽는 것도 아니고, 이 책을 읽는다고 와인에 대한 지식이 갑자기 크게 증폭될 것도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날 아내가 이 책을 가지고 왔다. 아내가 그림을 배우는 학습관 근처에 도서관이 있어서 가 보았더니 책이 있더라며 빌려온 것이었다. 나는 아내의 노고에 무척 큰 고마움을 아주 깊게, 마음으로만 표하며 책을 읽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은 생각보다 내 아드레날린을 크게 끌어내지 못했고, ‘류村上龍’ 소설 특유의 일관성 있는 난독증이 되살아났다.


어쨌든, 무라카미 류의 단편집 ‘와인 한 잔의 진실’에는 8종류의 와인과 8명의 여자가 등장한다. 와인은 콜차구아 밸리의 ‘로스 바스코스’를 제외하고는 아주 비싼 와인들이다. 나파밸리의 ‘오퍼스 원’, 보르도의 ‘샤또 마르고’, 부르고뉴의 ‘라 타슈’, 피에몬테의 ‘체레토 바롤로’, 소테른의 ‘샤또 디켐’, 부르고뉴의 ‘몽라셰’, 그리고 라인 가우의 ‘로버트 베일 양조스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 이 중에 내가 마셔 본 와인이라고는 17~18년 전쯤에 전 직장 대표가 한 병을 주어 동료들과 한 잔씩 나눠 마신 ‘샤또 디켐(지금도 750ml 한 병에 거의 100만 원에 육박하는 가격을 자랑하는귀부와인이다)이 유일했다. “왜 좋은 술 놔두고 하필 와인이라는 ‘것’을 마시지?” 하던 때였다. 소설에 등장하는 여자들은 호스티스, 콜걸, 무용수, 비디오 연출가, 사무원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와인과는 자신이 처한 위치가 다르다. 그리고 주인공 모두는 공통적으로 오래된 둘의 추억을 혼자의 기억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상처가 있는 여성들이다.


그런데 왜? 무라카미 류는 ‘와인 한 잔의 진실’에서 '오퍼스 원'을 맨 처음에 두고, ‘로버트 베일 양조스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를 마지막 편에 배치했을까? 이 와인이 사랑의 추억처럼 달콤씁쓰(쌉싸)름해서.


#뱀다리

독일 와인은 6개의 등급으로 나뉜다. 지난주 금요일 와인 강좌가 독일 와인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때 그것을 알게 됐다. 캐비네트, 슈페트레제, 아우스레제, 베렌아우스레제, 아이스와인, 트로켄베렌아우스레제 순으로 등급이 높아진다. “모든 포도는 같은 시간을 보내며 와인으로 만들어지고, 브랜드에 따라 그들의 운명은 최종 결정된다.” 우리 인생도 대개 그렇다.

이전 29화하느님조차 바꾸지 못한 오베의 원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