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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하 Feb 19. 2021

일탈과 일상 사이

진짜 미치지 말고 소소한 미친 짓거리를 적당히

여럿이 모여 술을 마시고 떠드는 자리였다. 조용히 술을 마시던 K가 입을 열었다. 며칠 전 친구와 술을 마시다 요금을 계산하지 않은 채 도망쳤다는 얘기였다. 다 큰 성인이 세상 물정 몰랐을 때나 해봤을 법한 일을, 그것도 명백한 범죄 행위를 하다니. 술자리에서 털어놓은 그 말은 시끄러운 주변의 소음을 깨고 모두의 시선을 끌었다.


-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 뭘 어떻게 돼 그냥 냅다 뛰었지. 

  A랑 나랑 같이 뛰다가 갑자기 양쪽으로 갈라져 골목으로 들어가서 간신히 안 잡혔어.

- CCTV는? 어쩌려고 그런 위험한 짓을 했어.

- 몰라, 술김에 갑자기 A가 해보자고 하더라?

- 와 이런 미친놈이 우리 중에 있었다니.

- 나도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어. 근데 그게 중요한 게 아니야.

- 그럼 뭐가.

- 진짜 살아있는 기분이 들더라고. 도망치는데...

- 또라이 아니야 이거 ㅋㅋ


K의 일탈 고백은 잠시간 화제의 중심에 올랐지만 금세 다른 우스운 이야기들 속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술자리가 파하고 난 뒤에도 K의 미묘한 표정만큼은 잊을 수 없었다. 상기된 뺨을 쌜룩거리며 자신도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지어 보이던 K. 그렇게 수줍은(?) 범죄 고백은 처음이었다.




멀쩡해 보이던 사람들이 가끔씩 이상한 사고를 친다. 


평소의 본인이라면 전혀 하지 않을 법한 일을 하고 난 뒤 짜릿함과 죄책감의 파도 속에서 ‘나라는 사람이 이렇게 감정이 요동치는 인간이었구나’ 하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그 수위는 범죄 행위가 될 수도 있고 용인될 만한 소소한 사건이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어딘가 일상적이지 않은 것, 조금은 비도덕 한 것, 남에게 말하기 부끄러운 것, 평소의 나 답지 않은 짓을 살며 한 번쯤(보통은 여러 번) 추구하고, 실행하고, 이따금(혹은 자주) 후회한다.


하지만 순간의 짜릿함보다 죄책감의 지속 기간이 더 길기 때문일까. 일탈 후 우리는 대부분 일상으로 회귀하는 것 같다. 나쁜 짓을 벌인 후 돌아온 일상의 안정감은 어쩐지 더욱 소중하다. 다시 이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을 살뜰히 여기며 살아갈 에너지가 생긴 걸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K는 발각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시 비슷한 일탈을 저지르는 일은 없었던 모양이다. K를 비난하는 거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럴 의도도 자격도 없다고 말하겠다. 나도 살면서 비슷한 감정을 얼마든지 느껴봤으니까. 미성숙한 어느 날, 생각지 못했던 이상한 짓을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해 본 적이 있다면 아마 내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일탈이 꼭 부도덕한 것 만을 지칭하는 말은 아니라고 한다. 그런 의미로 그냥 지루하고 지친 일상에 활력을 주는 착한(?) 일탈을 찾아보는 게 여러모로 좋을 것 같지만 그런 게 쉬웠으면 실수하는 사람은 없었겠지 싶다. 


진짜 미쳐버리지 않기 위해 종종 미친 짓거리를 하고, 일상으로 돌아오기 위해 일탈을 저지르는 아이러니한 인간들.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할 바에야 작은 일탈을 소소하게 하며 사는 게 낫겠다는 어이없는 결론에 이른다.


큰소리로 욕하고 가끔 분리수거도 안 하고 차 없는 도로에서는 빨간 불에 길을 건너기로 했다. 그래, 기왕이면 집에서는 발가벗고 춤도 추고 마음에 안 드는 인간들 데스노트도 쓰자. 


성숙한 인간이 되는 과정이 이렇게나 험난하다.











*혹시 몰라 서술하자면 지인의 일탈 경험은 10년도 훌쩍 지난 옛이야기로 글을 쓰기 위해 차용한 내용입니다. 현재는 해당 가게의 상호 명칭이나 영업을 하고 있는지 여부도 희미한 상황입니다. 갓 성인이 될 무렵 미성숙한 시기에 저지른 행위이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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