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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하 Aug 10. 2021

나도 꽃 사진을 찍게 될까?

변하는사진첩의 모양과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것들

50대에 접어든 어머니 세대는 꽃을 좋아한다. 엄마의 사진첩도 그렇게 꽃밭이 되었다. 작년부터 날마다 동네 뒷산을 오르내리던 엄마의 휴대폰 사진첩은 어느새 노랗고 빨간 형형색색의 크고 작은  사진들로 수놓아져 있었다.


엄마의 프사는 항상 꽃이다..



엄마의 사진첩이 꽃밭이라면 30대에 접어든 나의 사진첩은 음식점을 방불케 한다. 엄마의 꽃밭 폴더에 비벼볼 수 있을 만큼 무수히 많은 먹고 마신 흔적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언제 어디에서 맛본 음식인지 일일이 기억할 수 없을 정도이다.


맛집으로 소문난 어떤 가게의 메인 디쉬, 예쁜 인테리어로 SNS에서 유명하다는 카페, 직접 만들어 먹었던 어느 날의 저녁 식사, 다양한 공간에서 먹고 마셨던 일상들이 빼곡히 기록된 와중에 업무상 찍어 둔 캡처 이미지나 사진 자료들이 뜬금없이 등장해 분위기를 깬다. ‘일하고 – 먹고 – 마시고’ 그게 내 일상의 핵심 키워드이다.



요리사세요..?


놀랍게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열과 성을 다해 찍어 댔던 셀카는 이제 찾아보기 힘들다. 셀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10대에서 20대까지는 정말 무진장 많은 셀프 사진들을 찍었다. 참으로 자기애 넘쳤던 시간이다. 그만큼 흑역사도 많이 생성되었는데 조명이 너무 많이 들어가 온통 하얗게 질려버려 코의 윤곽만 어렴풋이 남아있는 사진들이 대표 격이다.


왜곡된 자기애 덕분에 언젠가 이런 사건도 있었다. SNS를 통해 알게 된 같은 학교의 동급생 여자아이와 실제 만나기로 약속을 잡았는데 그 애가 약속 장소에 나오지 않았다. 하교 후 메신저로 얘기를 나눠보니 분명 약속 시각에 같은 장소에 있었다는 쏘우급 반전. 우리는 모두 셀기꾼이었고 서로를 알아볼 수 없어 만날 수 없었다는 비극적인 이야기다.




카메라를 하나씩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세상이 되면서 우리는 일상적으로 각자가 좋아하거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카메라에 담는다. 개인마다 그 모습은 모두 다르겠지만 일정 부분 세대를 관통하는 ‘피사체’ 트렌드가 있다고 생각하면 참 재미있다.


인생의 봄날, 자신의 생기로움에 취해 셀카를 찍어 대던 우리는 어느덧 먹고 마시고 일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기록하고 자신을 똑 닮은 2세나 귀여운 반려동물의 모습으로 사진첩을 채워 나간다. 그러다 겨울을 맞아 다시 들풀과 꽃처럼 강력한 생명력을 느낄 수 있는 피사체를 찾아 카메라의 시선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운명처럼, 평생 ‘꽃’이라고는 관심 없을 것 같던 우리 아빠도 별수 없이 꽃 사진에 꽂히는 거다. (아빠도 최근 들어 꽃 사진이 늘었다..)




그런데 정작 우리의 마음속에 살아있는 사진은 따로 있는 것도 같다. 엄마의 꽃밭 사진첩 속에서 결국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꽃도 아니고 들풀도 아니고 다람쥐도 아니었다.


화질이 아주 좋지 못한 짤막한 영상 속에서 웃고 계신 외할머니의 살아생전 모습이 엄마의 꽃밭 한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언제 찍었을지 모를 그 영상을 엄마는 몇 번이나 재생했을까. 가늠할 수 없는 영역이다.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한때는 사진과 영상 속에서 그때 그 시절의 기억으로 되살아나 오래도록 생기를 유지하고 있다. 셀카에서 음식점으로, 음식점에서 꽃밭으로 사진첩의 모양은 계속해서 변하겠지만 엄마가 품고 있던 짤막한 영상처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기록들이 계속 살아 숨 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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