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기억하는 방법

언젠가 김영하 작가와 김중혁 작가가 나와 여행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들은 실패한 여행은 기억이 하나도 안나는 여행이라는 말을 했다. 어떤 여행이냐면 너무나 매끄러웠기 때문에 아무것도 기억에 안 남는 여행. 작가에게 그런 여행은 시간 낭비라고 했다. ‘너무나 성공적이었기 때문에 쓸 게 없죠. 오히려 비행기 놓치고 뭐 안되고. 일반적 의미에서 실패한 이런 여행은 실패한 듯 보이지만 기억에 남고 배우는 것도 있고 그래서 긴 인생의 관점에서는 성공한 여행‘이라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리고 또 여행지에서의 갈등은 수습하고 돌아오면 다 좋은 추억이 된다고 말한다.

김중혁 작가는 여행지의 식당에서 메뉴 대충 시킨다고 한다. 여행객이라면 안 먹을 것 같은 음식 위주로, 현지 사람들만 먹을 것 같은 음식을 시킨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성공하면 맛있어서 좋고 실패하면 글로 쓰면 된다고. 그래서 글을 쓰려고 실패하기를 바란다고. 성공만 하면 쓸 게 없다고.


금요일 저녁 이른 저녁을 하러 딸과 함께 걸어서 스페인 식당을 갔다. 날씨가 좋아서인지 야외에서 식사를 하는 사람도 많았다. 동네 사람들이 가는 시끄럽고 즐거운 분위기의 식당. 작은 음식을 여러 개 시켜 나눠먹기로 했다. 메뉴 중 하나는 달달한 대추야자를 베이컨으로 감싸서 구운 단짠이 조합된 음식이었다. 나온 음식을 보니 내 입장에서는 반쯤 탄 음식. 딸도 지난번엔 이렇지 않았다고 해서 웨이터에게 이거 너무 탔다고 하니 다른 걸로 다시 해주겠다고 한다. 지금 나온 음식은 그냥 먹든지 말든지 하라고. 그래서 다시 나올 음식을 기다리며 옆 테이블에 나온 같은 음식을 보니 그것도 반쯤 탔다. 우리 것만 실수한 것이 아니고 주방장의 요리 방식이 바뀌었나 생각하던 차에 음식이 다시 나왔다. 결과가 비슷하다. 이 것 빼고는 다른 음식은 모두 훌륭해서 즐거운 시간을 보고 계산을 하려고 보니 그 음식 값을 빼고 결제를 한다.

여기 쿨한 곳이네. 결제를 마치고 나오며 생각했다.

토요일 오전에는 오픈 하우스 3군데를 보고, 오후엔 골프를 치고 싶어 하지 않는 딸을 구슬려서 근처 골프장에 갔다. 딸과 나 2인 플레이를 하려고 했지만 가능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적게 올 거라 예상되는 거의 마지막 타임에 부킹을 했다. 어제와 달리 날이 쌀쌀해서 옷을 단단히 입고 골프장에 갔다. 싼 가격에 그냥 보기는 적당한 골프장이었는데 가서 같이 팀이 된 사람들이 골프 룰도 제대로 모르는 아이들이었다. 같은 자리에서 여러 번 치기도 하고, 사람이 앞에 있는 데도 치려고 하기도 해서 놀랐다. 그들과 같이 골프를 치다가는 다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3홀만 치다가 나왔다. 미국에서 골프 문화체험했다 생각.


일요일에는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뮤지엄(Isabella Stewart Gardner Museum) 가려고 예매를 하려니 표가 없다. 미리 예약했어야 했는데. 서로 예약하는 줄 알았다고 하며 잠시 서로 탓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가기로 한 곳을 못 가니 쇼핑이라도 할까 하였지만 부활절이라 백화점은 문을 다 닫았고, 프루덴셜 타워에 있는 쇼핑몰만 문을 열었다. 한국에서도 볼 수 있는 똑같은 브랜드.. 특색 없는 쇼핑은 재미가 없다. 백베이(back Bay)를 산책하다가 저녁 예약 시간에 맞춰 식당에 갔다.

작년 여름에 퀸시 마켓(Quincy Market)에서 먹은 랍스터 샌드위치랑 크림차우더 수프가 생각나서 미리 식당을 예약했었다. 퀸시 마켓이 아니라 뉴버리 거리(Newbury St.)에 있는 굴이랑 새우도 팔고 랍스터도 파는 근사한 레스토랑이다. 기대가 컸을 까? 버터를 잔뜩 바른 빵에 들어있는 샌드위치랑 너무 찐한 크림차우더. 가격은 비쌌지만, 내 입맛에는 글쎄다.


그냥 이런 날도 있는 거지라고 넘기려고 했다. 그러다가 위에 말한 두 소설가가 생각났다. 이런 날도 글을 써야겠다 생각하고 글을 쓰며 기억을 정리하고 나니, 그냥 지나간 날이 아니라 기억에 남는 날이 된듯하다. 어제오늘 배운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면, 모든 것이 매끄럽지 않았지만 긴 인생의 관점에서는 성공한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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