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by 김민수

이적의 '숫자'를 듣고 정말 오랜만에 기타를 치고 싶어 져서 청주 본가에 내려가 기타를 가져왔다. 크래프터 KGAE-27 모델이고, 그땐 몰랐지만 '아이유 기타'로 유명했다고 한다. 대학생 시절에 40만 원 정도의 큰돈을 내고 샀는데 소리가 따뜻하고 울림이 좋았다.


서울 집에 가져와 기타 가방을 열었더니 가방 지퍼가 툭하고 뜯어져 나갔다. 어쩌면 마지막으로 연 게 10여 년 전일테니 그럴 법하다고 생각했다.


기타를 꺼내서 조율을 하는데 5번 줄감개가 고장 나서 조율을 할 수가 없었다. 유튜브로 수리하는 법을 찾아봤는데 아무래도 전문가에게 맡기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집 근처의 기타 가게를 수소문했다. 두세 곳에 전화를 하고 받은 답변은 크래프터 본사에 가는 게 좋겠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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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프터 한국 본사(?)는 경기도 양주시에 있었다. 안 막힐 때 가도 차로 1시간 4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고, 평일 낮에만 여는 터라 휴가를 쓰고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한참 막힐 서울 한복판을 통과해야 했다. 가는 김에 의정부에 들러서 부대찌개를 먹으면 그래도 가는 의미가 생길까 했는데 심리적으로 큰 도움은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양주까지 가는 것은 좀 어렵겠다 싶었다. 그냥 쿠팡에서 저렴한 연습용 기타를 살까 했는데 안 좋은 소리 듣는 것은 더 싫었다.


그렇게 반년 정도를 미루던 어느 날, 무턱대고 낙원상가를 찾아갔다. 크래프터 기타를 도매로 판매하는 곳에 찾아갔더니 내 기타의 한국 생산이 종료되어서 아마 부품을 찾지 못할 것 같고, 수리는 가능하지만 헤드 자체를 다른 모델의 부품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고 했다. 수리비가 만만치 않게 들 것 같아서 아예 새 모델을 사볼까 하고 직원분께 KGAE-27 급의 모델 추천을 부탁드렸더니 그 사이에 기타 가격이 올라서 예전에 내가 40만 원 대에 샀던 이 모델의 가격이 70만 원을 넘는다고 했다. 그냥 수리를 맡기기로 하고 낙원상가를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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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크래프터 도매점에서 전화가 왔다. 본사에 알아보니 내 모델의 부품이 다행히 아직 남아있어서 헤드 전체를 교체하지 않고 줄감개만 교체해도 되겠다고 했다. 비용도 더 적게 들 것 같다고. 줄교체와 택배 비용까지 해서 9만 원 정도에 수리하기로 했다.


그렇게 얼마 후 기타가 집에 도착했다. 기타 컨디션은 괜찮아 보였는데, 내장된 튜너가 아무래도 고장인 난 듯했다. 유튜브에서 튜너를 검색하여 들으면서 조율을 했다. 이 모든 과정의 시작이었던 이적의 '숫자' 악보를 구매하고, 연습을 시작했다.


그래도 예전에 훈련해 둔 게 있어서 운지는 곧잘 따라갈 수 있었다. 그때 혼자 뚱땅거리며 연습했던 시간들이 헛되지 않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짚기 어려운 코드들이 몇 개 있긴 했지만 연습을 거듭할수록 조금씩 나아졌다. 어려운 것은 리듬이었다. 직관적이지 않은, 메트로놈 틀어놓고 해도 계속 비껴가는 리듬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이것 또한 연습을 많이 하다 보니 어느 정도 리듬의 원리를 깨닫게 되긴 했다. 더 큰 문제는 여기에 노래를 붙이는 것이었다. 노래와 반주의 리듬이 정말 따로 노는 곡이라 둘 다 완벽하게 되어야 붙일 수가 있을 것 같은데 일단 각각을 완벽하게 하는 것이 되지 않는 상황이었다. 어느 순간에는 내가 이걸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포기하고 다른 곡으로 넘어가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러다 오늘 심심해서 또 숫자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러보는데 신기하게도 조금씩 맞춰지기 시작했다. 정말 안 될 줄 알았는데 하다 보니 되기 시작했다. 내가 포기했던 많은 일들 중에 이렇게 계속했으면 할 수 있었을 일이 또 무엇이 있었을까 궁금해졌다. 지금도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어설프게나마 반주를 하며 노래를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제법 그럴듯하게 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은 느낌이다. 뚱땅뚱땅 하다보면 점점 더 나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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