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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 Jun 29. 2023

#40 상처 위에 올라서다

연휴를 맞이하여 장대한 계획을 세웠지만 특별히 이룬 것은 없었다. 긴 연휴 탓에 풀어져버린 긴장은 계획을 무력화하기 충분했다. 달력에 휴일이 이어지면 스스로를 훼손해도 괜찮다는 오만이 생긴다. 물론 오늘 같은 연휴의 마지막날엔 항상 오만이 꼬리를 내리고 아쉬움과 후회가 고개를 든다.


그나마 위안 삼을 만한 일은 <금쪽상담소>라는 상담 프로그램을 연휴 내내 꾸준히 시청한 것이다. 자기 전 휴대폰을 만지작 거리다 우연히 짧은 클립을 보게 되었고, 다음날 일어나자마자 무언가에 끌리듯이 전체 영상을 찾아보게 되었다. 출연자들이 자신의 상처를 털어놓을 때는 그 모습이 모두 나의 모습 같았고, 엇갈린 상처들을 빗어주는 말을 들을 때면 마치 오래전 마주했던 상담의 현장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처량했던 대학교 막학기. 친구들이 이미 취업을 했거나 취업의 문턱에 와 있을 때에도 나는 자기소개서를 쓰지 않았다. 졸업을 3개월 앞두고 내가 시작한 것은 취업 스터디가 아닌 교내 심리상담센터에서 상담을 받는 일이었다. 재학생들은 무료로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친구의 추천에 가벼운 마음에 들렸으나 프로그램은 생각보다 긴 책임감을 요구했다. 주 1회 2시간씩 약 10회에 걸쳐 상담이 이루어진다고 안내를 받은 것이다. 쉽지 않아 보였지만 이미 취업을 미루기로 결정한 뒤였기에 부담 없이 한 학기를 상담에 투자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벌써 5년도 더 지난 일이라 어떤 내용을 털어놓았는지만 어렴풋하게 기억에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그때의 기억을 기둥 삼아 과거의 고통과 슬픔으로부터 한 발짝 멀어지게 되었고 새로이 다가오는 불행도 이전보다 잘 견딜 수 있게 되었다. 아무리 큰 상처라도 돌볼 수 없는 상처는 없다는 것, 타인의 잘못된 행동으로 나의 가치를 판단하지 않는 것, 나의 감정과 타인의 감정을 분리하는 것, 마지막으로 관계의 훼손이 곧 나의 훼손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 상담을 통해 얻은 짧은 문장들이 아직도 가슴 한편에 단단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 상담의 시간 덕분에 나는 모호하고 복잡한 감정을 걷어내고 그 속의 일들을 직시할 수 있었다. 그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지만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어떤 상처는 상담을 받으며 극복할 수 있었고, 어떤 상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쉬이 극복되지 못했다. 그러나 상담을 통해 잠시나마 상처 위에 올라서본 기억은 더 이상 과거의 상처 때문에 새로운 날들이 매몰되지 않아도 된다는 깨달음을, 그리고 미숙했던 그때의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상처 위에 올라서는 그 경험은 오롯이 자신 스스로 해내야 하는 일이었다. 예상보다 꽤나 길었던 상담의 시간은 선생님께서 내가 스스로 일어서기를 기다리는 과정이었던 것을 이제야 미약하게나마 알게 되었다. 내가 눈앞의 상처에 겁먹고 주저할 때마다 용기와 위로를 불어넣어 주셨던, 그러나 결코 상처를 가볍게 평가하거나 섣부른 처방을 내리지 않고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주셨던 선생님. 


연휴에 만난 <금쪽상담소>를 통해 나는 대학교 막학기의 봄을 떠올린다. 기억을 더듬을 때마다 선생님과 함께했던 그 기다림의 시간이 얼마나 그녀에게 고된 시간이었는지를, 그리고 나에게는 얼마나 값진 시간이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이 글을 빌려 늦었지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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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2일 처음 쓰다

2023년 6월 29일 다시 쓰다.

* 6/28 작성하였으나 등록 오류로 6/29 재등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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