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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 Jun 30. 2023

#41 드라이브 마이카

작년 말 개봉한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드라이브 마이카>를 봤다. 2021년도 칸 영화제 경쟁부문 각본상을 수상한 작품으로 여러 매체에서 2021년 개봉한 영화 중 손에 꼽히는 걸작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국내에서도 꾸준히 회자되어 상영관을 많이 확보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소소한 입소문을 통해 최근엔 국내 관람객 5만명을 돌파하기도 했다. 




주인공 가후쿠는 극중 배우다. 그는 작가인 아내 오토와 함께 살고 있다. 우연한 기회에 그녀의 외도를 목격한 가후쿠는 이를 외면해버리고 마치 아무 일이 없는듯이 아내를 대한다. 어느날, 아내를 피해 평소보다 늦게 집에 돌아간 가후쿠는 급성 질환으로 사망한 아내의 시체를 마주하고 그녀의 장례를 치른 후 아무렇지 않은 척 살아간다. 몇 년이 지나 일상에서 멀리 떨어진 히로시마로 출장을 간 가후쿠는 그곳에서 자신의 아내와 외도를 했던 배우 다카스키와 자신처럼 가족을 잃은 슬픔을 가진 운전사 미사키를 만나며 새로운 이야기가 펼쳐진다.




대사, 장면, 갈등상황이 확실한 기승전결을 보여주지 못하고 이내 다른 것으로 전환되는 영화의 연출은 마치 상처를 받을까 두려워 사실 앞에서 고개를 돌려버리는 가후쿠의 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다. 영화의 말미에 가족을 잃은 슬픔을 덤덤히 말하는 미사키를 보고서야 가후쿠는 슬픔을 토로하기 시작한다. 아내의 외도를 목격한 지, 아내의 죽음을 겪은 지 2년이 넘게 지난 후에야 그는 슬픔을 받아들이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소복히 쌓인 눈 위에 한마디 고백을 내려 놓는다. "나는 제대로 상처받았어야 했어"




영화는 긴 시간동안 자신의 상처와 슬픔을 외면했던 가후쿠가 연극, 새로운 사람과의 만남, 운전사인 미사키의 고백을 거치며 그 상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과정을 담았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을 오롯이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어떤 상처도 온전히 낫지 않는다. 온전히 낫지 않기 때문에 상처인 것이다. 그러나 온전히 낫지 않아도 그 상처를 돌보는 것만으로 충분한 위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드라이브 마이카>는 알려준다. 자신의 상처를 누구보다 잘 알지만 아직 그것을 살펴볼 용기를 내지 못했던 이들에게 이 영화는 따듯한 위안이 된다. 




"비참한 일이 일어난다해도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어요. 그래도 계속 살아가야지요. 우린 긴긴 세월, 긴긴 밤을 지나왔어요. 비록 지치고 힘들지라도 우리는 남은 날을 계속 살아가야해요. 그리고 훗날 우리의 마지막이 다가온다면 조용히 순응하는 것이지요. 신을 만난다면 그때 이야기 해요. 우리가 울었다고, 삶이 너무 힘들었다고. 그러면 신께서도 우리를 돌봐주실 거에요. 그러면 우리는 기쁘게 웃으며 지난 날을 돌아볼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우리는 편안히 쉴 수 있을 거예요. 나는 믿어요. 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요. 우리는 편안히 쉴 수 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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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1일 처음 쓰다.

2023년 6월 30일 다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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