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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진 Jun 30. 2023

#42 뇌는 부정어를 이해하지 못한다

홀로 자취를 하게 되면, 특히 어둡고 차가운 겨울날에는,  이런저런 상상에 빠지기 쉽다. 문제는 상상의 총량이 늘어나면 부정적인 생각의 비중도 함께 늘어난다는 점이다. 부정적인 생각들은 주로 과거에 벌어진 일에 대한 비극적 감상의 반복, 혹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불쾌한 시뮬레이션으로 나눌 수 있다. 거창하게 썼지만 쉽게 말해 후회와 걱정이다. 문제는 이런 부정적인 생각들은 그 자체로 일상을 잠식하고 더 나아가 그것에 매몰된 자기 자신까지 비판적으로 보게 만든다는 것이다. 


한번 부정적인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쉽지 않다. 인간은 긍정적 대상보다 부정적 감정에 더 빠르게 사로잡히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스스로 부정적 관념에 사로잡혀 있다는 상황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가 지금 불필요한 생각에 빠져 감정을 소모하고 있구나"라고 제3자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스트레스에서 한 발자국 벗어날 수 있다. 이런 자각이 스트레스를 근본적으로 차단할 수는 없지만 수렁과 같은 망상에 매몰되는 소모적 행위는 충분히 끊어 놓을 수 있다.


그다음이 중요하다. 상태를 인지한 다음에는 바로 다른 행동으로 상황을 '전환'해야 한다. 그 자리에 그대로 누워 있다 보면 다시 부정적 망상이 가습기의 분무처럼 스멀스멀 올라오기 마련이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청소를 하고, 빨래를 돌리고, 책상정리도 하다 보면 시선에 걸리는 다른 사물로 생각이 옮겨간다. 나는 이러한 방식을 '부정적 망상으로부터 도망치기'라고 명명했다. 떠오르는 것을 막을 수 없더라도 그것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은 충분히 훈련으로 터득할 수 있다. 


작가 사이먼 시넥은 한 강연에서 인간의 뇌가 부정적 명령어를 수행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마"라고 말하면 코끼리가 생각나듯이 "후회와 걱정을 하지 마"라고 말하면 오히려 그것들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스키를 탈 때 "장애물에 부딪히면 안 돼"라고 말하면 장애물만 보이지만 "정해진 코스로만 가자"라고 생각하면 코스가 보인다는 예시를 들었다. 보이지 않는 장애물이 걱정될 때는 정해진 코스만 생각해야 한다는 말이다. 


부정적인 상상이 고개를 들 때 해야 할 일은 그것을 꺼꾸러트리기 위해 갈고리를 던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히려 부정적 상상에 에너지를 투자하는 꼴이다. 우리는 시선을 돌려 새로운 지점으로 긍정적 도피를 시작해야 한다. 물론 말처럼 쉽지 않다. 인간은 부정적이고 자극적인 것에 쉽게 끌리고, 그것을 비현실적인 형태로 왜곡하기도 하며, 종국엔 의무처럼 무방비상태로 흡수한다.  그러나 긍정적 도피의 주문을 잊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든지 가상의 지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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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2월 11일 처음 쓰다.

2023년 6월 30일 다시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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