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딘 마음이 책이 되기까지

With 샵메이커즈

by 현묵

20대에는 30살이 되면 책을 내고 싶다고 생각했다.

30대가 돼선 글을 쓰다 보면 책이 되리라 생각했다.

글이 있으니, 언젠간 책이 되겠지.

그게 얼마나 순진한 생각이었는지.

샵메이커즈 워크숍에 들어간 첫날 알게 됐다.

에세이를 쓰고, 글 모임에 나가고,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모임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책을 낼 때면

부러워하면서 ‘나도 책 한 권쯤은 낼 수 있겠지’ 하는 막연함을 가지고 있었다.

작업을 하면서 갖고 있던 생각들을 되돌아보니

책에 대한 내 생각은 그야말로 막연함이었다.

막연함은 때때로 희망처럼 포장되지만,

내 안의 무딘 마음을 감추는 가장 손쉬운 포장이기도 했다.


첫 워크숍에서, 나는 그 무딘 마음을

꺼내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처음 기획안을 설명하는 자리에서도

막연함을 버리지 못하고

글은 충분하니까 형식만 갖추면 되겠지.

그간 써놓은 글을 엮어서 만들면 그게 책이지.

라는 무딘 생각이 습관처럼 먼저 떠올랐다.

습관적인 안일함으로 독립 출판에 어울릴만한 가벼운 책의 기획안을 이야기했다.

아니나 다를까, 15년째 독립 서점을 운영하는 독립 출판 전문가는 조용히, 단호하게 물었다.

“지금 이 글, 왜 책이 되어야 하죠?”

“이 구성은 왜 이렇게 정하신 건가요?”

"무뎌요. 무슨 얘기를 전달하고 싶으세요?"

"글이 복잡하네요. 이해하기 어려워요."

질문은 부드러웠지만, 날이 서 있었다.

나도 외면한 무딘 마음을 정확히 짚어냈다.


다행히 그 말에 발끈한 마음보다 이상하리만치 안도감이 들었다.

누군가 나의 무딘 마음을 그대로 두지 않는구나 싶어서. 무딘 글로는 아직 누군가의 마음을 뚫을 수 없겠다는 생각. 브런치에 글을 쓰기 시작하며 썼던 '나는 악필이다'를 썼을 때 초심이 떠올랐다.

그 뒤로 나는 기획하며 썼던 글을 다시 읽고 스스로 고민을 풀어내야만 했다.


왜 이 글을 썼지?

그저 내가 만족하고 싶은 글인가.

무얼 보여주고 싶은가.


왜 고양이를 꼭 넣고 싶었지?

그저 사람들이 좋아할 만해서 붙인 건 아닌가.


왜 이렇게 구성하고 디자인해야 하지?

왜, 왜, 왜,

내겐 책을 만드는 매 순간이 무딘 마음을 깎는 시간이었다.

한 달의 워크숍에서 매주 내 생각을 구체화해나갔다.

기획자는 날카롭지만,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질문을 던졌다.

그 시선에 반사되어 나는 내 마음을 다시 들여다봤다.


서점에 들어갈 때마다 내 마음을 되물었다.

그건 마치, 무심히 다듬던 원고의 모서리를

천천히, 정성껏 문질러 부드럽게 만드는 일 같았다.

기획자가 던진 질문 하나에 진심으로 답변하기 위해

내 생각은 몇 번이고 글이 되지 못하고 방향을 바꿨고,

처음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구조와 흐름을 갖추게 됐다. 무딘 글들은 말 한마디에도 쉽게 흔들렸기에

중심을 잡기 위해선 무딘 마음과 글을 깎아내야 했다.

다행히 그럴수록 조금씩 선명해졌다..

한 번 해볼까 하는 무딘 마음은 책을 만들 수 있게 했고 날카로워지는 마음이 책을 완성하게 했다.

다만 그 날카로움은 혼자서는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

샵메이커즈는 그곳까지 나를 데려가 준 사람들이다.

책을 만든다는 건 단순히 글을 엮는 일이 아니었다.

내 안의 말들을 더듬어 쓰고,


내가 왜 이 글을 썼는지 되물으며,

삶의 조각을 묶는 일이었다.

나는 글만 쓰던 사람에서

쓰는 이유를 고민해 보는 사람이 되었다.

이번에 만든 『묘하게 사는 법』이라는 책은

내 생각을 닮은 나의 조용한 고백이자,

무딘 마음을 조금 깎아낸 여정을 담은 결과다.

단순히 책은 글로만 만들어지지 않는다는 걸 알고

그걸 똑바로 알려준 누군가가 있었기에

나는 이제야 내가 쓴 글보다 조금 더 단단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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