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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묵 Jan 08. 2023

영도에게 씀

태종대에서 쓰는 편지

내가 너를 처음 여행했을 때가 여름 같은 가을이었지.

어느새 시린 바닷바람이 오늘걸 보니 우리 함께한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아서 아쉬워.

마냥 아쉽기만 한 건 아니야

우리 그만큼 서로를 더 알아갈 수 있었으니까 말이야.

내가 대평동에 처음 갔을 때 기억하니? 난 솔직히 말하면 그렇게 큰 기대를 하진 않았어.

외관만 봤을 때 대평동이 관광지나 여행지로 매력이 있어 보이진 않았잖아?


  근데 말이야.

신기하게도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더라구.

우리가 평소에 놓치기 쉬운 것들을 발걸음을 멈춰서 오래 쳐다보고

 익숙했던 것들에 한 번 더 귀 기울이는 것

그게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골목길에서 오는 차를 피하지도 않으시면서 열정적으로 해설하시는 분을 경험하거나 

삐뚤한 글씨로 쓰인 시를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는 것처럼 말이야.

여행을 하는 과정이 나의 삶에서 짧은 순간에 피는 꽃이라 생각하니 

꽃의 향기, 모습들이 아름답지 않을 수 없었어. 

그러고 태종대에 내가 왔어. 

지금도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이 마냥 싫지 않은 건 그래서 인 것 같아.


곧게 솟은 나무 사이로 언뜻 보이는 바다가 내 발을 멈추게 해. 

멍하니 바라보다 이런 생각을 떠올리게 돼.

다음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면 정말 더 좋겠다고 말이야. 


원래 내리려던 곳 보다 일찍 열차에서 내려서 붐비는 전망대와 카페를 피해

 전망대 아래의 벽화를 따라 걸었어. 북적이는 거리에서 나만이 아는 비밀통로로 떠나는 듯했어.

나무로 된 난간을 따라 노을빛 지는 넓은 바다.

  지평선까지 일렁이는 넓은 바다 위 자그마한 등대와 배들을 바라보니

  내가 달고 있던 고민이나 불안감들을 나도 모르게 덮어주는 듯했어.


멍하니 보던 바다를 따라 등대로 발걸음을 옮기니 지저귀는 새들

  지나는 사람들에게 아양 떠는 고양이들 

공주옷을 입고 발랄하게 뛰어가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오더라. 

전에 대평동을 여행하면서 순간을 사랑해야 오늘을 행복한 날로 만들 수 있을 거라고 느꼈다고 했지. 


여기 태종대는 이미 행복한 날을 더 행복한 날로 바꿀 수 있는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사람들 얼굴에는 구김이 없고 찬바람에 흘리는 땀도 마땅히 그럴만하다는 듯했거든. 

그래서 나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다는 마음이 절로 들었나 봐.


영도야. 우리 비록 만난 시간은 짧더라도 그리 멀지 않게 느껴지는 건

 내가 너에게 다가가려는 만큼 너도 나에게 다가와주어서일까. 

꾸미지 않아도 어느새 너는 나의 순간에 잊히지 않을 향기를 뿜어내고 있어. 

우리의 일상이 그리고 행복이 더 많이 우릴 기다리고 맞이해줄 거라는 게 

끝나가는 편지에도 나를 위로해 주네. 

우리 남은 편지지에도 행복한 일상을 마저 채워가며 살자.


영도의 순간을 사랑하는 에디터 누피 씀.



영도문화도시센터 - 잡지 0°, p. 208-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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