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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묵 Jan 17. 2023

망미블루스- 청춘 위로

망미동 여행기

출처 - 비콘 그라운드 홈페이지, 비콘그라운드를 “복합-생활-문화 공간”이라 소개하고 있다.


비콘 그라운드의 조명, 앞으로 많은 사람에게 인사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망미동의 비콘그라운드, 망미역 2번 출구를 따라가다 보면 고가교 밑에 색색의 컨테이너가 들어서 있다. 부산에서 이곳만큼 코로나의 여파를 느낄 수 있는 장소가 있을까. 전에는 공간 활성화를 위해서 공연이나 전시 등 다양한 활동 등을 진행했다고 하는데 현재는 진행하고 있지 않았다.


 대부분의 상가는 운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지나가다 본 라멘 집은 아쉽게 브레이크 타임이라서 맛볼 수 없었다. 이곳을 둘러보는 데 참 고민이 많았다. 유명하지 않은 장소를 여행하는 것과 나의 여행 소감을 어떻게 전할지 고민이 계속 됐다.


 처음 브런치에서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부터 되짚었다. '부산에서 유명하지 않은 곳을 여행하는' 글을 쓰고 싶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던 이유는 여행에서의 역치가 낮기 때문이었다. 지나가면서 아무 허름한 백반집에서의 식사도 대강 만족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원래라면 뭐가 있는지도 몰랐을 건데, 덤으로 하나 얻어 간 셈 하라고 할 수는 없었다.



어느 식당의 내부, 곰인형은 손님을 아직 기다리고 있는 걸까?

 여행자의 입장에서 본다면 내가 앞으로 가는 곳들이 다른 매력적인 많은 관광지를 제쳐놓고 방문할만한 매력이 있다고 보긴 어렵다. 나는 애초에 그런 곳만 찾아갈 속셈도 없다. 일상이 여행이 되길 바라듯 여행도 일상이 되길 바라는 형편 좋은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소소한 좋음을 기억하는 정도로 오늘 하루 잘 여행하고 잘 살았다고 여기고 싶다.


 그렇기에 여행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나는 담담하다. 이곳을 목적지로 삼아서 여행하는 사람이 거의 없을 장소를 슬프게 보는 건 오히려 무례한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잊혔을 뿐 기억하는 사람 하나 없는 건 아니다. 적어도 나는 기억하고 있고, 이렇게 기록된다. 일상을 지내듯 조금 무게를 빼고 담백하게 떠나는 여행. 그렇게 내가 좋아하는 것 하나 둘, 기억하고 싶은 것 하나 둘 정도 챙겨 가는 여행, 나를 위로하려 떠나는 여행이다. 이를 테 면 흘러가는 청춘이 아쉬워 기록하는 그런 여행.


 식당 안의 조리 도구와 소품 등을 찬찬히 바라보며 사진을 찍었다. 내부에는 특히 커다란 곰인형이 손님을 맞이하듯 테이블에 앉아있다. 그 모습이 아직 손님을 기다리는 중이니 기억해 달라는 듯했다.


주민들의 대국이 끝나지 않은 채 멈춰있다.

 부산주민의 입장에서 본다면 나의 정체성이 조금 더 드러난다. 부산에서 산지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청춘 유랑자 신세다. 그래서 이렇게 떠돌아다니는 일상이 여행이 되길 바라며 꼭 나 같은 글을 쓰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비콘그라운드를 돌아보기 전, 시장 입구에 나부끼던 도시재생사업 선정 200여 억 원 지원 플래카드가 아른 거린다. 지역이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영도에서는 문화사업으로 예술가와 지역 주민을 연계해서 활성화하고 있다. 지나는 골목길에 동네 이름이 자랑스럽게 조각되어 있고, 삐뚤한 글씨로 수 십 년 세월을 적어간 시들이 회관에 전시되어 있다. 그렇게 동네 주민들의 역사가 문화와 상생한다.


 그런 동네가 있는 반면, 아직은 아닌 동네도 있다. 대담자들이 대국을 미처 끝내지 않고 어디론가 떠났다. 이곳을 다 돌아보고 나서도 바둑을 두던 주민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휑뎅그렁한 바둑판은 아직 둘 수 있는 곳이 많아 보였다. 내 눈에는 비콘 그라운드가 꼭 그렇게 보였다.



망미블루스 입구 위, 턴테이블이 붙어있다.

 약간의 우울 담긴 비콘그라운드 탐방을 뒤로하고 망미동을 돌아본다. 사실 이곳 망미동의 망미단길은 F1963, 헤이채즈 등의 카페를 비롯해 개성 있는 독립 서점, 음식점 등이 숨은 진주처럼 골목길에 알알이 박혀 있다. 그중에서도 일행과 함께 이곳 망미동을 즐길 수 있는 장소를 고르다 보니 자연스럽게 건물 위에 박혀 있는 턴테이블이 눈에 들어온다.


 골목을 지나던 중, 우연찮게 시선을 돌린 건물 입구 위에 턴테이블이 장식되어 있다. 저곳에 가면 이 망미동의 매력을 즐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올라가는 계단에서 문 사이로 팝송이 희미하게 흘러나온다. 계단 옆 게시판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사진을 배경으로 힙한 자세로 사진도 찍어 보면서 망미블루스에 올라갔다. 입구 앞 촘촘히 박힌 LP판들이 눈에 들어왔는데, 작은 환호성과 함께 망미블루스의 매력을 천천히 음미할 수 있었다. 로컬 여행을 잘 즐기려면 좀 더 느리게 걷고 좀 더 유심히 보아야 하는 걸까. 일상을 잘 보내려면 하루를 들여다보고 좋아할 구석을 찾아야 하는데, 결국 잘 살아간다는 건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구나 싶었다.

망미블루스 입구에 다닥다닥 붙어 있던 LP판


턴테이블이 그려진 엽서, 이 외에도 여러 종류의 엽서를 기념품으로 가져갈 수 있다.


입구에서 망미블루스 안을 보는 풍경, 곳곳에 주인의 정성이 들어가 있다.


작은 테이블에 청춘 셋이 모여 앉았다. Photo by instagram @yum_newmi


앉은 사람을 계속 쳐다보는 사진도 우리에겐 매력적인 대화주제가 된다.

 자리에 앉아 망미동의 매력에 기꺼워 서로 재잘거린다. 곧 우리들이 원하는 건 로컬의 서로 다른 매력처럼, 다르기 때문에 귀하게 여겨지는 청춘임이 드러난다. 청춘의 재잘거림 뒤, 잠깐의 침묵도 괜찮다. 망미블루스에서는 청춘의 침묵을 위로해 주는 블루스가 끊임없이 나온다. 우리는 그렇게 방황하듯 나아가듯 하는 청춘을 끌어안는다.


 블루스 리듬에 잠시 몸을 맡기자 여러 생각이 든다. 나도 흘러나오는 블루스같이 감히 누군가에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그냥 잊혀 가는 청춘이 되어버리는 건 아닐까. 어떻게 될지 아직 아무런 확신이 없다. 그래도 우리의 오늘을 위로해 준 것들이 있었음을 기억해야지. 훗날 돌이켜 봤을 때 위로받을만했던 청춘이라 기록되고 싶다.

  


빔프로젝트에서 옛 영화의 장면들이 계속 흘러나오고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잠시 한 눈 팔아도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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