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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묵 Feb 21. 2023

금연했더니 비염이 사라졌다.

금연 도전기

 환절기나 겨울철에 자고 일어나면 푹 잠긴 목을 부여잡고 거하게 코를 풀거나 가래를 뱉는 게 일상이었다. 그랬던 게 새해가 되고서는 어느 날부터 전혀 그러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요새는 가볍게 물 한잔 마시면 상쾌하게 아침을 시작할 수 있다. 환절기가 되면 늘 건조한 콧 속을 괴롭히는 비염 때문에 계절앓이를 거쳐야 했는데 이번 겨울에 처음으로 그런 고통이 사라졌다. 어쩌면 금연의 효과일지도 모른다. 아니, 금연이 비염의 가장 큰 문제였을 거다. 막힌 콧구멍을 뚫기 위해 마지막으로 가래를 뱉은 게 언제인지 생각해 보면 금연을 시작하기 바로 직전이었다.


 작년, 흡연 9년 차였지만 흡연자들이 늘 그렇듯 나도 담배를 피우기 시작할 때부터 그럴싸한 금연 계획 몇 개쯤은 가지고 있었다. 내가 흡연을 시작하게 된 계기도 군대에서 간부의 강권에 못 이겨 피게 됐다. 그러니까 전역하면 끊으면 돼지~라고 어설프게 생각했다. 애초에 흡연은 시작부터 하면 안 됐는데, 어찌 됐든 이건 다 군대 탓 간부 탓이다. 간부는 우리의 주적인 게 분명하다. GOP에서 황금마차만 기다리며 담배를 뻑뻑 펴댔고 그 당시에는 별 문제가 없었다. 하루 종일 군대에서 임무겸 유산소 운동만 했던 때이기도 하고 나이도 깡패였으니까


 군대에서 흡연 사실을 친구에게 말하니 나랑 계속 연락하고 잘 지내고 싶으면 얼른 담배를 끊으라고 했다. 친구도 홧김에 한 말이지만 그 응원(?)에 힘입어 그때부터 나의 힘겨운 금연 도전기는 시작 됐다. 꺼내기 힘든 배수로에 담배를 던져서 버리고 밤늦게 몰래 다시 주으러 가기 일쑤였고, 일부러 맛없는 국산담배만 찾으면서 펴보기도 했다. 이 마저도 싫은 표정으로 담배 연기 몇 모금은 마셔야 담배를 끌 수 있었다. 그렇게 담배는 점점 애증의 관계로 변했다.


 사회에 나와서는 애증의 골이 더 깊어졌다. 군대에 있을 때만큼 운동을 하지 않으니 몸이 급속도로 안 좋아졌다.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피고, 술 마셔서 기분 좋으니 피고, 심심하면 펴댔다. 하루 한 갑 피던 게 두 갑으로 늘어나는 건 순식간이었다. 자주 입는 외투에는 꼭 내가 피우는 담배 냄새가 짙게 배었다. 스스로에게 무심했던 나 조차도 고깃집에 갔다 오며 입은 외투에서 고기 냄새보다 담배 내새가 더 올라올 때는 실망감이 피어오를 수밖에 없었다. 그럴 때면 괜히 피던 담배를 쓰레기봉투에 넣어 버리고 다음 날 후회 했다.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지 4년 차가 지나자 주변 사람들은 더 이상 금연 하라고 얘기하지 않았다. 친한 친구와 둘이서 술 먹을 때 내가 담배 피우러 가면 혼자 남겨졌었는데, 담배 피고와도 되냐는 물음에 늘 그러라고 해주었다. 그러고 다시 자리에 앉으면 나는 진심으로 네가 담배를 끊었으면 좋겠다. 건강을 생각해야지라고 진지하게 얘기를 꺼냈다. 그럼 조금 자조적이게 웃으면서 여자 친구가 있으면- 스트레스받을 일이 없으면-이라고 말하며 주제를 넘겼다. 그러다 일주일이나 이주일 정도 금연을 하고 있을 때 지금 금연 중이야라고 얘길 꺼내면 그래! 잘 생각했다. 나는 네가 담배를 필 때면 꼭 끊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고 응원 했다. 그러다가도 술 먹은 김에 다시 담배를 폈다. 그런 일이 몇 번 더 반복되자 친구도 금연 얘기는 꺼내지 않았다.


 흡연 7년 차가 되고 30대에 들어서자 왜 주변 사람들이 건강 생각해서 담배를 줄이고 안 피는 게 어떻겠냐는 말이 이해가 됐다. 멀쩡하던 몸이 점점 담배로 인해 안 좋아지는 게 느껴졌다. 운동도 안 해서 체력은 점점 떨어졌고, 무엇보다 비염이 심해졌다. 자고 일어났을 때뿐만 아니라 물을 자주 마시지 않으면 일상생활에서도 수시로 가래가 끼었다. 그래서 강박증처럼 물을 들고 다니며 목구멍에 물을 때려 부었다. 얼마를 그러고,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궐련 담배를 전자 담배로 바꿨다. 그동안 수시로 버리면서 시도했던 금연을 이젠 정말 해야겠다 싶었다. 전자 담배를 피우면 몸에도 덜 나쁘고 금단 현상도 좀 덜하단 소문을 들었었고, 자기 최면이라도 되길 바랐다. 전자 담배를 피우면 조금 맛은 없을지라도 나에 대한 혐오감을 덜 수 있다면 괜찮겠다 싶었다.


 그렇게 전자 담배를 2-3 년간 피우면서도 금연은 수시로 도전했다. 사놓은 담배를 다 부러뜨려 버리기도 하고 일부러 카드 잔액을 모두 비워 버려 담배 살 돈도 안 남겨 놓기도 했다. 이 눈물 나는 금연 도전이 전과 달라진 점은 담배를 끊었을 때 짜증이나 불안, 피고 싶다는 생각이 덜했단 거다. 어쩌면 담배를 피우는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이 담배를 폈을 때 주는 만족감을 넘게 되어버린 것 같다. 전자 담배로 만족감을 낮추고, 혐오감은 늘어만 가니 그제야 균형이 맞아 들어간 셈이다.


 작년 어느 날도 금연을 시작했다. 다른 점은 금연을 시작하면서 코로나에 걸렸다는 거다. 백신을 3차까지 다 맞아 놓고도 사경을 헤맸다. 한 끼도 제대로 먹지 못해 배달시킨 죽을 몇 숟갈 들고는 식은땀에 옷이 절도록 끙끙 앓으며 누워만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금연을 시작한 지 3-4 일차 정도 됐을 때라 아픈 와중에 담배를 피우진 않았다는 점이다. 완치가 된 후로는 신기하게 담배 생각이 전혀 안 났다. 어쩌면 더 이상은 안된다는 신호를 준건지도 모르겠다. 심각한 코로나 후유증을 앓고 있는 사람에 비하면 금연이라는 후유증을 갖게 된 건 조금의 행운 아닐까


 이제 금연을 시작한 지 8개월이 다되어가니 이번에는 주변에 조심스럽게 금연했다고 얘길 꺼내고 있다. 무엇보다 코가 뻥 뚫리며 아침마다 괴로워하지 않아도 되니 참 좋다. 지하철에서 델리만쥬 냄새도 기가 막히게 맡을 수 있다. 갓 만든 델리만쥬 냄새가 널리 퍼지면 기쁘게 소리 없이 킁킁댄다. 체력과 피부도 전보다 더 좋아진 것도 아주 체감이 된다. 금연으로 일상이 조금씩 바뀌는 걸 체감하면 기쁘다. 더 이상 흡연과 금연으로 스트레스를 안 받는 게 가장 크다! 그래도 나처럼 흡연과 금연 사이에서 외줄 타기를 하며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을 만나면 무작정 끊으라는 소리는 하지 않는다. 그게 내 마음처럼 잘 안 되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대신 소소하게 자랑을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비염이 사라지더라고!

나에겐 길고도 길었던 흡연 기간




이제는 정말 금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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