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 온 뒤, 가장 먼저 집 주변에서 가장 맛있는 짬뽕집을 찾아 헤맸다. 부산에는 친인척도 없고, 친구도 없었기에 정을 붙일 만한 게 필요했다. 그게 나에겐 바로 짬뽕이었다. 짬뽕, 이 오묘한 음식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 순위에서 내려온 적이 없었다. 짬뽕 국물을 들이켜고 땀 한 방울 흘리면, 행복이 가까이 있음을 느낀다. 고기, 해산물, 야채, 면이 어우러져 낼 수 있는 최고의 맛을 내는 것 같다. 따로 먹어도 맛있는 것들이 뒤섞이면서 맛이 배가된다. 우연히 들린 짬뽕집을 찾은 나를 스스로 칭찬한다. 이왕 살아가는 거, 뒤섞여서 제대로 맛 한번 내보자고 다짐한다.
짬뽕이다. 부산에서의 삶은 마치 짬뽕 같았다. 20대의 마지막과 30대 초반을 뒤섞어 어떻게든 맛있는 짬뽕이 되고자 했다. 우울하거나 슬펐던 날이 있었다. 그런 날은 가루를 내어 모아놨다가 육수를 낼 때 썼다. 고춧가루가 국물의 매콤함을 좌우하듯 슬픔도 삶의 맛을 내는 향신료라 여겼다. 기쁘고 행복한 날들도 있었다. 그런 날들은 짬뽕에서 고기나 오징어와 같다. 큼직하고 맛스러워 보이기에 가장 맛있게 조리할 수 있도록 신경을 기울였다. 평범해 보여서 기억에 남지 않는 일상들이 있었다. 그런 날들은 야채와 같다. 아무도 주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지만 그렇지 않다. 양파를 어떻게 볶느냐, 어떤 야채를 적절히 넣느냐에 따라 짬뽕의 맛을 좌우한다. 준비한 날들을 망치지 않으려 신중히 면을 삶는다. 탱글한 면발은 식감뿐 만 아니라 청각도 같이 자극한다. 그 식감과 소리는 훗날 짬뽕을 맛있게 기억되게 한다.
그렇게 나를 뒤섞어 맛있는 짬뽕 한 그릇을 만들어내듯 살아간다. 어느 날은 너무 매워 국물 한 모금도 못 먹을 짬뽕이 되기도 한다. 그럴 때면 맛있게 먹은 짬뽕을 떠올리며 매콤함을 덜어낸다. 좋은 날이면 기분에 취해 고기를 한가득 올린 짬뽕을 낸다. 깊은 풍미가 절로 미소를 짓게 한다. 설레고 기대되는 날이면 야채를 정성스레 다듬고, 볶고, 국물을 내는 데에 정성을 다한다. 그러면 촌스러워 보이지만 누구나 좋아할 짬뽕이 된다. 한 그릇의 맛있는 짬뽕이 되고 싶어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