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린 라이딩 기록
퇴직 다음의 여행 방식
2024. 8. 31. 정년을 맞아 퇴직을 했다. 그리고 한 달여 뒤인 9월 8일, 나는 일본 후쿠오카에 도착했습니다. 여행을 결심하면서도 계획은 세우지 않았습니다. 숙소는 하카타 인근에 하나만 정했습니다. 코스도, 거리도, 목표도 없었습니다. 이번에는 어디를 ‘가겠다’가 아니라, 그저 ‘살다 오자’는 마음이었습니다. 나에게 여행은 관광이 아니라 일상의 리듬을 잠시 옮겨 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처음부터 자전거를 품은 도시
오래된 도시라서일 까요. 후쿠오카의 자전거 도로는 도시 미관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명확했습니다. 나중에 덧붙인 시설이 아니라, 처음부터 자전거가 다닐 것을 전제로 기획된 구조처럼 느껴졌습니다. 차도와 보행로 사이, 자전거의 도로가 잘 조성되어 있었습니다. 텐진과 하카타를 오갈 때도 흐름이 끊기지 않았고, 나카가와 강변에서는 속도를 줄이지 않아도 불안하지 않았습니다. 역 앞, 상점가, 공공시설 주변에는 자전거 주차장이 생활 시설처럼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숫자보다 리듬으로 달리는 아침
아침이면 하카타 숙소를 나서 나카가와를 따라 페달을 밟았습니다. 어떤 날은 가스가시 방향으로, 어떤 날은 이토시마 쪽 바다를 향했습니다. 해안선은 완만했고. 어느 날은 70킬로미터를 넘긴 날도 있었고, 40킬로미터가 채 되지 않은 날도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Google 지도를 보고 방향을 정했습니다. 이번 라이딩에서 기준은 숫자가 아니라 몸의 리듬이었습니다.
검색하지 않는 보급, 길 위의 선택
이번 여행에서 나는 맛집을 검색하지 않았다. 배가 고프면 멈췄고, 눈에 들어오는 곳에 들어갔다. 가미카와바타마치를 지나던 오후, 유난히 오래된 기운이 느껴지는 식당 앞에서 발이 멈췄다. 브롬톤을 폴딩해 입구 한편에 두고 안으로 들어서자, 오픈 주방 너머로 면을 뽑고 삶는 손놀림이 그대로 보였다. 조리 과정을 숨기지 않는 집, 설명이 필요 없는 집이었다. 노포는 메뉴판보다 먼저 신뢰를 건넨다. 그날의 한 끼는 ‘잘 먹었다’가 아니라 ‘제대로 들어왔다’는 느낌으로 남았다. 기본 튀김 우동과 춘천에서 먹던 판메밀을 주문했다. 아직도 플라스틱 발이 아닌 대나무 발을 사용하고 있었다.
오노조시 니시키마치, 빵 하나의 완성도
다른 날, 라이딩 도중 오노조시 니시키마치에서 발길을 멈췄다. 빵 하나만 파는 가게 앞이었다. 바로 치도리야였다. 1630년에 시작된 이 집은 400년에 가까운 시간을 이어온 규슈의 대표적인 전통 제과점이다. 원래는 화과자와 카스텔라로 이름을 알린 집이지만, 지금의 공간은 ‘노포’라는 단어에 기대지 않는다. 진열은 주얼리 숍처럼 절제되어 있고, 조명과 동선, 응대의 속도까지 하나의 서비스 디자인처럼 설계되어 있었다. 빵 하나를 팔지만, 그 안에는 이 집이 살아남은 시간이 고스란히 들어 있었다. 오래된 집이란 과거를 반복하는 곳이 아니라, 스스로를 계속 업데이트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이 공간은 조용히 증명하고 있었다.
해가 기울면 항구로
해가 기울면 자연스럽게 하카타 항구로 향했다. 물 위로 떨어지는 빛, 정박한 배와 크레인의 실루엣이 겹치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나는 해돋이보다 노을을 좋아한다. 시작을 재촉하지 않고, 끝을 강요하지 않는 빛이기 때문이다. 자전거를 세우고 잠시 서 있으면, 달렸던 거리보다 머릿속이 먼저 정리됐다.
완주가 아닌 예행연습
이번 후쿠오카 라이딩은 완주를 증명하기 위한 기록이 아니었다. 정년 이후의 삶에서 자전거가 어떤 자리를 차지할지, 미리 살아본 시간에 가까웠다. 아침에 나가 달리고, 필요하면 멈추고, 해가 지면 돌아오는 일상. 계획 없이 달린다는 것은 길을 잃는다는 뜻이 아니라, 도시와 대화할 수 있다는 뜻이라는 걸 이 도시는 조용히 알려주었다. 후쿠오카는 여행지가 아니라, 잠시 빌려 살 수 있는 도시였다.
지난 10여 년간 나는 여덟 번의 상실을 경험했다. 이 글은 그 상실을 지나며 걷고·오르고·타며 몸과 마음의 근육을 다시 쓰는 일로 일상의 리듬을 회복해 갔던 시간들을 회고한 기록이다.
mookss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