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접기가 가르쳐 준 2D와 3D의 위상
종이 접기는 다룬 생물학적 본능(질서, 대칭)을 넘어, 우리에게 가장 근원적인 질문인 공간에 대한 물음을 던졌습니다. 나와 친구 희락이는 종이를 반으로 접어 동물 옆면을 오려냄으로써, 펼치면 네 발로 자립하는 피규어를 만들었습니다. 이는 2차원(평면)을 조작하여 3차원(입체)의 현실을 창조하는 행위였습니다. 손끝의 단순한 조작이 면적과 부피라는 개념을 언어 없이 몸에 각인시키는 과정이었다.
면(面)과 면이 만나는 지점은 선(線)이 되고, 이 선은 곧 '접는 선'이었습니다. 종이 접기는 이 접는 선을 통해 평면의 종이에 공간을 나누고 질서를 부여하는 법을 가르쳤습니다. 마치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유클리드가 정의한 기하학적 원리들이 실제 눈앞에서 펼쳐지는 듯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유클리드적 공간(Euclidean Space)에 대한 초기 직관, 즉 점, 선, 면이 특정한 규칙으로 결합할 때 안정적인 공간 형태가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무의식적으로 체득했다.
어른들의 공간 인식 행위도 이와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시 어른들은 종이를 두 번이나 세 번 접어 가위로 눈꽃 모양 등을 오려내 유리창을 꾸몄습니다. 두 번 접기는 4등분 대칭을, 세 번 접기는 6등분 대칭을 만듭니다. 그들은 수학 공식을 알지 못했지만, 접는 횟수를 통해 '대칭과 순환의 패턴'을 무한히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 눈꽃 장식은 창이라는 정해진 평면 공간을 규칙적인 아름다움으로 채우는 행위였습니다. 종이를 접고 오리는 행위가 개인의 놀이를 넘어, 공간을 장식하고 세상의 질서를 이해하는 문화적 행위였음을 보여줍니다. 반복적인 패턴(패턴)과 순환적인 대칭(순환)이 인간에게 주는 안정감과 시각적 끌림은 형태가 가지는 근원적인 힘이었다.
'접는 선'은 단순한 자국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곧 길이(Dimension)와 각도(Angle)에 대한 감각을 훈련시키는 도구였습니다. 종이의 모서리와 각도를 조작하면서, 우리는 정확성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꼴의 완벽성은 곧 공간을 지배하는 논리의 완벽성과 같았습니다. 종이 접기는 우리에게 3차원 공간을 이해하는 좌표계와 위상(Topology, 형태가 변해도 유지되는 성질)에 대한 감각을 훈련시켰다.
이러한 경험은 훗날 내가 평면 도형으로 네 가지 정삼각형, 정사각형, 정오각형, 정육각형만으로 입체 구조를 구성하는 Making Math의 원리를 탐구하게 된 근본적인 탐구를 하게 됩니다. 종이라는 하나의 평면 소재가 어떻게 다양한 부피와 비례, 양감을 갖는 입체로 변환될 수 있는가? 어린 시절의 단순한 놀이는 공간 인식과 3차원 사고의 근원을 더듬는 철학적 시도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