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왜 꼴에 끌리는가?

Vol.형태 존재론(Morpho-Ontology)

by mookssam

프롤로그


나의 어릴 적(1970년대)은 누구나 그랬듯이 나무, 흙, 돌 같은 자연 재료를 가지고 놀았지만, 초등학교 4학년 성북동 친구 김희락의 집에서는 달랐다. 그곳에서의 놀이는 단순한 놀이를 넘어, 디자이너가 되고 종이를 연구하며 '꼴'의 세계를 처음 열어준 가장 선명한 기억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형태를 사유하는 사람이 되기로 무의식적인 인식을 한 것 같다.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집 앞에 살던 친구 김희락의 집에는 종이가 많았다. 종이가 귀한 시절, 나는 그곳에서 종이를 마음껏 가지고 놀 수 있는 큰 행운을 누렸다. 그 귀한 종이들을 접고 오리며, 나는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았던 형태에 대한 감각을 몸으로 익혔다. 이 운명적인 문장은, 나에게 형태(꼴)가 단순한 시각적 결과물이 아닌, 삶과 사유의 가장 근원적인 시작점이었음을 말해준다. 내 인식은 언어보다 먼저 손끝의 종이 질감, 접힌 선의 예리함, 그리고 완성된 입체의 균형이라는 감각으로 시작되었다.


감각은 세계의 혼돈 속에서 질서를 찾는 생물학적 장치이며, '형태'는 그 질서를 눈앞에 드러내는 표현 체계이다. 이 책은 형태를 단순한 시각적 결과물이 아니라, 감각의 조직 원리이자 사고의 전제 구조로 해석한다. 곧, 형태를 인식하는 행위는 세계를 이해하고 사고를 구성하는 방식의 근원을 더듬는 철학적 시도이다.

우리는 말을 배우기 훨씬 이전부터 시각적 패턴을 구분하고, 대칭과 균형에서 안정을 느낀다. 2017년 빈센트 리드의 태아 시각 자극 실험은, 자궁 속 태아가 '얼굴형'(위가 넓은 삼 점 배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역위 배열에는 덜 반응함을 보여주었다. 이는 얼굴-유사 구성에 대한 선천적 민감성이 출생 이전에 이미 작동함을 시사한다 [1]. 다시 말해 감각은 단순 수용이 아니라, 의미 있는 '형태 질서'를 스스로 구성하는 능동적 구조이다.


게슈탈트 이론은 우리가 개별 요소보다 '전체적 관계'를 먼저 본다는 사실을 체계화했다. 유사성·근접·연속·폐쇄 등 조직 원리 덕분에 우리는 점·선·면의 조합에서 '꼴'을 완성한다. 이때 감각이 완성한 시각적 문법은 곧 사고의 문법과 닮아 있다. '전체는 부분의 단순 합이 아니다'라는 명제는 형태가 사고를 미리 짜주는 틀임을 암시한다 [2].


또한 영유아 인지 연구는 '대상·행위·수·공간'에 대한 핵심 지식 체계가 매우 이른 시기부터 작동함을 보여준다. 이는 인간이 형태적 단서를 통해 세계의 구조를 예측·분류·추론하도록 진화했음을 뒷받침한다 [3]. 대칭성에 대한 선호 역시 폭넓게 관찰되지만, 그 선호의 심미적 판단은 경험을 통해 세분화된다. 즉 우리는 대칭에 끌리되, 문화·경험에 의해 그 '좋아함'의 결을 학습한다 [4].


나의 작업도 이 질문들에서 출발했다. 나는 '세모·네모·다섯 모·여섯 모', 정삼각형·정사각형·정오각형·정육각형, 네 가지 기본 평면 도형만으로 입체 구조를 구성하는 원리를 오래 연구해 왔다. 이 과정은 플라톤 정다면체와 아르키메데스 준정다면체의 고전적 계보를 손으로 '다시 체험'하는 일이었고, 단순 퍼즐 제작을 넘어 감각과 사유의 역사를 되짚는 실험이었다. 여기서 탄생한 '만들기 수학(Making Math)'은 형태를 손으로 구성하며 부피·비례·양감·균형을 몸으로 이해하게 하는 학습 철학이다. 학생들은 숫자가 아니라 공간의 질서를 다루고, 손끝의 조작은 계산보다 빠르게 직관을 세운다. 학습은 '만들기-이해-말하기'가 한 몸처럼 순환한다.


현실 세계의 많은 구조가 이러한 형태 질서를 반영한다. 축구공의 '깎은 정이십면체(Truncated Icosahedron)'처럼, 서로 다른 정다각형의 조합은 안정·강성·효율을 동시에 달성하는 해법이 된다. 건축·엔지니어링의 많은 격자·돔 구조가 이 계열의 위상과 비례를 응용한다 [5]. 이 책은 바로 그 접점, 감각의 구조(철학), 형태의 질서(수학·과학), 세계의 구현(건축·디자인)을 하나의 언어로 엮으려는 시도이다.

요컨대, 인간은 세계를 의미로 읽기 전에 먼저 '꼴(The Gestalt of Form)'로 본다. 감각은 세계의 혼돈을 정리하고, 형태는 그 질서를 가시화하며, 사고는 그 위에 의미를 구축한다. 본서는 감각으로 사고하고 형태로 세계를 읽는 인간 인식의 구조를 탐구하는 창의 인식론의 선언이다.



[1] 인카 연구: 자궁 내 태아가 얼굴 형태의 빛 자극에 긍정적으로 반응함을 밝힌 실험.

[2] 게슈탈트 심리학: 부분의 합보다 큰 전체적 형상 인지의 원리.

[3] 핵심 지식: 인간이 생득적으로 갖춘 공간 및 사물 인지 체계.

[4] 대칭 선호: 진화 과정에서 각인된 대칭적 형태에 대한 본능적 미적 판단.

[5] 다면체 구조: 건축 및 엔지니어링에 응용되는 기하학적 효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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